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주도 양곡관리법 통과…대통령실은 거부권 ‘만지작’

엄지원 2023. 3. 23.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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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폭거 용인 못 해”…확전 치닫나
쌀 초과생산분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찬반 투표 결과가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전광판에 표시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쌀값 안정을 위해, 초과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게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23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두 차례 중재안을 내며 국민의힘을 설득했으나, 협상이 난항을 빚자 민주당이 ‘실력 행사’에 나선 것이다. “야당의 폭거를 용인할 수 없다”며 국민의힘이 거세게 반발하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점쳐져 정국 경색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재석 266명 가운데 찬성 169표(반대 90, 기권 7)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개정안은 △쌀이 예상 생산량보다 3~5% 이상 더 생산돼 쌀값 하락이 예상되거나, △수확기의 쌀값이 평년 가격보다 5~8% 이상 떨어지는 경우 정부가 초과생산분을 모두 사들이도록 하는 게 뼈대다. 이날 통과된 법안은 민주당이 앞서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단독 처리한 원안(초과생산량 3% 이상, 쌀값이 전년 동기 대비 5% 이상 하락)보다 의무 매입 요건이 완화됐다. 여야에 김 의장이 제안한 첫 중재안을 수용한 내용이다.

이날 양곡관리법 처리는 야당이 지난해 정기국회를 앞두고 택한 ‘본회의 직회부’ 전략을 처음 실행한 사례다. 민주당이 처리하려는 법안이, 여당 소속 김도읍 의원이 위원장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리지 않도록 국회법을 활용한 것이다. 국회법 86조 3항은 ‘법사위가 60일 안에 다른 상임위 법안 심사를 마치지 못할 경우 소관 상임위원 5분의 3 찬성으로 본회의에 법안을 직회부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본회의에서 “농민은 안중에도 없는 후안무치한 정부·여당의 태도가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법안 처리에서 중요한 한 길목이 뚫린 여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본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자신들이 여당일 때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농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뻔히 알았기 때문에 통과시키지 않았다”며 “그러다가 이제 와서 아니면 말고 식으로 통과시키는 건 무책임한 입법 폭력”이라고 말했다. 김미애 원내대변인은 “쌀 의무 매수를 강제하는 양곡관리법은 반시장적 사회주의식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날을 세웠다. 매입 비용 부담, 농업 경쟁력 저하 등 부작용을 우려해 쌀 의무 매입 자체를 반대하는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에게 법안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방침이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직후 “법률개정안이 정부에 이송되면, 각계의 우려를 포함한 의견을 경청하고 충분히 숙고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내심 법안 거부권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에 “여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과된 법안은 재의를 검토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라고 말했다. 거부권은 2016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상임위원회의 ‘상시 청문회’가 가능하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에 행사한 뒤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여야의 날카로운 대치 속에 대통령이 거부권까지 행사한다면 향후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이 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양곡관리법처럼 일정한 명분을 가진 법안을 놓고 대통령이 야당과 힘겨루기를 하는 모양새가 되면 국민들 눈엔 원활한 국정운영이 안 되고 있다고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며 “입법부 협조 없이 ‘독주’하는 데에도 마지노선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구나 이날 야당은 의사들이 강력죄, 성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 있게 한 ‘의사면허 취소법’(의료법 개정안),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간호법 제정안 등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직회부된 법안 7개를 본회의에 부의하며 30일 뒤 단독 처리를 예고해, 여야가 ‘확전’에 들어갈 수 있는 불씨가 여러 개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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