‘외풍’에 차기 CEO 후보 세 번째 낙마… KT, 경영 공백 현실화

윤경림 대표 후보 사의 표명
윤 “버티면 회사 힘들어져” 고민
여권, 구현모 대표 등 이사진에
‘이익 카르텔’ 주장 노골적 반대
배임 혐의 檢 수사도 부담된 듯
KT, 대표 공백상태로 4월 맞아
노조 “이제와 사퇴는 비겁” 반발
민영기업 대한 ‘간섭’ 논란 일듯

주주총회를 8일 앞두고 윤경림 KT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이 KT 대표이사 후보 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사퇴가 공식화할 경우 KT는 차기 대표이사 후보가 세 번이나 확정됐다 번복되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고, 경영 공백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윤 사장은 22일 KT 이사회 조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에게 대표 후보 사의를 전했다고 복수의 관계자들이 23일 전했다. 지난 7일 최종 후보로 선임된 지 15일 만이다. 윤 후보는 그동안 “내가 버티면 KT가 더 힘들어질 것 같다”고 고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진은 “회사를 생각해야 한다”며 윤 후보를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KT 측은 “공식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 KT광화문 빌딩. 뉴시스

윤 후보가 사퇴 결심을 한 데는 여권의 압박과 검찰 수사 등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윤 후보는 선임 직후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요청하고, 대표이사로 선임되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의지를 보여왔다. 또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와 글래스루이스,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EGS평가원과 한국ESG연구소도 윤 후보의 대표 선임에 찬성을 권고했다.

그러나 여권에서는 구현모 현 대표와 윤 후보를 비롯한 KT 현직 사내외 이사진을 ‘이익 카르텔’이라고 주장하며 차기 경영진 후보 인선에 부정적이었다. 구 대표의 ‘아바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여권과 가까운 인사로 분류됐던 임승태 KT 사외이사 후보와 윤정식 KT스카이라이프 대표이사 내정자는 중도 사퇴했다. 시민단체 ‘정의로운 사람들’이 구 대표와 윤 후보를 배임 등 혐의로 고발하면서 검찰 수사도 진행 중이다.

KT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과 2대 주주인 현대차그룹이 윤 대표 선임에 사실상 반대하는 상황이어서 주총 표결은 지켜봐야 한다. 주총을 통과한다 해도 여권 비판 기류는 계속되고, 정부·여당과 불편한 관계 속에서 규제산업인 통신업을 이끌기 힘들다고 판단했다는 분석이다.

윤경림 KT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

윤 후보가 사퇴하면 KT는 대표 없이 4월을 맞게 된다. 구 대표의 임기는 이달 말로 종료된다. 오는 31일 주총에서 대표이사 선임과 사내이사 선임 건은 제외된다. 다시 새로 대표를 선임하려면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정부의 통신 시장 경쟁 활성화 촉구와 챗GPT 등장으로 불붙은 인공지능(AI) 고도화 경쟁 등 경영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대표 선임 문제로 올해 4분의 1을 흘려보내고 있는 셈이다.

민영기업 KT에 대한 ‘외풍’ 논란도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해 두 차례 구 대표 연임이 국민연금을 비롯한 여권 반대로 무산됐고, 이사회가 공개 경선 방식으로 새로 선임한 윤 후보도 중도 낙마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KT 소수노조인 KT새노조는 윤 후보와 이사회를 비판했다. KT새노조는 성명을 통해 “회사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게 됐다”며 “이제 와 사퇴하는 것은 비겁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3번에 걸친 후보 선출에 실패한 KT 이사회에 준엄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위기를 초래한 이사진은 전원 사퇴하고 비상대책기구를 구성해 경영 공백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