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주타깃은 '지배구조'… 기업들 "차등의결권 절실"
◆ 행동주의 공습 ◆
SM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주주제안으로 유명세를 탄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오는 30일 JB금융 주주총회에서 대주주 측과 표 대결에 나선다.
얼라인 외에도 FCP와 안다자산운용은 KT&G(28일), 트러스톤자산운용은 BYC(24일)와 태광산업(31일) 주총에서 '일전'을 앞두고 있다.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소각 확대를 통한 주주가치 제고와 이사진·감사 선임 등이 주요 안건이다. 이들 펀드 외에도 소액주주나 슈퍼개미들까지 대거 주주제안을 해놓고 있어 해당 기업들은 주총 예상 시나리오를 짜면서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부심하고 있다.
의결권 관련 조사기관인 인사이티아는 최근 한국을 '올해 주목할 만한 행동주의 펀드 활동 국가'로 소개했다. 한국에서 행동주의 펀드 활동이 갑자기 활발해졌다는 이유에서다. 간혹 외국 펀드들이 대기업을 노린 적은 있지만 토종 행동주의 펀드는 '무풍지대'였던 과거와 사뭇 달라진 양상이다. 상장사들은 언제든 표적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비상이 걸렸다.
한 코스닥 상장사 대표는 "행동주의 펀드 활동을 보면서 우리 회사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또 대응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임직원들에게 준비를 지시했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까지 지분을 사들여 주주제안을 해온 사례는 개인투자자가 전부라 대응에 어려움이 크지 않았으나, 행동주의 펀드는 전문적 지식까지 갖추고 있어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행동주의 펀드들은 회사 측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른 펀드나 주주와 연계해 소송에까지 나서는 등 더욱 공격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23일 매일경제신문이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와 함께 진행한 조사에서도 상장사들의 불안감이 두드러졌다. 설문 결과 국내 기업 36.6%는 최근 활발해지는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지배구조를 비롯해 주주환원 정책 등에 대해 검토했다고 답했다. 설문에 참여한 한 기업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운 없으면 걸린다' '이름 있는 기업만 공격한다'고 여겼던 것이 현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상장사들은 행동주의 펀드 공세에 맞서 경영권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호소한다. 이번 조사에서도 차등의결권 44.7%(55곳), 포이즌필 5.7%(7곳), 황금주 4.1%(5곳) 등 경영권 안전 장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인사이티아에 따르면 국내 행동주의 펀드 활동은 지배구조, 환경, 경영 참여(이사 선임) 부문에서 증가하고 있다. 이사 선임 활동은 2020년 4건에 불과했지만 2021년 18건, 지난해에는 22건을 기록했다.
환경 관련 활동은 2020~2021년 0건에서 지난해 12건으로 늘었다. 주주배당 역시 2020년 2건, 2021년 9건, 지난해 14건으로 계속 확대됐다. 지배구조는 2020년 7건에서 2021년 14건, 2022년 25건에 이어 올해는 이미 23건에 달한다. 지배구조 관련 안건에는 대주주에게 우호적인 의사결정 구조 개선, 계열사 간 내부거래 제한 등이 포함된다. 은경완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투자자가 늘면서 기업 사정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아졌다"며 "양극화가 심해진 상황에서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 주주배당 확대 등과 같은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이 많은 투자자에게 지지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과거 대기업들이 공격받았던 지배구조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기업이 많아 언제든 펀드 공세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행동주의 펀드에 대해 해외에서도 평가는 엇갈린다. 주가 상승을 이끌어내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 가치에 도움이 안 된다는 분석도 있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올해 디즈니·세일즈포스 등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았던 미국 대형주들이 배당을 증액하거나 경영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세일즈포스는 이달 초 인수·합병(M&A)에만 치우쳐 있다는 비판을 수용해 관련 조직을 없애고 경영혁신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디즈니는 행동주의 펀드 요구를 수용해 55억달러 비용 절감과 배당 부활 계획을 내놨다. 두 기업 주가는 소폭 상승했지만 이후 주가 흐름은 다르게 나타났다.
행동주의 펀드를 바라보는 시각은 역사가 오래된 미국에서조차 엇갈린다. '자본시장의 현명한 투자자'라는 별명과 함께 '테러리스트' '흡혈귀'라는 꼬리표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은 기업에서 이직률이 높고, 특히 단기 차익을 노리는 경우에는 오히려 기업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강형구 한양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과도한 경영 개입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행동주의 펀드 활동은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이바지했다고 학계는 보고 있다"며 "한국은 시작 단계인 만큼 현재 상황에선 불안과 기대가 공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원호섭 기자 / 김정범 기자 / 차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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