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위성정당을 또 만들라!

한겨레 2023. 3. 2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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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22일 오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남인순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3월17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앞으로 논의해보자며 세가지 선거제도 개편안을 제안했다. 이 중 두가지는 현재 지역구 의석을 줄이지 않고 비례의석을 늘리는 안이었다. 20일 국민의힘 당대표는 ‘의원 정수는 절대 못 늘린다’고 했고, 그 당 원내대표는 ‘중대선거구제안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반대했다. 국회의장은 의원 정수 확대 반대라는 국민의힘 주장에 손을 들어줬고, 22일 정개특위는 소위안과 전혀 다른 세가지 안을 의결했다. 셋 다 의원 정수 300석을 유지하는 안인데, 비례대표 의석이 몇석인지, 지역구 의석이 몇석인지가 없다. 그리고 셋 중 하나는 중대선거구제안이다.

지난 며칠 국회에서 있었던 일을 정리해놓았지만, 이것만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린다면 당신은 선거제도를 전공한 학자이거나 여의도식 언어에 정통한 정치인이 틀림없다. 이 두 집단을 제외하고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우선 용어부터 풀어보자. ‘중대선거구제’라는 용어다. 연초에 윤석열 대통령도 이걸 하자고 제안했다. 선거제도를 전공한 사람으로 말하는데, 학술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중대선거구제라는 용어는 없다. 한 선거구에서 의원 1명을 뽑을 수도 있고 4명 혹은 40명을 뽑는 나라도 있다. 선거구당 선출하는 의원 수가 2명인 제도와 40명인 제도를 하나로 묶어 말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왜 이렇게 됐을까? 권위주의 체제의 유산이다. 박정희 시대와 전두환 시대에 한 선거구에서 2명을 뽑는 제도가 있었고, 그 제도를 중대선거구제라고 불렀다. 유신 체제의 박정희 정권이 야당 정치인을 회유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 당시 일본에서 수입했다. 일본은 1993년 이전까지 유권자는 1표를 행사하고 한 선거구에서 의원 2인 이상을 선출했다. 이 제도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이 제도 덕분에 일본 자민당 정권은 오래오래 집권당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른바 ‘동반당선 효과’로 자민당 공천자는 1등이든 2등이든 당선됐기 때문이다. 혹은 운이 좋으면 야당에 1등 자리를 내주더라도 2등이나 4등으로 두명이 당선될 수도 있었다.

박정희, 전두환 체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당인 공화당과 민정당 공천자는 1등이든 2등이든 당선됐고, 그렇게 권위주의 체제 집권당은 그 제도 덕분에 원내 제1당이 됐다. 그래서 지금도 여의도에서 중대선거구제라는 용어는, ‘지금 현재 원내 제1당과 제2당이 전국 어디에서든 동반당선될 확률을 극대화해주는 제도’라는 의미로 쓰인다.

가끔 이 제도의 효과에 대해 헷갈리는 분들이 있다. 2인이 아니라 3인 혹은 4~5인을 선출하게 되면 제1·2당이 아닌 다른 정당도 원내에 진출할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1993년 이전 일본에서 이미 확인됐고,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 기초 지방의회 선거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다. 4인 선거구 시범지역을 선정해 선거를 치렀는데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이 아닌 정당 후보가 당선된 사례는 2인 선거구에서보다 전혀 많지 않았다.

이유는 이렇다. 한 선거구에서 4명을 뽑을 때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후보를 몇명 공천할까? 후보자만 있다면 4명 다 한다. 혹자는 1명 혹은 2명만 공천하게 하면 되지 않냐고 묻는다. 하지만 다당제 정당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이걸 막을 방법은 없다. 개념상 ‘자발적 시민결사체’인 정당이 몇명을 공천하든 그건 그 정당의 권리라 막으면 위헌이다.

제도적으로 유권자가 한표를 행사하고 한 선거구에서 여러명 의원을 선출하는 이른바 중대선거구제는, 인간의 꼬리뼈나 사랑니 같은 흔적기관이다. 교과서에 나와 있기는 하되 현실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전에는 일본, 대만 등 몇몇 나라에서 사용했으나 지금은 아프가니스탄 등 극소수의 민주주의 후진국을 제외하고 국회의원 선거에 사용하는 나라가 없다. 왜? 단점은 많고 장점은 상회할 만한 다른 제도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전국 어디서나 사이좋게 동반 당선돼 원내 제1당과 제2당을 번갈아 하는 국회를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은가? 나는 아니다. 두 당이 중대선거구제에 합의할 요량이면 차라리 지금의 희한한 제도를 그대로 두고 위성정당을 또 만드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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