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힌 게 아니라 장난이라고? 사소한 것 놔두면 큰 범죄 된다

조원경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 2023. 3. 23. 09: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WEEKLY BIZ] 경제학자처럼 생각하기: 학교 폭력과 범죄 경제학
학교 폭력 피해자의 복수극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학교 폭력 피해자의 복수를 담은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인기다. “왜 이렇게 늦게 와~ 보고 싶어 죽는 줄.” 학교 폭력 가해자 박연진은 마치 장난감을 갖고 놀다 망가뜨리듯 피해자 문동은을 괴롭힌다.

사람들은 왜 범죄를 저지를까. 노벨상을 탄 경제학자 게리 베커는 범죄 행위 역시 비용과 편익에 기반을 둔 경제 행위의 일종이라고 봤다. 범죄 행위를 통해 얻는 이득이 발각될 가능성과 체포 후 예상되는 형량보다 높다면 범죄를 저지른다는 얘기다. 그래서 수사력과 범죄 예방 프로그램, 처벌 제도를 강화해 적발 확률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범죄자에 대한 강한 응징은 사회를 정의롭고 협동적으로 만드는 데 유용하다. 연진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동은의 살을 고데기로 지질 수 있는 것도 결국 학교 폭력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처벌 수위가 낮기 때문이다.

반면 이스라엘 출신 미국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범죄와 편익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본다. 그가 보기에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도덕성과 더 관련 있다. 그는 학생들에게 십계명을 외우게 한 후 부정행위를 유도하는 실험을 했다. 그랬더니 십계명을 외운 학생들이 외우지 않은 학생들보다 나쁜 행동을 적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실험을 토대로 그는 주변 사람의 행동과 사회 규범이 범죄 활동을 결정하는 데 강력한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강력한 처벌로 위협하는 것보다 도덕적 각성 장치로서 사회 규범을 변화시키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학교 폭력이 개념 없는 짓이고 창피한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줘 좋은 행동을 유도하는 ‘넛지’ 전략도 이런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범죄와 학교 폭력을 저지르는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 사회에 학교 폭력이 만연한 것은 유리창이 깨져 있는 건물이 무수히 방치된 것과 흡사하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사소하게 생각했던 한 장의 깨진 유리창이 도시 전체를 무법천지로 만들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유리창이 깨져 있는 자동차나 건물을 방치하면 그 근방에 쓰레기 버리기, 낙서, 절도 같은 비행과 범죄가 증가한다.

따라서 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사소한 범죄에 대해서도 빠른 대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가 학교 폭력에 대해 ‘제로 톨러런스(무관용)’ 정책을 견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을 괴롭히는 모습을 봐도 장난이라고 넘어가거나 어른들이 수수방관하기 일쑤다. 이런 환경에선 학교 폭력 피해자가 기댈 곳이 없다.

한국교육개발원의 학교 폭력 실태 조사 분석에 따르면 학교 폭력 피해 3건 중 1건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의 잔혹성과 사회의 부조리에 대처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잘못이 없는데도 피해자가 되는 것만은 바로잡아야 한다. 가해자는 누구도 두려워 않는데 피해자만 가해자를 두려워한다면 그건 잘못된 사회이다.

WEEKLY BIZ Newsletter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