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하고 당당하게 돌아온 뮤지컬 '레드북'
슬퍼질 때 야한 상상하는
女소설가의 발랄한 이야기
애들은 가라, 남자도 가라. 여성의 최고 덕목은 좋은 남자를 만나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 금기시되던 새빨간 책 '레드북'이 공개된다. 실명을 까고(?) 당당히 대중 앞에 선 주인공 안나는 "슬퍼질 때마다 야한 상상을 한다"는 엉뚱한 캐릭터다. 거리에서 당한 성추행에 항의하다 유치장에 잡혀 들어가도, 꼴 보기 사납게 여자가 무슨 글이냐며 손가락질을 받아도 사람이라면 할 말은 있다고 맞받아치는 당돌함을 지녔다.
최근 개막한 뮤지컬 '레드북'은 이처럼 독특하고 창의적인 여성 캐릭터와 눈에 띄는 서사로 초연 이후 줄곧 관객의 큰 사랑을 받았다. 2018년 제7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를 시작으로 2019년 제3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지난해 제6회 한국뮤지컬어워즈까지 작품상, 연출상 등을 휩쓸었다. 귀에 꽂히는 중독적인 넘버와 위트 넘치는 대사 등 매력이 큰 작품이다.
10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배우 박진주는 진지함과 코믹을 오가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말괄량이 주인공을 연기한다. 최근 뮤지컬 영화 '영웅'에서 보여줬듯 안정적인 연기와 성량으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여성의 욕망을 소설에 적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며 능청스럽게 대들다가도, 좋아하는 문학소설을 읽어 내려갈 때엔 두 눈이 반짝이는 소녀가 된다. 그가 가입한 '로렐라이 언덕' 문학회엔 사회에서 외면당한 약자들이 모여 있다. '솔직해지면 솔직해질수록 사람들은 어째서 나를 싫어하느냐'며 절망하던 안나는 이들을 만나 서로를 보듬으며 진정한 나 자신이 누군지 알아간다. 재미를 위해 영국 신사와 일반 시민의 모습을 단순하고 코믹하게 그려낸 점은 아쉽다.
이번 시즌 안나 역은 배우 박진주를 비롯한 옥주현·민경아가 맡고 있다. 5월 28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고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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