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유리의 WBC취재수첩④]믹스트존에 선 박찬호와 오타니 쇼헤이의 태도

나유리 2023. 3. 23. 09:2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타니 쇼헤이. AFP연합뉴스

[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야구 대표팀이 WBC를 앞두고 공식 평가전을 치른 일본 오사카 교세라돔. 경기가 끝난 후에는 선수들이 라커에서 버스로 이동하는 통로 사이에 믹스트존이 차려졌다.

믹스트존에는 '코리안특급' 박찬호와 '통산 최다 안타' 박용택도 함께 서있었다. 이번에는 취재를 당하는 입장이 아닌, 취재를 하는 입장이었다. 중계 방송사의 해설위원 자격인 두 사람은 믹스트존 라인 밖에 서서 선수들의 퇴장을 기다렸다가 컨디션과 몸상태를 물어보고, 짧은 인터뷰를 했다.

낯선 풍경이었다. 사실 KBO리그에서 믹스트존은 서로 익숙하지 않다. 프로야구의 현장 취재 방식상 믹스트존이 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찬호 해설위원은 "어색하다"고 하면서도 "나도 팬이 된 기분"이라며 상황을 재미있어 했다.

평가전을 마치고 대부분의 선수들은 버스로 향했다. 몇몇 주요 선수들은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본 대회를 앞두고 다들 긴장된 상태라 믹스트존 풍경은 다소 경직돼 있었다. 대표팀 후배들과 일일이 인사를 하고, "나에게는 다들 아직도 아이같다"며 얼굴 하나하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박찬호 위원은 "믹스트존은 물론이고 쏟아지는 인터뷰와 언론의 관심을 즐길 수 있을 때, 그때 대선수가 된다"고 이야기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WBC 도쿄라운드가 진행되는 내내 지켜본 오타니 쇼헤이의 태도는 더 인상적이었다. 이번 WBC는 오타니로 시작해서 오타니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독무대였다.

당연히 전세계 언론의 관심이 엄청났다. 특히 자국 일본 언론은 오타니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세하게 쫓았다. 그가 전세기를 타고 일본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오타니가 누구와 어떤 대화를 했고,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는지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파악이 될 정도였다. 오타니는 일본 내에서 진행된 온갖 인기 설문에서 1위를 차지하는 국민적 스타다.

USA투데이연합뉴스

하지만 오타니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는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정도였다. 오타니가 훈련을 할 때는 100명이 넘는 취재진의 눈이 그를 쫓고 있다. 라커룸과 벤치, 그라운드와 불펜을 오가는 개인 훈련조차 편히 할 수 없다.

TV로 생중계 되는 경기는 오타니 혼자만의 팀이 아닌데도, 거의 오타니의 모습만 내내 비춘다. 오타니가 마운드나 타석에 서지 않더라도 잠시 투수와 타자를 보여주다가 다시 오타니가 벤치에 앉아있는 모습이 잡힌다.

기자 회견 요청은 거의 매일 있다. 심지어 오타니는 인터뷰도 따로 한다. WBC 대회는 MLB가 주관하는데, 기자회견도 정해진 룰이 있다. 보통 같은 팀 선수들은 함께 참석하도록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그러나 오타니는 별도의 존재다. 일본 대표팀 내에서도 오타니 인터뷰를 따로 하고, 그 후 다른 선수들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형식이다. 오타니에 대한 인터뷰 요청이 너무 많은데다, 다른 선수들이 함께 자리 하면 질문이 오타니에게만 쏟아질 게 뻔하기 때문에 적용한 '특별 규정'이다.

그는 이미 이런 풍경에 익숙하다. 소속팀인 LA 에인절스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매일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표팀 합류를 앞두고도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는 오타니 인터뷰를 위한 별도의 공간이 필요할 정도였다. 이제는 메이저리그 '슈퍼스타'가 된 만큼 특정 매체가 그의 인터뷰를 단독으로, 별도로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AFP연합뉴스

오타니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이렇게 숨이 막힐 정도로 모두가 집요하게 자기만 쫓는 상황에서도, 흐트러지거나 싫은 내색을 한번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인터뷰는 시종일관 정중하고 예의있었다. 비슷한 질문이 자주 나와도 같은 톤을 유지하며 답하고, 상대에 대한 자극적인 답변이나 평가는 절대 하지 않았다. 과거의 스즈키 이치로와 비교해 "오타니의 인터뷰는 약간 로보트 같고 재미가 없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그는 늘 같은 태도를 유지했다. 불편한 기색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그는 WBC 우승 후 MVP 인터뷰에서도 "우리의 우승으로 한국, 대만, 중국 등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의 야구가 더 인기있어졌으면 좋겠다. 우리가 우승하는 것을 보고 다른 나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답해 박수를 받았다.

인터뷰 뿐만 아니라 야구장 내에서의 생활이나 사적인 생활에서까지 잡음이 없다. 물론 오타니도 일본에서 뛰던 시절보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면서 더 외향적이고 쾌활한 성격으로 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WBC에서도 그는 더그아웃의 분위기 메이커로 팀 분위기를 이끄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경쟁팀의 주축 선수라는 경계심을 잠시 밀어놓고, 큰 성공을 거둔 '스타' 메이저리거로서 오타니가 보여주는 태도는 분명히 모든 야구선수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

Copyright © 스포츠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