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 버린 '운'을 줍는 거죠"… 쓰레기 줍기로 행운까지 관리한 오타니
선행하다 보면 '운(運)' 따른다고 믿어
만다라트 표 만들고 실행하는 노력파
"첫째 딸 출산은 31세, 40세에 은퇴"
지난 22일(한국시간),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이 열린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스타디움. 일본이 야구 종주국인 미국에 3대 2로 앞선 9회초,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 연출에 관중들의 시선은 일제히 마운드로 향했다. 이날 타자로 활약했던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29)가 흙 묻은 유니폼을 입고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면서다. 결승전에서 3번 지명타자로 나왔던 오타니가 4타석 3타수 1안타 1볼넷으로 2차례 출루한 이후, 슬라이딩까지 한 탓에 그의 유니폼은 얼룩진 상태였다. 오타니의 손에서 시작된 마지막 이닝 초반은 불안했다. 첫 타자로 나온 제프 맥닐(뉴욕메츠)에게 볼넷을 내주면서다. 이어 등장한 무키 베츠(LA 다저스)를 병살타로 잡으며 한숨 돌린 오타니는 팀의 동료이자, 미국 메이저리그 최고 타자인 마이크 트라웃을 삼진으로 잡고 우승컵과 더불어 이번 대회 MVP까지 거머쥐었다.
올해 WBC 최고 히트상품으로 떠오른 오타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는 193㎝ 장신에, 순정만화 주인공을 연상케 한 외모부터 눈에 띈다. 무엇보다 투수와 타자를 동시에 겸업하면서도 가져온 성적이 초특급이다. 일본에 ‘2023 WBC’ 7전 전승 우승을 견인한 그는 이 대회에서 타자 부문에선 타율 0.435(23타수 10안타), 1홈런, 8타점, 9득점, 10볼넷을, 투수 부문에선 3경기 2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1.86 등을 각각 기록하면서 '오타니 신드롬'까지 불러왔다. 그가 스스로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으로 불리는 이유를 입증한 셈이다. 덕분에 평소 보여준 그의 남다른 생활 태도와 가치관도 다시 한번 재조명되고 있다.
"쓰레기 아니다. 다른 사람이 버린 운을 줍는 것"
1994년 출생인 그의 가족은 모두 스포츠인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아버지와 형은 사회인 야구에서, 어머니는 배드민턴에서, 누나는 배구에서 각각 선수로 활동했다. 이 가운데 오타니는 고교 시절, 전 과목 평균이 85점대에 달할 만큼 학업 성적도 뛰어났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타니는 특히 성실한 생활 태도 또한 유명했다. 야구팬들 사이에서조차 그는 '그라운드에서 쓰레기를 줍는 야구선수'로 알려졌을 정도다. 훈련 도중이라도 그라운드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보면 줍는 모습이 수차례 포착되면서다. 이에 대해 오타니는 2017년 자신이 낸 책에서 "다른 사람이 무심코 버린 '운(運)'을 줍는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오타니의 운에 대한 언급은 화제가 됐다. 특히 고교 진학 직후 설계한 것으로 전해진 만다라트(목적 달성의 틀) 계획표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 표에는 '8구단 드래프트 1순위'를 최종 목표로 실행해야 할 9가지 세부 목표, 이를 위해 실천해야 할 것들이 적혀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건 운에 대한 항목이었다. 오타니는 운을 위해 인사하기, 쓰레기 줍기, 청소, 심판을 대하는 태도, 책 읽기 등 목표를 적어 놨다. 성공엔 실력뿐 아니라 운이 더해져야 하고, 운은 그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라 생각하기 마련이건만 운을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남다른 사고다.
이런 면면은 이번 WBC 대회에서도 엿보였다. 오타니는 2루에 진출한 상황에서도 상대국 선수와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거나, 자신을 삼진 잡은 투수에게도 사인을 해주는가 하면 아마추어들로 구성된 체코 팀의 모자를 쓰고 다니며 경의를 보냈다. 우승 후 인터뷰에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일본뿐 아니라 한국, 대만, 중국 등 아시아, 전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야구가 더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동력이 돼 우리가 우승할 수 있었다"고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박찬호 KBS 해설위원은 "오타니 선수는 어렸을 적부터 자신이 휴지도 줍고 담배꽁초도 줍고 모자 벗고 운동장에서 인사도 하고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려고 노력하다 보면 조금 더 행운이 많이 따르지 않겠냐고 생각했다고 한다. 모두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베이브 루스와 다른 면은…"나는 슬램덩크의 신준섭"
절제된 생활 태도 역시 유명하다. 술은 맥주 한 잔이 최대, 평상시 취침시간은 9시다. 이미 최정상급 야구 선수이지만, 여전히 자신에겐 철저하다. 오타니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읽었다는 만화로 슬램덩크를 꼽았다고 한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천재형인 윤대협이 가장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지만, 나와 가장 닮은 캐릭터는 연습벌레인 신준섭"이라고 언급했다. 슬램덩크에선 신준섭에 대해 "하루 500개의 슈팅 연습을 거른 적이 없다"고 하는 대사가 나온다.
오타니는 미국에선 '베이브 루스'로 불린다. '투타 겸업'과 기량 면에서 전성기 베이브 루스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멘털' 면에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베이브 루스는 재능을 믿고, 과도한 음주 등 자기관리를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석연치 않은 판정을 한 심판을 때려눕혀 퇴장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타니는 다르다. 아직까진 구설수 자체가 전혀 없다. 오히려 오타니는 억울한 판정이 나왔을 때조차, 심판에게 항의하기보다는 차라리 허탈하게 웃어버리는 편이다. 오타니는 심판 판정이 석연치 않았던 한 경기 후 언론 인터뷰에서 판정 심판을 비난하기보다,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얼마나 빨리 잊어버릴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고 답하기도 했다.
팬들은 오타니가 심리적 압박이 큰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강속구를 던지는 모습에 열광한다. 그는 이번 WBC에서 무려 191km의 타구 속도와 시속 164km의 구속을 기록했다. 그가 만다라트 멘털 항목에 적은 △일희일비하지 않기 △마음의 파도를 만들지 않기 △핀치에 강하게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기 등이 이 같은 기록을 연상시키는 답변이다. 만다라트에는 △슬라이더 구위 △늦게 낙차가 있는 커브 등 현재 오타니의 '대표 구종'이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도 있다.
오타니 "서른한 살에 첫째 딸 낳고 은퇴 경기는 마흔 살에"
그가 세웠던 '연령별 인생 목표'에 따르면 오타니는 서른한 살에 첫째 딸을 낳고, 서른여섯 살에는 탈삼진 신기록까지 작성한다. 서른일곱 살에는 아들이 야구를 시작하고, 마흔 살에 은퇴한다. 마지막 경기는 '노히트 노런'이다. 마흔둘부터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시스템을 일본에 접목하면서 본격적인 후배 양성에 돌입한다.
야구선수로서의 향후 행보와 더불어 미래의 아들과 딸 출산 시기를 포함한 가족계획까지 꼼꼼히 담겨 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구단 입단(18세) △메이저리그 승격 연봉 1,300만 달러(22세) △월드시리즈 우승과 함께 결혼(25세) △WBC 일본 대표, 리그 최우수 선수(MVP)(27세) △첫 아들 태어남(28세) △첫 딸 태어남(31세) △장남 야구 시작(37세) △성적 하락, 은퇴 고려 시작(39세) △마지막 경기에서 노히트 노런 달성(40세) 등으로 시기도 구체적이다. 메이저리그 진출은 4년 늦은 24세 달성하는 등 일부 시기가 달라지긴 했지만, 자신이 정한 목표에 차곡차곡 다가가는 모습이다.
녹색 그라운드 인생에서 반환점을 돌아간 그는 야구에 대한 진심 어린 마음도 내비쳤다. 그는 '2023 WBC' MVP에 선정된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나는 세계 최고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에 (우승이) 정말 행복하다"면서 "일본뿐 아니라 한국, 대만,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이 야구를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우승이 되기를 바란다"며 세계적인 야구 붐 조성에 대한 속내도 전했다.
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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