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진화기, 어른이 사라진다

한겨레 2023. 3. 23.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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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메타버스]

게티이미지뱅크

[김상균의 메타버스] 김상균 | 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역사적 관점에서 성인과 어린이의 구분은 인류가 처음으로 사회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한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에는 성인과 어린이 사이에 명확한 분업이 존재했으며, 성인은 식량채집 및 사냥과 관련된 작업을 수행하고, 어린이는 육체적으로 덜 힘든 활동을 보조했다. 18세기 후반 현대 산업사회의 등장은 아동기 역사에서 전환점이 됐다. 공장노동과 대량 학교교육이 등장하면서 어린이를 일의 세계에서 분리하고 성인이 될 준비를 돕기 위한 제도가 생겨났다. 아동은 점점 더 취약하고 보호가 필요한 존재로 여겨졌고, 국가가 아동이 착취당하거나 방치되지 않도록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근래 들어, 성인과 아동의 전통적 구분을 넘어서는 아이들이 등장하고 있다. 디지털 세상에서 디지털 재화를 만들고 유통하면서 돈을 버는 아이들, 동영상 스트리밍을 통해 이익을 얻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진화기에 들어간 아이들은 다시 산업화 이전으로 돌아가서 어른들의 경제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경제활동뿐만 아니라, 아이가 지식을 습득하고 정서적 지원을 받기 위해 필요했던 어른과의 상호작용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제 아이들은 화면 몇번만 터치하면 어른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거의 모든 주제에 관한 정보와 조언에 접근한다. 미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응답자의 81%가 온라인 건강정보를 확인한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18~19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65%가 인터넷이 건강 관련 정보의 주요 출처라고 답했다. 또한, 가정에서 절반 이상의 자녀가 이전에는 어른에게 물어봤을 질문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들이 정서적 지원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해 어른에게 의존하던 문화도 약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아이들이 친구와 어울리려면 부모 도움이 필요했고, 자신이 하는 행동을 확인해주는 주체를 부모로 여겼다. 하지만 현대 아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또래와 소통하고 또래로부터 확인과 지지를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가 유해하거나 부정확한 정보와 조언에 노출될 수 있으며, 성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얻는 개인적, 사회적 성장의 중요한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런 흐름은 가속화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모든 문화권에서 어른은 아이에 비해 많은 권력을 갖고 있었다. 경제적 능력, 지식과 경험, 사회적 네트워크 등이 그런 권력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디지털 진화기에 들어선 아이들은 이 모든 면에서 성인을 따라잡고 있으며, 일부 영역에서는 이미 성인의 그것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생애주기의 변화는 이런 현상을 더욱더 강화한다. 현대인의 삶을 삼등분한다면, 과거에는 삶의 첫번째 1/3은 배움을 위한 기간, 두번째 1/3은 경제활동을 통해 가족을 부양하는 기간, 세번째 1/3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는 기간으로 나눠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다. ‘배우며 성장, 경제활동, 휴식과 여명’ 순으로 삶을 바라본 셈이다. 그런데 인간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경제환경이 변화하면서 삶의 주기는 ‘성장, 경제활동, 재성장, 다시 경제활동, 재성장, 또다시 경제활동’ 형태로 바뀌고 있다. 어른과 아이가 성장과 경제활동을 놓고, 공존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이를 기준으로 인간 활동과 특성을 구분하던 산업화 시대의 기준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다. 요컨대, 디지털 진화기에 들어선 인류에게 어른과 아이의 전통적 구분은 점점 더 흐릿해진다. 학교와 노동현장, 그리고 사회의 다양한 법과 제도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흐려진 구분 속에서 미래 아이들은 회색지대를 배회하는 불안정한 구성원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다시 해봐야 한다. 인간 사회에서 어른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사회에 어른은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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