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 짚고 시장 걷다가 트럭 오면 '아찔'…고령친화상점 왜 안됐나

이현주 2023. 3. 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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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소비생활 보고서:③-3]
서울시의 '고령친화상점'은 왜 흐지부지됐나
편집자주
2년 후 한국은 고령화 과정의 최종단계인 초고령사회(65세 이상 비율이 20% 이상)에 진입합니다. 고령자도 경제활동의 중요 주체가 돼야 하는 인구구조죠. 하지만 외국어가 난무하고 무인 키오스크가 지배하는 국내 서비스 업장은 어르신에게 너무 불친절한 곳입니다. 소비활동의 주축이 될 고령자들이 좀 더 편리하게 이용할 환경을 만들 순 없을까요? 한국일보가 어르신의 고충을 직접 듣고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어르신 친화 서비스’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봤습니다.
서울 동작구 성대전통시장 동편 입구(위 사진). 마을버스와 차량이 양방향으로 오가고 있어 보행자 통행이 쉽지 않은 모습이다. 반면 도쿄 스가모 거리(아래 사진)는 차가 다니지 않아 보행자들이 자유롭게 거리를 걷고 있다. 이현주 기자

※ [1000만 고령고객, 매뉴얼이 없다 ③-2]

"노인 고객 홀대하진 않았나요?" 암행어사까지 보내는 미국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성대전통시장. 7호선 신대방삼거리역과 인접한 이곳은 동작노인종합복지관과 멀지 않아 고령자 손님이 많다. 지난달 23일 오전 찾은 성대시장은 떡집, 생선가게, 과일가게 등을 중심으로 밀려들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곳엔 약 400m 길이의 이면도로 양쪽으로 80여 개의 점포가 밀집해 있다. 지하철역과의 인접성이나 시장의 구조 등을 감안하면, 한국일보가 지난달 찾았던 일본 도쿄의 고령자 쇼핑 천국 스가모 지조도리(巣鴨地蔵通) 상점가와 유사하다.


버스·트럭·사람이 뒤섞인 전통시장 거리

그러나 성대시장과 스가모 거리의 결정적 차이점이 있으니, 그건 바로 '거리를 보행자가 전용으로 사용하는가'의 여부였다. 스가모 거리엔 차가 다니지 않는 반면, 성대시장에는 마을버스, 트럭, 승용차, 오토바이 등이 위태롭게 좁은 길을 오가고 있다. 보도와 차도 구분이 없는 거리에서 지팡이를 짚거나 보행기를 끄는 고령자가 위험하게 걷는 모습도 쉽게 눈에 띈다.

실제 본보가 만나본 성대시장의 상인들은 이런 환경을 우려하고 있었다. 고깃집을 운영하는 박선옥(66·가명)씨는 "일정 시간이라도 차량 통제가 필요할 것 같다"면서 "시장이 위험하면 결국 어르신들이 밖에 나오시기보단 자녀들에게 대신 사달라고 하는 등 남에게 의존하게 된다"고 걱정했다.

성대전통시장의 한 점포에 설치돼 있는 '오래오래 상점' 현판 모습. 이현주 기자

차와 사람이 한데 뒤섞여 언뜻 봐도 위험해 보이는 성대시장은, 사실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한 '고령친화상점' 정책의 시범구역이다. 서울시는 2017년 3월 성대시장, 은평구 신응암시장, 종로구 락희거리 및 송해길 등 총 3곳에서 고령친화상점 컨설팅 제공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고령자가 많이 찾는 시장·상점의 환경을 고령자 친화적으로 바꾸고, 상인들에게 고령 손님을 제대로 응대하는 법을 알리자는 취지였다. 이 사업에 따라 성대시장 16개 상점을 비롯해 총 38개 상점 주인들이 사업에 참여해 고령 손님 응대법을 배웠다. 상점에는 돋보기, 지팡이걸이, 미끄럼방지매트, 의자 등 고령친화물품 등을 비치하고, 일부 상점은 여유 공간을 활용해 어르신 쉼터를 만드는 등 환경 개선 작업도 진행했다. 사업에 참여한 상점들에게는 '고령친화상점 오래오래'(오래오래 상점)라는 이름도 부여됐다.

서울시가 야심 차게 추진했던 고령친화상점의 현재 모습은 어떨까? 한국일보가 오래오래 상점 38곳을 추적했더니 현재까지 영업 중인 점포는 25개였다. 이 중 당시 서울시가 제공했던 '고령친화물품'을 아직 쓰는 가게는 13곳에 불과했다.

성대전통시장에 위치한 내과 입구에 미끄럼방지를 위한 바닥매트가 깔려 있다. 이현주 기자

"의자 하나 놓는다고 손님 더 안 와"

"오래오래 상점 사업이 영업에 도움이 됐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한 점포는 3분의 1인 8개뿐이었다. 상인들은 대부분 "사업 취지는 좋았으나, 영업에 큰 도움은 받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응암동 신응암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김지선(61·가명)씨는 "가게 안에 의자 하나 더 놓는다고 매출이 늘거나 하진 않더라"면서 "가끔 앉아 있다 가는 게 미안해서 뭐 하나라도 팔아주는 손님도 있지만, 시장 전체가 워낙 침체돼 장사가 잘 안 되는 게 더 문제"라고 말했다. 이발소 주인 강남현(77·가명)씨도 "사업이 1회성으로 끝나다 보니 변화를 체감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신응암시장은 2020년쯤부터 시장 인근에 대단지 신축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오래된 단골손님들이 많이 떠났다고 한다. 삼겹살집을 접고 떡집을 운영 중인 최신욱(55·가명)씨는 "가게가 마을버스 정류장 앞이라 가게 외부에 휴식 공간도 마련하고 화장실도 개방해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었다"며 "그러나 코로나 직전 가게 운영이 어려워져 식당 문을 닫았다"고 설명했다.

시장 주변으로 신축 아파트들이 들어선 신응암시장 입구 모습. 이현주 기자

상인들은 점포 안 물건 몇 개로 고령 손님을 끌 게 아니라, 시장 환경을 전반적으로 개선해 고령자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방문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혁 성대시장 상인회장은 "어르신들이 마음 놓고 장을 볼 수 있도록 특정 시간대만이라도 차 없는 거리를 만들어 보자"며 "고령친화시장으로 특화해 어르신에게 저렴하게 파는 경로우대제도를 시행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상인 박선옥씨도 "가게 시설을 바꾸는 것보다도 시장 전체 차원에서 어르신에게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를 제공해 자주 시장을 방문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3회> 어르신 고객, 이렇게 맞이합시다

▶고령 손님 '할머니, 할아버지'보단 '이름+님'으로 불러주세요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31720480002707

▶"노인 고객 홀대하진 않았나요?" 암행어사까지 보내는 미국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32116170005553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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