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은행 시스템 건전”…‘금융 불안’ 대응보다 ‘물가 안정’ 선택
[헤럴드경제=김우영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인한 금융 경색 우려에도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서며 ‘인플레이션 잡기’라는 목표를 고수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두고 연준이 ‘금융 시스템 안정’이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이번 달에는 기준금리를 동결할 수 있다는 전망이 확산했지만, 연준이 선택한 것은 9차례 연속 금리 인상이었다.
연준은 22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이로써 미 금리는 4.75~5.00%로 오르며,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이 됐다.
이날 파월 의장은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인 2%를 훌쩍 뛰어넘는다고 강조하면서 금리 동결은 적절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물가 안정 없이는 경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관심은 인플레이션보다 금융 경색과 그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를 연준이 어떻게 보고 어떤 대응을 할지에 쏠렸다.
이번에 발표된 성명에 연준은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언급은 삭제하고 신용 위기 우려를 언급하며 비중있게 다뤘다. 연준은 “(최근 사태는) 가계와 기업에 더 엄격한 신용 환경을 초래하고 경제활동, 고용, 인플레이션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연준은 미국 은행 시스템이 건전하고 회복력이 강하다고 강조하면서 이 문제가 연준의 결정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파월 의장 역시 기자회견에서 “현재 은행들의 상황이 경제 둔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판단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강조했다. 특히 “은행들의 유동성 흐름이 안정됐다”며 시장을 안심시키려 했다.
이 같은 발언은 금융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물가 안정이란 본래의 목표에서 벗어나 통화정책을 사용하진 않을 것이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유동성을 강조함으로써 금융 불안엔 한시적 유동성 공급이란 연준의 효과적인 대응 수단이 있음을 강조했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영국 중앙은행(BOE)이 취한 조치와 같은 선택으로, 당시 영국 채권시장 위기로 촉발된 금융시장 불안에 BOE는 무제한 양적 완화를 한시적으로 실시했지만 이후 11월 금리 인상폭은 오히려 확대했다. 연준 역시 SVB파산 이후 재할인 창구로 대규모 자금을 공여해오고, 새 유동성 지원 기구(BTFP)를 설립해 사태를 수습해왔다.
또 SVB파산 과정을 들여다보겠다며 은행 감독과 규정 강화 필요성을 언급한 것도 연준이 해야할 다른 일들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인플레이션을 대하는 태도만 놓고 보면 연준은 금리를 더 올릴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하며 단시일 내 정책 전환 가능성을 일축했다. 지난 FOMC에 등장했던 인플레이션 완화 표현은 사라지고 ‘상승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명시했다.
이번 성명에 금리의 ‘지속적 인상’ 표현 대신 ‘일부 추가적인 정책 확인이 적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문구가 삽입된 것에 대해 파월 의장은 “올해 금리 인하를 예상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정책 효과를 주시하고 유연하게 대응하겠지만 현 시점에서 변화를 예단하진 말라는 의미다.
다만 경기 침체 우려가 확대되고 물가 지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시장 분위기도 꺾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향후 연준 내 매파와 비둘기파 간 공방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향후 1년 기대인플레이션이 4.1%에서 3.8%로 하락해 물가 안정 기대가 커졌다.
이날 공개된 FOMC위원들의 점도표에 따르면 올해 금리 전망치 중간값이 5.1%로 한 차례 추가 인상 가능성을 남겨뒀다. 이는 지난해 12월과 같지만 당초 시장 예상보다는 낮은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FOMC를 앞두고 ‘블랙아웃’ 기간 동안 외부 발언을 금지당했던 연준 인사들이 앞으로 어떤 의견과 전망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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