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는 강해지고 약자는 죽어간 '이케아 9년'의 역설
이케아 한국 시장 진출 9년
대형 가구업체 성장 촉매제 역할
40년 전통 가구 단지 ‘흔들’
명맥 흔들리는 중소 제조업체
국내 가구산업 양극화 부작용
이케아가 국내 시장에 진출할 때 메기효과란 말이 나돌았다. 이케아가 침체하던 가구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란 전망이었다. 실제로 이케아는 한샘, 현대리바트 등 대형 가구업체가 성장하는 데 촉매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선 중소 가구업체가 벼랑에 몰리고 있었다. 냉정한 시장에서 메기효과는 과연 존재하는 이론일까.
2014년 12월 국내 가구업계가 들썩였다. 글로벌 가구공룡 '이케아(이케아코리아)'가 경기도 광명에 1호점을 열었기 때문이다. 워낙 큰 이슈였기 때문에 "이케아의 등장에 국내 가구업계가 어려움에 처할 것"이란 우려와 "이케아 메기효과로 국내 가구산업이 성장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충돌했다.
둘 중 '이케아가 메기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란 주장에 힘이 실렸고, 이케아는 각종 규제(출점제한·의무휴업 영업시간 제한)에서 빠져나가면서 빠르게 자리를 잡아갔다. 그럼 이케아가 한국에 둥지를 튼 지 9년이 흐른 지금 국내 가구시장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흥미롭게도 이 질문의 답 역시 '두개'로 갈라진다. 대기업 가구업체들은 "이케아 메기효과가 있었다"고 입을 모으는 반면 중소 가구 제조업체나 판매업체들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반론을 편다. 이유가 뭘까.
■ 자본 갖춘 대기업의 대응 = 한샘·현대리바트 등 대기업 가구업체들은 이케아의 공세에 맞서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를 확대하고 온라인몰을 강화했다. 높은 브랜드 인지도를 앞세워 시장을 공략했던 거다. 일례로 업계 1위인 한샘은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인 '디자인파크'를 2014년 6곳에서 21곳(2022년 3분기 기준)으로 늘렸다.
현대리바트의 경우 그룹 차원에서 가구 사업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5월 현대백화점그룹이 8947억원을 투자해 글로벌 매트리스 전문 기업 '지누스'를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현대리바트 등과의 시너지 효과를 노린 전략이었다.
이같은 대기업 가구업체들의 공격적 전략은 실적으로 이어졌다. 이케아 진출 전인 2013년 1조69억원이던 한샘의 매출액은 2021년 2조2312억원으로 121.5% 늘었다. 현대리바트 역시 2013년 5545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액이 1조4066억원(2021년)으로 153.6%나 껑충 뛰었다. 이케아의 매출액이 수년째 6000억원대에 정체 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기업의 국내 가구시장 장악력이 더 커진 셈이다.
■ 자본 없는 중소업체의 현실 = 중소 가구업체들의 사정은 다르다. 대기업 가구업체들의 눈부신 성장은 중소 가구업체들에 부메랑을 날렸다. 이는 2017년 10월 문을 연 이케아 고양점 인근 가구단지의 현실을 봐도 알 수 있다. 고양시에 위치한 고양·일산가구단지는 40여년 역사의 '가구 메카'란 별칭이 무색해졌다. 한때 입점업체만 200여곳에 달했지만 그중 30%가량이 폐업했다.
고양시일산가구협동조합 관계자는 "이케아 진출 이후 대형 가구업체들이 소가구·생활용품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가구단지 매장을 찾는 소비자가 점차 줄었다"면서 "온라인 등으로 판로를 찾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고 말했다.
중소 가구 판매점뿐만 아니라 가구 제조업체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가구단지 등 유통망이 활력을 잃으면서 판로 개척에 어려움이 커졌기 때문이다. 최근 가구 제조업체들이 관공서 등 조달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건 이런 어려움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서울경인가구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중소 가구 제조업체들로선 매출을 낼 수 있는 채널을 찾기가 쉽지 않다"면서 "한정적인 예산으로 돌아가는 조달시장에 뛰어드는 가구 제조업체가 많다는 건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 소비자에게 좋은가 = 이 지점에서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자본을 갖춘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는 게 뭐가 나쁜가" "대기업이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면 소비자에게도 좋은 것 아닌가." 몇몇 대기업이 가구시장을 장악해도 소비자의 편익 면에선 나쁠 게 없다는 거다.
하지만 여기엔 맹점이 있다. 대기업 가구업체는 대부분 OEM(주문자위탁생산) 방식으로 가구를 생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기업에 가구를 납품하는 일부 중소 제조업체만 살아남고, 그 외 제조업체들은 명맥을 잇는 것조차 어려울 수밖에 없다.
30~ 40년 업력을 지닌 가구 제조업체들이 사라진다는 건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시그널이 아니다. 시장에서 크고 작은 경쟁자가 사라지면 담합 등 부조리가 발생할 여지가 커진다.
오세조 연세대(경영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가구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 가구업체도 함께 경쟁해야 한다. 일례로 특색 있는 가구 전문점이 모여 있는 거리는 지자체 차원에서도 육성할 만한 가치가 있다. 결국 자금력이나 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중소 가구업체를 위한 지원책과 보호책이 적절한 시기에 도입됐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중소 가구업체가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관련 단체부터 정부·지자체가 맞춤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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