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영토 넓히라는데… 신한·우리 ‘모범생’, KB국민 ‘미흡’
우리는 인도네시아서 선전
KB, 인도네시아서 손실…하나는 中 부진
금융 당국 “은행들, 돈 해외서 벌라” 압박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이 해외에서 눈에 띄는 호실적을 거둔 반면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금융 당국은 은행의 글로벌 시장 진출 강화를 중점 과제로 제시했다.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 등을 통해 국내에서 편하게 돈을 버는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지 말고, 해외에서 글로벌 금융사들과 경쟁해 수익을 얻으라는 것이다.
2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신한·KB국민·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이 지난해 해외법인에서 거둔 전체 순이익은 1645억원으로 전년 순익 317억원과 비교해 5배 넘게 급증했다. 그러나 은행별 실적을 보면 희비가 엇갈렸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금융 당국의 기조대로 동남아시아와 중국 등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실적이 개선된 반면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순익이 크게 줄거나 손실이 확대됐다.
◇ 신한, 베트남·日·中 순익 증가…우리, 인니·캄보디아서 선전
신한은행은 지난해 10곳의 전체 해외법인에서 전년 대비 66.2% 급증한 4269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특히 베트남과 일본, 중국 등 3개국에서만 3500억원의 이익을 냈다.
신한이 해외 시장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지역은 베트남이었다. 신한베트남은행은 지난해 전년보다 53.1% 증가한 1978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지난 2009년 현지 지점을 법인으로 전환해 출범한 신한베트남은행은 2011년 신한비나은행, 2017년 호주계 ANZ은행 소매영업 부문을 각각 인수해 규모를 키웠다. 최근 몇 년간 투자를 확대해 온 디지털뱅킹 사업이 효과를 거두면서 이익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신한은 이 밖에 일본 법인 SBJ은행에서 1167억원, 중국 법인에서 457억원을 각각 벌었다. 특히 중국 시장의 경우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봉쇄로 다른 은행들은 고전했지만, 신한은 부실여신 회수 등을 통해 대손 비용을 줄이면서 순이익을 늘린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은행도 해외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2021년 전체 해외법인에서 1746억원을 벌었던 우리은행은 지난해 2883억원의 순이익을 기록, 전년 대비 65.1%의 성장률을 보였다.
우리은행의 실적 개선에 효자 노릇을 한 지역은 인도네시아로 전년 대비 44.6% 증가한 684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도 각각 632억원, 598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특히 우리은행은 신한은행과 달리 미국에서 362억원의 이익을 내는 등 선진국 시장 공략에도 성과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 KB, 인니서 8000억원 손실…하나, 中 수렁에 해외법인 순익 93% 증발
KB국민은행은 지난해 해외법인에서도 총 5580억원에 이르는 손실을 기록했다. 두 곳의 법인을 운영하는 캄보디아 시장에서는 2500억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성과를 냈지만,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 적자 규모가 크게 늘었다.
KB국민은행의 실적이 악화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업장은 인도네시아 법인인 KB부코핀은행이었다. 지난 2021년 KB부코핀은행의 손실 규모는 2725억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8021억원으로 급증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2018년부터 두 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부코핀은행의 최대주주가 됐지만, 인수 후 오히려 실적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선제적으로 부코핀은행의 전체 부실채권(NPL) 규모를 웃도는 수준의 충당금을 쌓으면서 손실이 증가한 것”이라며 “오는 2025년부터 흑자 전환을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해외법인 전체 순이익이 73억원에 그쳤다. 2021년 순이익(1071억원) 대비 93.2% 급감한 수치다. 하나은행의 순이익이 증발하다시피 줄어든 것은 중국 법인의 실적 부진 때문이었다. 하나은행은 지난 2021년 중국에서 571억원을 벌었지만, 지난해에는 971억원에 이르는 손실을 냈다.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와 러시아, 캐나다 등에서 이익이 늘었음에도 전체 순이익이 급감한 것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이뤄지지 못했고, 일부 지점의 운영이 중단되는 등 영업을 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며 “중국 경기 둔화로 일부 대출자산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위해 충당금 적립 규모가 늘면서 순이익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법인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해외지점과 글로벌 투자이익 등을 포함한 해외에서의 전체 이익은 전년 대비 3.7% 증가한 7127억원을 기록했다”고 덧붙였다.
◇ 금융 당국 “은행들, 이제 돈은 해외서”
금융 시장에서는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 등이 그룹 차원에서 해외법인의 실적 개선을 위해 투자와 인력을 크게 확대해야 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최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잇따라 은행에 해외에서 실적을 내는데 집중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 13일 제1차 금융산업 글로벌화 태스크포스(TF) 회의를 갖고 “국내 시장의 포화 상태를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은행의 글로벌화가 필수적이다”라고 강조했다. 금융위는 금융지주별 글로벌화 추진 세미나도 오는 5월 개최하기로 했다.
금감원도 올해 주요 중점 업무과제로 금융회사별 해외 진출 지원을 꼽았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또 5월 싱가포르에서 각국 금융 당국과 대형 기관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투자설명회(IR)를 가질 예정이다. 그는 한국 금융 시장의 규제와 제도 설명과 함께 해외에 진출한 국내 금융사들의 자금 조달 개선 등에 대한 요청 등도 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한과 우리의 경우 미국, 유럽 등 선진 시장으로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긴 하지만, 해외 실적이 양호해 금융 당국의 글로벌화 요구에 대응하는데 여유가 있는 편이다”라며 “KB와 하나는 각각 인도네시아, 중국 등에서 단기간에 실적을 개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고민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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