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 입법, 심의·표결권 침해…'위장탈당'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 보니

문창석 기자 2023. 3. 2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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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위 법안심사 통과 위해 자당 의원 탈당 '변칙'
헌재 "미리 가결조건 만들어 위법…법안 무효는 아냐"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에 참석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3.3.23/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헌법재판소가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대해 23일 무효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입법 과정에서 벌어진 위장 탈당 등 초유의 '꼼수'에 대해선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이 일부 침해됐다고 인정했다.

당시 상황을 복기해보면, 지난해 4월 12일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열고 검찰 수사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하는 내용의 당론을 채택했다. 다음 날인 13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은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며 민주당 내 법안 강행 처리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15일에는 민주당이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당 소속 의원 171명 전원의 서명으로 대표 발의하면서 국회 내 전운이 더욱 고조됐다. 18일에는 법안 심사를 위한 법제사법위원회 1소위가 열렸지만 막말과 고성 등이 오가며 밤샘 공방 끝에 소위가 파행되는 등 극한 대치가 이어졌다.

민형배 무소속 의원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3.3.23/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여야 대치 구도는 20일 민형배 의원이 '위장 탈당'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당시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해 법안 심사 지연 작전을 쓸 것을 대비해 민주당 성향 무소속 의원인 양향자 의원을 법사위에 배치했다.

국회법상 안건조정위에서 의결된 법안은 소위 심사를 거친 것으로 간주되기에 곧바로 전체회의 의결까지 직행할 수 있어서다. 안건조정위는 제1교섭단체(민주당)의 조정위원 수와 제1교섭단체에 속하지 않는 조정위원 수를 3대3으로 같게 해야 하고, 재적 조정위원 3분의 2 이상(6명 중 4명)의 찬성이 없으면 최장 90일간 법안 심사를 끝낼 수 없다. 무소속인 양 의원을 비교섭 단체 위원 몫으로 참여시켜 안건조정위에서 법안을 의결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런데 이를 위해 법사위에 배치한 양 의원이 예상과 달리 법안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야당의 계획은 꼬여버렸다. 이에 민주당은 당시 민주당 법사위원이었던 민형배 의원의 탈당이라는 초유의 변칙 수를 뒀다. 탈당으로 무소속이 된 민 의원이 기존에 양 의원의 역할을 대신 맡은 것이다. 결국 안건조정위는 민주당 3명, 국민의힘 2명, 민 의원(무소속)으로 구성돼 4대 2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지난해 4월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96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 참석하는 도중 국민의힘 의원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공동취재) 2022.4.30/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의 표결 방해 행위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27일 새벽 박광온 당시 법사위원장이 전체회의에서 법안 처리하는 걸 막기 위해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위원장석을 점거하며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30일에는 박병석 국회의장의 본회의장 진입을 막기 위해 국민의힘 의원들이 점거 농성을 벌이다 국민의힘 의원들과 이를 제지하던 의장실 직원들이 뒤엉켜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회기 쪼개기'도 눈총을 받았다. 임시국회 회기는 통상 30일 동안인데 이를 수일 단위로 쪼개 소집한 것이다. 4월 27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자 국민의힘은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를 진행하면서 표결이 진행되지 않았다. 이에 민주당은 회기 쪼개기를 통해 임시국회 종료일을 28일 0시로 설정하고, 회기 종료에 따라 무제한 토론이 자동으로 끝나자 30일 본회의에서 법안 표결 절차를 밟아 가결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3.3.23/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헌법재판소는 당시 민주당의 '위장 탈당'에 대해 국민의힘 측 손을 들어줬다. 헌재는 법사위원장의 법안 가결 선포 행위가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는 국민의힘 주장을 5대 4로 인용했다.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헌법재판관은 "법사위원장은 회의 주재자의 중립적인 지위에서 벗어나 조정위원회에 관해 미리 가결의 조건을 만들어 실질적인 조정심사 없이 조정안이 의결되도록 했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이는 국회법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회의 주재자의 중립적 지위와 실질적 토론을 전제로 하는 헌법상 다수결 원칙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국회의장의 '회기 쪼개기'는 무효라는 국민의힘 측 주장에 대해선 가결·선포행위에 법 위반이 없다고 판단했다. 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 헌법재판관은 "헌법과 국회법에 회기의 하한에 관한 규정이 없으므로 짧은 회기라고 해서 위헌‧위법한 회기로 볼 수 없다"며 "적법하게 결정된 회기가 종료돼 무제한 토론이 종결되었으므로 무제한 토론 권한이 침해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이 침해했다고 판단했지만, 법안 통과 자체는 유효하다고 봤다. 헌재는 '해당 법안들이 무효임을 확인해 달라'는 국민의힘의 청구에 대해 "청구인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 침해가 인정되더라도, 그 정도가 국회의 기능을 형해화(형식만 남고 의미가 없게 됨)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으므로 국회의 형성권을 존중해 무효확인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 선고에 대한 입장을 말하고 있다.2023.3.23/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음주하고 운전했는데 음주운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해괴망측한 논리가 어디 있나"라며 "황당한 궤변의 극치다. 헌재가 아니라 정치재판소 같아 보인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심의·표결권의 침해는 인정하지만 법안은 무효가 아니라는 아주 앞뒤가 안 맞는 결정을 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헌법 정신에 기인해 국회 입법권과 검찰개혁 입법 취지를 존중한 결정"이라며 환영했다. 당시 법사위원장이었던 박광온 민주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이 법사위원장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낸 것에 대해 "국민의 대표 기관인 입법부의 권위를 국민의힘이 스스로 떨어뜨린 것에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them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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