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믿고 샀는데 주가 왜 이래?”...주총서 작심 발언한 40대 주주
“주주는 거수기가 아냐” 발언 나와
주당 400원 배당금 의결, 지성길 박동진 교수 사외이사 재선임 안건 통과
“삼성전자처럼 잘 나가는 회사들도, 주주환원 차원에서라도 매년 자사주를 소각하는데, 유한양행은 계획이 없습니까.”
23일 오전 서울 노량진 유한양행 본사에서 열린 유행 정기주주총회에서 쏟아진 주주들의 지적이다. 전통 제약사인 유한양행은 오랜 주주들이 많아서, 정기 주총 자리에서 주주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불만을 쏟아내는 일은 보기 드물었다. 그런데 이날 주총장 분위기는 과거와는 사뭇 달랐다.
평일 오전인데도, 주총장을 찾은 주주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개회 시간이 임박한 오전 9시 50분쯤부터 참석자들이 몰리더니 4층에 마련된 주총장 좌석이 부족해, 회의실 뒤편에 너댓명의 주주들이 걸터앉았다. 안내 직원들은 장내 혼잡을 피하기 위해 늦게 도착한 일부 주주들은 지하 2층 회의실로 안내했다.
유한양행은 올해 제100기 주주총회를 맞이했다. 참석자들은 백발의 어르신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평상복에 야구 모자를 쓴 40대 남성, 후드티를 입은 30대 남성, 핸드백을 든 50대 여성도 여럿 눈에 띄었다.
주총 의장으로 연단에 선 조욱제 대표는 이날 회사 영업 현황을 설명한 후 “지난해 주요 경영실적을 살펴보면, 매출액은 라이선스 수익이 전년 대비 400억원 이상 감소했는데도, 전략적 신제품 출시와 렉라자 등 기존품목의 고른 성장에 힘입어 전년 대비 6.3%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조 대표는 다만 “올해 경영환경은 경기 침체와 대내외 경제 여건 불확실성으로 그 어느때보다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라고 예상했다. 이후 1주당 400원의 배당금을 지급하는 1호 안건 보고까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런데 배당금 의결에 앞서 40대 한 주주가 손을 들었다.
이 주주는 “회사를 믿고 적지 않은 돈을 투자했는데, 주주 총회를 와 보니 제 투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시대가 바뀌었는데, 옛날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형식적인 회의 진행에 실망했다”라고 말했고, ‘주주의 말에 경청해 달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조 대표가 ‘의사진행’을 위해 양해를 구하면서 발언은 중단됐지만, “지지부진한 주가에 답답하다”는 그의 말에 고령의 주주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쳤다. 이후 또 다른 주주의 “향후에는 총회에서 주주와 경영진이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도 이어졌다.
폐암신약인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가 기술 이전에 성공한 지난 2021년 주당 7만1000원까지 올랐던 유한양행 주가는 이날 5만600원까지 떨어졌다. 미국발 금리인상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따른 대내외적 경기 불안, 제약 바이오에 대한 불신이 겹친 탓이다. 코로나19 특수를 타고 주가가 치솟았던 다른 제약사들과 비교하면 하락폭이 크지 않지만, 주주들의 불만은 작지 않아 보였다.
주주들의 목소리에 따라 주주총회를 마치고, IR(기업설명회) 담당 임원과 설명회 자리가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전 가족이 통틀어 3~4억원 가량의 유한양행에 투자했다는 한 주주는 “우리 가족은 유한양행 주주이기 때문에, 마트를 가도 유한이라고 적힌 제품을 먼저 고른다”라며 “주주들을 월급 주지 않는 영업사원이라고 생각하면서 살피고, 또 이야기를 들어달라”라고 당부했다.
한 주주는 “자사주를 매입하고, 무상증자를 할 것이 아니라 그 만큼 자사주를 소각할 생각은 없냐”고 재차 물었고, 주주들과 회사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것을 요구했다. IR담당자는 “내부 검토를 통해 주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라고 답했다. 조 대표도 엘레베이터 앞에서 주주에게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 달라”고 말했다.
이날 주주총회에서는 1주당 400원의 배당금 지급과 함께 지성길 고려대 생명과학과 교수와 박동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을 사외이사로 재선임하는 내용의 안건 등이 모두 통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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