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주 출처 밝혀" 法제정 제동걸렸지만…보톡스업계 '시한폭탄' 여전

이창섭 기자 2023. 3. 2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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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툴리눔 톡신 균주 공개 강제하는 '감염병예방법 개정안'
국회 '계속 심사' 결정… 다음 달 임시회에서 지속 논의
"영업기밀 침해" vs "적법하다면 반대 이유 없어"… 대립 팽팽

보툴리눔 톡신 병원체(균주)를 규제기관에 제출하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잠시 제동에 걸렸다. 이번 법안은 질병관리청장이 불법적으로 균주를 획득했음이 밝혀진 업체에 허가 취소를 내린다는 내용을 담아 큰 파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됐지만 업계는 잠시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국회에서 추후 심사를 계속한다고 예고한 만큼 보툴리눔 톡신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에는 여전히 큰 부담으로 남았다. 법안을 두고 균주 공개가 기업의 영업비밀을 침해한다는 부정적인 의견과 이번에 균주 도입 출처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하면서 업계 갈등도 깊어질 전망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전날 제2 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를 열고 최종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감염병예방법 개정안)을 심의했다. 심의 결과 '계속 심사'를 진행하기로 해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 상정은 잠시 지연됐다.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들은 병원체 국가 관리를 강화하면 기업과 연구 활동에 과도한 규제로 작용할 여지가 없는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질병관리청은 균주 공개가 영업기밀 침해나 기업활동 저해와는 무관하다며 법안 개정에 찬성했다. 법안은 다음 달 열리는 국회 임시회에서 다시 논의될 예정이다. 최 의원실 관계자는 "가급적 상반기 중 법안이 본회의까지 통과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법안은 생물테러 감염병을 일으킬 수 있는 병원체를 규제기관인 질병관리청이 엄격히 관리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병원체의 출처, 보유자 자격, 취급 기록 등 규정을 정비해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여기서 생물테러 감염병 병원체에는 미용 시술에 사용되는 '보톡스' 원료인 보툴리눔 톡신 균주도 포함된다.

법안에 따르면 보툴리눔 톡신 균주 보유를 허가받아 사업을 진행하는 기업은 질병관리청에 해당 균주를 제출해야 한다. 이어 질병관리청장은 제출받은 균주와 보유 허가를 내린 균주가 일치하는지 검사한다. 질병관리청장은 균주 제출을 거부하거나, 부정이나 속임수로 균주를 획득했음이 밝혀진 업체에 '보유 허가 취소'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16개 기업이 총 37개 보툴리눔 톡신 제품을 허가받아 사업을 누리고 있다. 보툴리눔 톡신은 지난해 2억3569만달러(약 3082억원) 수출을 기록하며 K-바이오 효자 노릇을 해냈다. 그러나 생물 테러에 이용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기 때문에 보툴리눔 톡신 균주의 제조는 전 세계적으로 엄격히 관리된다. 균주 도입 출처를 두고 기업 간 소송전이 발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메디톡스는 균주 도용을 문제 삼아 2016년부터 대웅제약과 소송을 벌이고 있다. 최근 민사 1심에서 재판부가 메디톡스 손을 들어줬지만, 대웅제약이 항소하면서 소송전은 더 길어질 예정이다. 메디톡스는 휴젤과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소송전을 진행 중이다.

보툴리눔 톡신 기업들은 이번 감염병예방법 개정안과 관련해 "회사 차원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법안이 통과되면 실제로 어떤 파장을 미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균주 출처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한 기업은 최악의 경우 보툴리눔 톡신 사업 자체를 접어야 할 수도 있다.

법안을 두고 업체 간 찬성과 반대 의견은 명확하게 갈렸다. 보툴리눔 톡신 사업을 영위하는 A기업 관계자는 "균주의 염기서열 공개를 요구하는 부분이 안전 관리라는 법안 취지와 맞는지 의문이 있다"며 "현행법 내에서도 충분히 안전 관리가 가능하도록 법령이 구비돼 있다. 염기서열은 영업기밀인데 이걸 외부에 공개하자는 건 기업 입장에서는 민감하고 걱정되는 부분이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B기업 관계자는 "업체 간 갈등이 완전하게 종식되지 않은 현시점에서 이번 개정안은 자칫 분쟁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개정안을 반대하는 의견이 많다"고 밝혔다.

반면 C기업 관계자는 "전 세계에서 한국에서만 20개 가까운 기업이 보툴리눔 톡신 균주를 자체적으로 발견했다면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며 "염기서열 공개가 영업기밀이라고 하지만 해외 기업은 다 공개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균주를 적법한 경로로 취득한 기업이라면 이번 법안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감염병예방법 개정안의 '계속 심사' 소식이 전해지면서 관련 업체 주가도 희비가 엇갈렸다. 메디톡스와 제테마 주가는 시간 외 거래에서 각각 6.8%, 6.1% 하락했다. 대웅제약과 휴젤, 휴온스 주가는 각각 2.3%, 2.1%, 0.8% 상승했다.

이동건 SK증권 연구원은 "이번 감염병예방법 개정안 '계속 심사' 결정에 따라 (입법이) 지연됐다는 점은 분명하나, 보툴리눔 톡신 균주 기원이 불명확했던 기업들에는 추가적인 시간이 주어졌을 뿐 기원이 명확한 기업에는 부정적 이슈로 작용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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