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노동자 친근하게 느끼도록 ‘이야기 그림’ 그렸죠”

강성만 2023. 3. 2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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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민중미술가 이윤엽씨
이윤엽 작가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작가 뒤로 농부의 발을 그리고 땅이라는 제목을 붙인 판화 작품이 보인다. 강성만 선임기자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이윤엽 이야기 판화 그림책>(서유재).

민중미술가인 이윤엽 작가가 최근 펴낸 이야기 그림책이다. 2008년 무렵부터 약 10년 동안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연재한 ‘이야기 판화 그림’을 모았다. 매달 마감에 닥쳐 먼저 글을 쓰고 목판을 새긴 것도 있고 작가의 기존 판화에 시간을 두고 글을 붙여 완성하기도 했다.

목판화가인 그는 ‘파견미술가’로도 불린다. 2006년 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대추리 투쟁 땐 2년 동안 현장에 눌러살았고 2009년 용산참사 때는 파견미술팀까지 꾸려 철거민 투쟁을 지원했다. 박근혜 퇴진 촛불 땐 6개월가량 광화문에서 텐트촌 예술가 주민으로 살았다.

지난 16일 오후 경기 안성시 보개면 작업실에서 이 작가를 만났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표지.

“제 글을 보고 아이들이 농민이나 노동자를 친근하게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어린아이들은 농민이나 노동자를 무서워하잖아요. 저도 노동자, 농민을 그릴 때 좀 세게 그리는 편입니다. 물론 그게 거짓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과 가까이 생활해보면 친근한 사람들이란 것을 알 수 있어요. 그 점을 글로 위트 있게 표현하고 싶었죠.”

이처럼 그의 그림 속 주인공인 농촌 마을 이웃들은 퉁명스럽지만 친근하게 삶의 진실을 이야기한다. ‘김씨 아저씨’는 농사일이 왜 힘들지 않으냐는 화자의 질문에 “힘든데 벼가 튼튼하게 잘 자라서 기분이 좋으니까 안 힘들다고. 됐냐?”라고 단박에 의문을 풀어주고, 코딱지만 한 땅에도 파와 호박을 심어 욕심쟁이로 알았던 할머니는 어느 날 파꽃과 호박꽃을 들어 보이며 꽃이 예뻐 자꾸 심는다고 말해 화자를 놀라게 한다. 책엔 농부의 발을 그리고 제목을 땅이라고 한 그림도 있다. 작가는 땅을 그리고 싶은데 너무 커서 고민하던 중 “맨날맨날 논으로 밭으로 땅을 밟고 다닌” 농부 아저씨 발에서 땅을 보았다고 고백했다.

이윤엽 판화 ‘꽃을 든 할머니’ 이윤엽 작가 제공

작가가 올해로 16년째 사는 시골 동네와 그 주변에서 무시로 만나는 동식물도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줄이 엉켜 꼼짝을 못 하는 왜가리를 구하기 위해 꽤 오랫동안 눈을 맞춰 왜가리를 안심시킨 뒤 줄을 풀어주었다는 이야기나 작가가 키우는 진돗개에 물려 죽은 너구리를 감나무 아래 묻어 주었는데 한밤중에 감나무 위에 다른 너구리가 올라가 있어 더 슬퍼졌다는 이야기에서 어린이 독자들은 동물과 교감하려는 인간의 마음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책에는 대추리 투쟁을 다룬 ‘황새울’이라는 글도 있다. “이번에 책을 내면서 오랜만에 그 글을 보고 저도 깜짝 놀랐어요. 정말 잘 썼더라고요. 대추리 투쟁 때 2년을 주민들과 같이 살면서 굉장히 친해졌거든요. 내부에서 싸우기도 했지만 굉장히 좋은 분들이었죠. 그런데 제가 글에서 그분들을 좋은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했더군요.”

그의 자평대로 그림에 붙은 글은 “현학적이지 않고 솔직하고 위트가 있다.” “사실 제가 그림보다 글이 먼저였어요. 미대를 나와 찻집을 열었는데요. 그때 그림은 포기하고 글을 많이 썼어요. 찻집 문을 밤늦게 닫고 마음이 허해 피시방에 가서 아무거나 막 썼어요. 제가 견디지 못해 쓴 글들이었죠. 글이 판화 작업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죠.”

‘고래가 그랬어’ 10년 연재물 모아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출간 일하는 사람들과 동식물과의 교감에서 얻은 삶의 진실 들려줘

2006년 대추리 2009년 용산참사 등 파견미술팀 꾸려 머문 ‘파견미술가’

고교 졸업 뒤 3년 동안 극장 간판을 그리다 뒤늦게 25살에 미대에 들어간 이 작가가 대추리 투쟁 현장에 오래 머물렀던 것은 “나를 두고 민중미술가라고 하는데 도대체 민중은 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대추리에 들어가기 전만 해도 민중이란 말에 특별한 뭐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나고 보니 우리 모두가 다 민중이더군요. 사람들 욕을 먹는 권력자도 약간 나쁜 민중일 뿐이죠.” 그리고 민중미술은 “주변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며 “어떤 작품이든 작가가 드러나지 않는 예술은 후졌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단다. “이발소 그림이나 장식적인 요소가 강한 그림은 작가가 보이지 않잖아요.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그림은 아니죠. 그림을 보면 작가 등 뒤에 누가 있는지 보입니다.”

요즈음 ‘파견미술가’로서 활동을 묻자 그는 “시큰둥하다”며 말을 이었다. “지난 몇 년 노동자 투쟁 현장도 법정 중심으로 많이 바뀐 것 같아 우리 역할이 줄었어요. 이런 변화가 바람직하다는 생각도 하지만 투쟁 공간이 좁아지니 아무래도 예술가들이 개입하기 쉽지 않아요. 노동자들이 천막을 치고 그 앞에 널따란 공간이 있어야 걸개그림도 걸고 조형물도 설치할 수 있거든요.”

그는 ‘예술가 이윤엽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투쟁 현장을 “계속 기다리긴 한다”고도 했다. “우리(‘파견미술가’)끼리 모여 누군가 공장점거를 해주면 좋겠다는 말도 해요. 그런 현장은 사람들 속에서 꿈틀꿈틀거리는 살아있는 에너지를 그릴 수 있는 기회이거든요. 우리가 함께 모일 수도 있고요.”

이윤엽 판화 ‘김씨의 봄’ 이윤엽 작가 제공

‘파견미술가의 시간’은 사람들의 이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단다. “저는 대추리의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사람들이 말로만 하던 공동체의 맛을 제대로 느껴봤거든요. 경찰에 포위당해 주민들과 함께 갇히기도 했는데요. 그때 우리끼리 스스로 규율을 정하고 잠깐이지만 해방감을 느꼈어요. 자본이 개입하지 않는 그런 상황요. 거기서 사람들의 이쁜 면을 제대로 보았죠. 서로 힘이 되는 모습이죠.”

가장 닮고 싶은 작가로 민중미술가 신학철을 꼽은 그는 예술가로서 어떤 꿈을 꾸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가 나한테 해방되는 꿈을 꿉니다. 요즈음 글을 쓰거나 작업을 해도 답답해요. 너무 뻔한 그림만 그리고 있다는 생각에서요. 예술의 종착은 자기를 바꾸는 것인데요. 그러려면 자기를 확실히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내 안의 검열 탓에 그게 힘들어요. 제가 못 배우고 지식도 많지 않지만 그동안 보고 들은 게 내 안에서 검열을 해요. 나를 까발리고 그림을 하면 좋겠는데, 쉽지 않아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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