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손, 그 수고로움

한겨레 2023. 3. 23.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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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김윤신, <기원쌓기> 연작, 1970년대, 소나무 박달나무 등 여러나무,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크리틱] 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바쁜 하루 중간에 배고픔과 고단함을 김밥 한줄과 커피 한잔으로 달래다 손의 수고로움에 생각이 미쳤다. 우리 음식은 유독 손이 많이 간다. 김밥은 특히 만드는 이의 수고로 먹는 이의 편의를 극대화한 음식이다. 소고기김밥 한줄을 쌀라치면 당근도 채 썰어 볶고, 우엉도 채 썰어 졸이고, 계란 지단도 부쳐내 썰어야 한다. 시금치도 다듬어 무쳐야 하고, 잘게 썬 고기도 재워뒀다 볶아내야 한다. 대여섯가지 반찬을 따로 하는 수고를 밥 위에 차곡차곡 쌓고 김 한장으로 둘둘 말아 한입 크기로 잘라낸 음식이 김밥이다. 대개는 커피 한잔 값도 못한 대접을 받지만 알고 보면 김밥은 수고의 집약체다.

한국인 특유의 수고로움은 우리 미술작품을 볼 때도 절감하는 대목이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서구에서는 미니멀리즘이라는 경향이 유행했다. 세상의 주인을 자처한 인간의 오만을 반성하는 사상사의 조류로 미술가들도 창조자의 지위를 반납하고자 했고, 그 방법론의 하나로 작가들은 작품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공장에 맡겨 일정 크기로 잘라낸 철판을 전시장 바닥에 깔거나, 벽에 붙이는 식이었다. 행위와 의미를 최소화하겠다는 의지였는데, 유독 한국 작가들은 의미를 비워낼지언정 손의 수고는 포기할 줄 몰랐다. 선을 긋거나, 점을 찍는 행위를 누가 더 수행하듯 반복해 무아지경에 이를지 경합하는 태세였다.

케이(K)컬처 열풍과 함께 K의 정체를 안팎에서 궁금해한다. 우리 미술계가 내내 고민해 온 바이기도 하다. 일본을 경유해 서구문화를 수용한 근대의 굴절 속에서 내 것을 찾고자 한 숙명의 과제였지만 풀지 못한 숙제였다. 고인이 된 이어령 선생에 따르면, 그건 눈앞의 내 코를 볼 수 없는 이치로, 그 안에 살고 있기에 한국을 알지 못하는 역설이었다. 규정할 수 없고 다만 실감할 뿐인데, 오방색 같은 1차원적 소재가 아닌 특유의 정서를 우리 미술 안에서 찾는다면 이 수고로움이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김윤신의 작품을 보면서 새삼 한국성의 정체를 떠올렸다.

해외체류 기간이 길었던 탓에 한국미술사에서 이름이 누락된 김윤신은 1세대 여성조각가로 재조명이 필요한 작가다. 1935년생인 그는 홍익대 재학 시절 전쟁통에 버려진 무기 고철을 용접했고, 프랑스 유학 때는 대리석을 새겨 판화를 찍었다. 아르헨티나로 이주해서는 단단하기로 손꼽히는 팔로산토나무를 깎았고, 멕시코에서는 보석 수준의 경도를 자랑하는 오닉스 원석을 깎았다. 무릇 조각이란 사물을 탐구하는 여정이라지만, 어렵고도 위험한 그의 작업은 고행에 가까웠다. 단단한 사물을 찾아 세계를 돌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한국에 온 그는 여전히 손에 톱을 든 채 작업한다.

이국에서의 세월이 수십년인데, 그의 조각에서 묻어나는 정서는 낯설지 않다. 유학 직후 1970년대 작업한 <기원쌓기>는 맨손으로 돌을 쌓아 정성이 하늘에 닿기를 바라는 돌탑을 닮았다. 버려진 나무조각을 깎아 수직으로 쌓아 올리면서 한옥을 올릴 때의 짜맞춤 기법을 사용했다. 아르헨티나에 정착해서 제작한 1980년대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 조각 기둥은 마을 어귀에서 만날 법한 목장승을 닮았다. 일상 공간과 기물에서 한국인의 마음을 엿보고자 한 이어령 선생은 장승에서 수직적 생의 열망을 읽기도 했다. 식물이 위로 솟는 형상의 한자 생(生)에서 보듯 하늘을 향한다는 건 염원의 표현이다.

김윤신 작가의 조각도 가지를 위로 뻗는 나무의 생을 그대로 드러낸다. 작가는 나무라는 존재와 교감하며 나뭇결이 이끄는 대로 기도하듯 조각한다고 했다. 그는 미리 디자인하지 않고 세공하지 않는다. 더디고 투박한 그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건 낯설지 않은 수고로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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