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인구구조 변화’ 대응에도 실패했다

2023. 3. 2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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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前 통계청장
출산율 높이기 참담하게 실패
이미 줄어든 출산 대책도 중요
신입생 숫자는 오래전에 결정
교육과 부양 문제 예고됐지만
노인 연금 포괄 통계조차 없어
통계처 격상 땐 의미 있는 기여

반세기 전, 필자는 1학년 15반 ‘74번’으로 서울의 중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는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산아제한 정책이 시행되던 시대였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숫자인 합계출산율은 1970년엔 4.53이었고 지난해엔 0.78이었다. 1970년엔 100만 명 넘는 아이가 태어났고, 지난해엔 25만 명도 안 되는 아이가 태어났다. 출산율 추이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잘못 예측하더라도 초등학교 입학생 수는 6년간, 중학교 입학생 수는 12년간, 그리고 고등학교 입학생 수는 15년간 예측이 잘못될 리 없다. 그 반면 출산율은 당장 높이더라도, 소멸되는 대학을 살려내는 데는 18년간, 그리고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대졸자 수급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22년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구수가 줄어들면 초중등 교육에 대한 수요가 줄고, 이어서 대학 교육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다. 그동안 정부의 교육예산 공급을 보면 초중등 예산은 빠르게 늘었고, 대학 예산은 초중등 예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었다. 교육예산 배정에 있어 수급 간 미스매치가 발생한 것이다. 출생아 수 감소와 고령화의 진척은 각각이 심각한 인구문제다. 하지만 부양비라는 관점에서 보면, 늘어나는 노년부양비를 줄어드는 소년부양비가 상쇄시켜 왔다. 이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소년부양비를 낮추던 저출산은 시간이 흐른 지금 생산연령인구를 줄이기 시작했다. 고령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이제부터 부양비는 이중고(二重苦)에 시달려 급증하는 추세에 직면하게 됐다.

사람이 태어나면 ‘청소년기-장년기-노년기’를 차례로 산다. 청소년기엔 부모 도움으로 자라고, 장년기엔 어린 자녀와 노부모를 부양하고, 노년기엔 장년 자녀의 도움을 받아 살아간다고 하자. 나아가 통상적 출생 집단 대비 베이비부머는 규모가 두 배, 저출산 세대는 절반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세대별 인구비는 베이비부머가 청소년기 때는 △2, 1, 1이고, 이후 △1, 2, 1과 △1/2, 1, 2를 거쳐 △1, 1/2, 1로 변한다. 이에 따라 부양비는 3에서 1로 낮아졌다가 2.5를 거쳐 4로 급증한다.

외아들과 외동딸인 두 젊은 남녀가 결혼 생활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양가 부모 수 4를 자녀 수 2로 나누면 2가 된다. 절댓값 2 앞에 붙을 플러스 또는 마이너스 부호는, 어느 계층의 남녀가 결혼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부잣집 외아들과 외동딸이 결혼하면 부호는 플러스다. 2명의 자녀가 총 4명의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반면, 가난한 집 자녀끼리 결혼하면 부호는 마이너스다. 둘이서 총 4명의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

출생아 예측과는 달리 이미 태어난 인구의 연령 구조 변화는 예측하기 쉽다. 한 살은 10년 뒤 열한 살, 20년 뒤 스물한 살이 되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려고 다양한 정책을 폈으나 참담하게 실패했다. 인구문제의 출발선은 출산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예컨대, 현재 직면하고 있는 각급 학교 위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감소한 출생아 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겪는 문제다. 예견된 인구구조 변화에도 대비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간 우리 사회는 눈에 보이는 쉬운 문제도 못 풀면서 보이지도 않는 어려운 문제에 집착했다.

긴 안목에서 인구문제를 풀려면 정권에 관계없이 주요 정책은 연속성부터 지켜야 한다. 정책이 당파적으로 채택되거나 폐지될 경우 장기적인 관점 및 정책의 일관성은 훼손된다. 속성이 장기적인 인구문제는 단기적 안목으로 풀 수 없다. 입체적 관점에서 인구문제를 풀려면 부처 간 협력이 필수적이다. 빠른 고령화, 심각한 노인 빈곤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는데도 그동안 우리 정부엔 노인가구의 연금 실태에 관한 포괄적 통계조차도 없었다.

정부 부처 간 협력은 통계 데이터의 공유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부처 이기주의는 이를 가로막는다. 기획재정부 외청인 ‘통계청’이 총리실 산하 ‘통계처’가 돼야 하는 이유다. 여러 부처에 걸친 통계 데이터 업무는 통계처를 통해 조율될 필요가 있다. 부처 간 자료 연계와 공유가 활성화하면 정부의 증거 기반 정책이 더욱더 실질화한다. 통계청의 통계처 전환은 인구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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