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소비 줄어드는데"...野는 왜 '쌀 의무매입법'을 밀어붙였나

안재용 기자 2023. 3. 2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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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남는 쌀은 세금으로?②
[편집자주] 일정 수준 이상 남는 쌀을 정부가 사들이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됐다. 남아도는 쌀이 더 늘어나고, 이 때문에 나랏돈이 낭비된다는 여당의 반발에도 야당은 밀어붙었다. 재정을 아끼고 시장 원리를 지키면서도 쌀 농가의 소득 안정성을 확보할 방법은 없을까.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여당의 반발에도 '쌀 의무매입법'(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한 것에 대해 일각에선 내년 총선을 노린 정치공학적 포석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전통적인 곡창지대이며 지지기반인 호남(전북·전남)을 챙기는 동시에 쌀 생산 비중이 작지 않은 충남과 경기 지역의 농민표를 공략하는 전략이란 것이다. '이재명 대표 방탄'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민생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깔렸다는 해석도 있다.

국회는 23일 본회의를 열고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재석 266명 중 찬성 169표·반대 90표·기권 7표로 통과시켰다. 여당인 국민의힘과 정부는 해당 법안에 반대했으나 과반을 넘는 의석을 보유한 민주당이 강행 처리했다.

이날 통과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 이상이거나 수확기 쌀값이 전년 동기 대비 5~8% 이상 내려가면 정부가 의무적으로 쌀을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초 민주당은 수요 대비 초과생산량 3%, 가격하락폭 5%를 제시했으나 김진표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개정안을 수정했다.

반면 정부·여당은 매입 의무화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매입의무 조항이 시장원리에 맞지 않고 쌀 공급이 늘어 가격 조절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쌀 의무 매입에 투입되는 재정부담도 크게 늘어난다.

실제로 쌀 소비량은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 국민의 식습관이 밥을 줄이고 고기 등을 더 많이 소비하는 방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지난 1월 발표한 '2022년 양곡소비량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7kg으로 전년대비 0.4%(0.2kg) 줄었다. 10년 전인 2012년 연간 쌀 소비량이 69.8kg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0kg 넘게 줄어든 수치로, 30년 전(1992년 124.8kg)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식습관 변화로 쌀 소비량이 늘어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쌀 소비량이 감소 추세인 만큼 생산량 또한 줄어드는 것이 자연스러우나 개정안이 시행되면 쌀 생산량이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의무매입 조항 때문에 농가들이 가격 폭락 리스크를 부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9월 발표한 '쌀 시장격리 의무화의 영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개정안 시행 시 2022~2030년 동안 연평균 쌀 초과 생산량은 46만8000톤에 달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2022년산 쌀 초과 생산량 15만5000톤보다 3배 많은 수치다. 농촌경제연에 따르면 초과 생산된 쌀 매입에 들어가는 예산은 해당 기간 연평균 1조443억원, 2030년에는 1조4042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개정안에 '쌀 재배면적이 늘어나면 의무매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조항이 포함돼 있긴 하나 쌀 재배면적은 감소 추세다. 2012년 84만9000ha에 달하던 쌀 재배면적은 지난해 72만7000ha로 줄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한 것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농민표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 전체 농가의 약 절반이 쌀 농사를 짓는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단기적으로는 쌀 가격 하락을 막아 쌀 농가의 소득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소비량이 줄어드는데 초과 공급량이 늘어나면 중장기적으로는 쌀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크나 당장 재배면적을 늘리기 어려운 쌀 특성상 제도시행 몇년간은 쌀 가격이 오르거나 유지될 수 있다.

민주당 입장에선 전통적 텃밭인 호남에 혜택을 주는 것에 더해 충청권과 경기 도농복합지역의 농민 표심을 얻으려는 의도도 큰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서울·경기·인천)과 충청권이 여야간 최대 격전지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해당지역 쌀 생산량이 상당해 농민표심이 당락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에서 쌀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은 전남으로 지난해 74만3000톤을 수확했다. 전국 쌀 생산량 중 19.7% 수준이다. 두번째로 생산비중이 높은 지역은 충남으로 19.3%(72만5000톤)를 차지하고 있다. 전북의 쌀 생산비중은 16.5%(62만2000톤)다. 이 밖에도 △경북 13.6%(51만1000톤) △경기 9.8%(36만7000톤) △경남 8.8%(33만1000톤) △충북 4.5%(17만1000톤) △기타 4%(14만9000톤) △강원 3.8%(14만4000톤) 등이 뒤를 이었다.

민생법안을 앞세워 민주당에 부담이 되고 있는 이른바 '이재명 방탄' 프레임을 전환하려는 의도 역시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평론가인 박창환 장안대 교수는 "'우리는 민생을 열심히 챙기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라며 "사법리스크에 빠진 민주당이 여당과 차별화를 하겠다는 것으로 다양한 포석을 깐 행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농민들에게는 (양곡관리법 입법이) 당장 중요하겠으나 국민 전체에게 (양곡관리법이) 피부에 와닿는 민생이냐고 하는 점에서는 효율적이라 하기 어렵다"며 "택시기사에 밀린 타다 사례와 유사한데, 타다법이 당시 정말로 민생 법안이었는지는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치적으로는) 코로나 때 경기도에서 재난지원금을 가장 먼저 준 게 눈덩이가 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데 큰 힘이 됐다"며 "총선을 앞두고 지지기반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안재용 기자 po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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