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가나로 직접 뛰며 中企 애환 그렸죠"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3. 3. 2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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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시즌2로 돌아온 만화가 윤태호 인터뷰

대기업 종합상사를 떠난 '미생' 장그래와 오상식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퇴사 후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이들은 '완생'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최근 서울 마포구 슈퍼코믹스스튜디오에서 만난 만화가 윤태호는 "이미 시즌2 마지막 장면과 시즌3 기획까지 구상해 뒀다"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인기 만화 '미생'의 '그 후' 이야기가 폭풍 전개되고 있다. 미생은 앞서 2012~2013년 시즌1 연재, 2014년 배우 임시완(장그래)·이성민(오상식) 주연의 tvN 드라마 방영으로 인기를 끌었다. 바둑 용어 '미생'은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내용과 통찰이 공감을 사면서 '고군분투하는 사회인'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이게 됐다.

11년째 직장 만화를 연재 중인 윤 작가도 고군분투 중이다. 2015년 시즌2 연재를 시작했지만 팔 부상과 다른 작품 연재가 겹치며 2018~2021년 공백기를 보내고 다시 본궤도에 올랐다. 지금은 매주 목요일 밤샘 작업, 주중엔 외부 취재를 하는 일상을 유지한다. 지난달에는 3년여 만에 단행본 15권을 냈다. 올해 18권까지 순차적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시즌2는 장그래 등의 안착·출장·결혼 등 세 가지 소주제로 펼쳐지는 중이다. 창업 초기 기업의 애환, 거래처를 뚫기 위한 '계란으로 바위치기'식 해외 출장 등 보기에 따라 처절하거나 실용적이고 흥미진진하다. 모두 윤 작가의 취재를 바탕으로 빚어졌다. 주로 중소·영세기업을 상대하는 한국무역보험공사, 코트라(KOTRA) 같은 공공기관 직원들에게서 도움을 받았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작품 댓글에 곧잘 올라오는 글도 참고한다.

극중 장그래가 만나는 요르단 현지 중고차 부품상 '타르칸 사장' 이야기는 윤 작가가 2013년 요르단을 방문했을 때 취재한 내용이다. 요르단은 네 차례, 가나는 한 차례 직접 방문했다. "당시 그분 회사 뒷마당에 못 쓰는 차 부품 몇천 개가 널려 있었는데 한국 업체에 사기당한 거였어요. 만화에서라도 사기꾼을 응징하려고 그 내용을 최근 연재분에서 에피소드로 다뤘어요. 그 후 마침 타르칸 씨가 업무차 한국에 와 있다는 걸 알게 돼 저녁식사를 함께하기로 했어요. 10년 만에 만나는데, 기운 좋은 우연이 겹쳤죠."

요르단에서 만났던 중고차 부품 중개상 타르칸 씨를 모델로 그린 에피소드.

취재와 연재를 오가는 일상 속에 직접 '상사맨'에 빙의한 듯한 경험도 생긴다. 극중 장그래의 대기업 입사 동기 안영이·장백기 등이 추진하는 신사업 '철강 유통 플랫폼'과 사내 갈등에 관한 내용은 윤 작가가 대기업 체질 개선에 관한 기사를 보고 아이디어를 낸 기획이다. 마침 국내에도 유사한 온라인 플랫폼이 출시돼 있었고, 후속 취재가 비교적 수월하게 이뤄졌다.

"자꾸 만나서 친해져야 해요. 그분들이 부지불식간에 쓱 꺼내는 말을 듣고 대사로 만들어야 하거든요. 맥주 한 잔을 함께 마셔도 휴대폰 녹음기를 켜둬요. 그걸 저희 스태프가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받아 치죠. 말 중간의 추임새, 숨소리, 제대로 끝맺음되지 않는 부분까지 챙겨요. 독자가 어감만 보고도 이 사람이 '철강맨'이란 걸 느낄 수 있게끔 톤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치밀한 취재 습관은 창작자가 가진 두려움의 승화다. 그는 "취재 과정에서 어떤 은어를 알게 돼도 쾌감보다는 '몰랐으면 어쩔 뻔했나'라는 짜르르한 느낌이 든다"고 표현했다. 또 "글과 비주얼(그림)을 둘 다 책임지는 사람은 어느 한쪽으로 책임을 미룰 수가 없다. 디테일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미리 글을 써놓고 그림을 그리는 윤 작가의 목표는 '그림 그리는 내가 글 썼던 나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쓰자'는 것. 살벌하기까지 하지만, 그가 디테일에 고통받으면서도 여전히 디테일을 추구하는 건 독자에겐 기쁨이다.

독자는 그에겐 '제3의 조력자'다. '미생'은 연재분 댓글 창에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듯 털어놓고 가는 독자가 유독 많다. "바둑 연수생이던 장그래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 '실패한 과거가 나를 일으켜 세운다'는 댓글을 달아주셨어요. 그게 이후 '미생' 작품의 톤&매너를 잡아줬고, 저 개인에게도 힘이 됐습니다. 인생이란 게 지우개로 지울 이유도 없고, 안 좋은 기억이더라도 다른 색채로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 같거든요."

시즌2는 창업과 안착, 출장과 성장을 거쳐 '결혼'을 다룬다. 요즘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 결혼을 하더라도 부딪치게 되는 문제가 소재다. 윤 작가는 대학생 아들과 고등학생 딸이 있지만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쪽의 이유도 이해가 간다. 어느 편을 들 수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제 개인이 어떤 주장을 하든 작품 안에선 메시지 전달보다 풍경 묘사가 더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작품이 나온 후에 독자들 판단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정주원 기자 / 사진 박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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