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 57%, 참사 6년 후에도 '트라우마' 지속

박정연 기자 2023. 3. 23. 17:1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내 첫 대규모 장기 코호트 연구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내달 세월호 참사 9주기를 앞둔 가운데 세월호 사고 유가족은 사고가 발생하고 6년이 지난 이후에도 정신건강 악화 상태가 지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유가족 중 절반 이상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이 나타났으며 3명 중 1명은 슬픔과 분노, 무기력감이 나타나는 울분장애 증상이 지속됐다. 4명 중 1명은 의학적으로 자살 위험성이 높은 상태에 놓인 것으로 분석됐다.

동일한 재난사고의 경험자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국내 첫 대규모 장기 코호트 연구 결과로 재난사고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3일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6년간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의 정신건강 상태를 추적 관찰한 연구 결과를 묶은 백서에 따르면 이들의 사고로 인한 정신건강 악화는 장기간 지속됐다.

2015년부터 2021년 초까지 진행된 추적 관찰 조사에는 세월호 유가족 및 생존자 가족 총 287명이 참여했다. 연구팀은 고려대 안산병원과 협력해 1년마다 유가족 및 생존자 가족의 정신 및 신체건강 평가를 진행했다. 정확한 평가를 위해 나이와 성별 등 인구학적 요인, 치료개입 여부, 기존 정신건강 상태, 심리적 지원 여부 등의 요소 관련 자료도 함께 수집했다.

연구팀은 세월호 유가족 및 생존자 가족과 세월호 사고를 경험하지 않은 대조군과의 비교분석을 매년 진행했다. 정신건강 평가도구를 통해 임상적으로 정신건강의학적 증상이 판단되는지 확인했다.

우울증상의 경우 조사가 시작된 첫해인 2015년에는 조사에 참여한 유가족 중 94%와 생존자 가족 79%에게서 나타났다. 유가족의 우울증상 임상군 비율은 2016년 74%→2017년 76%→2018년 61%→2019년 66%→2020년 62% 등 시간이 지나면서 비율이 점차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생존자 가족의 우울증상 임상군 비율 또한 2016년 57%→2017년 59%→2018년 43%→2019년 41% 등 시간에 따른 감소세가 관찰됐다. 다만 연구팀은 세월호 사고를 경험하지 않은 유사한 조건의 대조군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의 우울증상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일명 ‘트라우마’로 알려진 PTSD 증상으로 판단된 비율은 2016년 유가족에게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참여 유가족 중 86%가 PTSD 임상군으로 판단됐다. 유가족 중 PTSD 임상군으로 분류된 비율은 2017년 66%, 2017년 62%, 2018년 62% 등 감소세를 보이다가 2019년에는 68%로 다시 올랐다. 2020년에는 57%가 PTSD 임상군으로 판단되면서 다시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불안증상의 경우 참여 유가족은 2018년까지는 불안증상이 다소 감소했지만 2019년에 다시 악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후 추적 관찰이 마무리된 2020년에 불안증상 임상군 비율이 다시 감소하며 호전되는 경향이 관찰됐다.

생존자 가족의 경우 2016년에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가 이후 임상군이 감소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 모두 시간 경과에 따라 불안 임상군이 감소하고 증상이 완화됐지만 세월호 사고를 경험하지 않은 대조군 수치와 비교하면 여전히 많은 비율이 중증도 이상의 불안증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조사에서 불안증상 임상군으로 분류된 각 참여자 그룹별 비율은 유가족 34%, 생존자 가족 31%, 대조군 10%로 나타났다.

자살위험성의 경우 유가족에게선 2016년 이후로 자살위험성 임상군 비율이 점차 낮아지는 양

상이 나타났다. 생존자 가족은 2015년 32%가 임상군으로 분류됐고 이듬해 자살위험성이 높은 대상자가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2018년까지 다소 임상군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 뒤 비율에 큰 변동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자살위험성 임상군으로 분류된 유가족과 생존자가족 비율은 2015년 유가족 28%, 생존자가족 32%였으며, 2020년 유가족 25%, 생존자가족 14%로 나타났다.

세월호 사고를 경험한 유가족들에게선 복잡성애도(ICG)의 임상군 비율이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복잡성애도란 슬픔과 함께 분노, 우울, 불안감 등 다양한 감정이 한꺼번에 발현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복잡성애도 임상군으로 분류된 유가족 비율은 2015년 94% →2016년 97%→2017년 89%→2018년 85%→2019년 86%→2020년 81%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허휴정 인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고 발생 18개월이 지난 첫 조사 당시 사고로 자녀를 잃은 유가족의 94%가 극심한 애도반응을 보였으며 역시 90%가 넘는 분들이 중등도 이상의 우울감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이어 “2020년도 추적 관찰 결과를 살펴보면 약 62%의 유가족들이 여전히 중등도 이상의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으며 81%가 자녀를 잃은 슬픔과 애도로 고통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채정호 교수는 “일반적으로 큰 사고를 겪은 이후 시간이 지나면 애도와 같은 부정적 감정이 사그라들어야 하지만 세월사고 유가족이나 생존자가족은 오랫동안 회복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6년간의 추적 관찰에서는 대체로 정신건강상태 악화가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후속연구에서는 어떤 시기에 회복이 이뤄지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