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사태는 위기의 전조… 대출자 부담 줄여 금융시스템 살려야[Deep Read]
국제적으로 동조화한 금리 환경에서 발생한 SVB 파산… 연쇄적 글로벌 위기 신호탄으로 해석해야
자산 건전성 약한 韓 금융시스템 불안… 높은 대출이자가 금융기관 위험에 빠트릴 부메랑될 수도
전 세계를 휩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상징은 9월에 있었던 세계 4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이었다. 리먼브러더스가 천문학적 손실로 무너지자 미국 금융시장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가 혼란에 빠졌다. 이번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역시 한국의 금융개혁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금융위기의 전조
2008년 금융위기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첫째, 그 이전까지 상승하던 미국 주택가격이 떨어지며 부동산시장이 불안해진 것이다. 2007년 1분기를 정점으로 미국의 전반적인 주택가격은 이미 하락하고 있었는데, 2007년 1월 380.78(1980년 1분기=100)이던 미국연방주택금융공사 주택가격지수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전인 2008년 7월 351.49로 8% 하락한 상황이었다.
부동산시장에서 가격 하락이 특히 문제인 것은 부동산 구입에 있어 대출이 중요한 재원 조달 수단이기 때문이다. 대출에 따른 채무 부담은 그대로 있거나 오히려 증가하는 상황에서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부담은 치명적일 수 있다. 더구나 저신용에 따른 고금리 서브프라임 대출이 주된 재원 조달 방식인 경우 가격 하락에 따른 압력이 더욱 커진다.
둘째, 부동산가격이 떨어지면서 대출이 부실화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금융기관의 위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점이다. 당시는 파생상품 중심으로 오히려 위험이 증폭된 상황이었다. 많은 금융기관들은 담보 대출을 유동화시키면서 다른 투자자에게 유동화한 담보 대출을 매각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특히 서브프라임 같은 저신용 담보 대출의 유동화 비율이 증가한 상황이어서 주택가격 하락에 따른 금융 위험이 컸다. 2000년대 초반 30%대 비율이던 저신용 담보 대출의 유동화 비율은 주택가격 하락 직전인 2006년에는 60%대까지 증가해 있었다.
미국에서 전반적인 부동산가격 하락이 나타나기 시작하던 2007년 4월, 부동산투자신탁회사 뉴센추리가 파산한다. 회사는 언급된 금융위기의 두 핵심 요인인 ①서브프라임 저신용·고금리 대출 그리고 ②자산 유동화가 사업의 핵심이었다. 즉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로 상징되는 2008년 위기와 비교할 때 규모는 작지만 질적으로 동일한 사건이 이미 2007년 발생한 것이다.
◇SVB 사태가 말하는 것
최근 발생한 SVB 사태 역시 예사롭게 넘길 수 없다. 해당 은행의 구조를 볼 때 유사한 위험이 미국 금융시장에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SVB는 두 가지 큰 특징을 지녔는데 첫째, 채권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고위험 투자 포트폴리오였고 둘째, 주 예금 고객층이 테크놀로지 부문 중심의 스타트업 기업으로 최근 이들의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예금자들이 이탈할 수 있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채권 부문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은 금리 상승 시기에 채권가격의 하락을 의미하기 때문에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재무제표를 심각하게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과연 해당 금융기관을 신뢰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또한 예금자들도 금리 인상으로 타격을 입기 쉬운 테크놀로지 스타트업이 많기 때문에 이들이 안정적으로 자금을 계속 제공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측면도 해당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를 약화하게 한다. 이는 자금 조달과 투자 부문 양쪽 모두 금리 상승과 함께 타격을 입기 쉬운 구조라는 뜻이고,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정도로 금융기관의 위험관리 또는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SVB 사태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라는 거시경제 환경의 변화와 함께 자금 조달과 투자의 위험관리가 충분하지 못한 금융기관이 취약한 위기의 고리가 됐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관점에서 금리 상승과 함께 언제든지 미국 내에서 혹은 다른 국가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 자체가 곧바로 금융위기를 의미하지는 않더라도 유사 구조의 금융기관에서 연쇄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거나 규모가 큰 곳으로 확대되면 상당한 위험으로 번질 수 있는 전조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금융개혁에 주는 시사
과거 경험에 미뤄 미국의 금리 인상과 금융시장 상황은 전 세계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뉴센추리 파산 직후 영국의 주택담보대출 은행인 노던록이 파산 위기에 몰려 뱅크런이 발생해 영국중앙은행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뉴센추리 파산이 직접 노던록 위기를 촉발한 건 아니어도, 미국의 거시경제 여건과 통화·금융정책 그리고 이에 따른 글로벌 금융시장 환경이 동시에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기존의 투자 손실로 자산 건전성 문제에 봉착한 크레디트스위스은행이 이런 거시경제 환경에서 위기에 빠진 것 역시 놀라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미국과의 금리 역전, 그리고 인플레이션 관리 과정에서 대출금리의 지나친 상승으로 대출자들이 어려움에 빠지고 금융시스템이 불안해지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감독 당국이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한국은 대형 은행 중심으로 독과점적인 시장 구조를 형성하고 있고 변동금리 대출의 비중도 많은 구조여서, 금리 상승기처럼 금융기관이 금리 설정에 보다 우월한 협상력을 사용할 수 있을 때는 대출자들의 채무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대출자들이 줄줄이 파산하거나 채무 부담으로 자산을 매각해야 하는 경우가 확대되면 그 자체가 부실 대출로 이어지며 금융시스템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경우 높은 대출이자가 설정되면 금융기관 자체로도 위험이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은행 숫자를 늘려서 독과점을 해소하는 것이 해결법이 되기도 어렵다. 충분한 자산 건전성이 확보되지 못한 은행의 숫자 증가는 그 자체가 금융시스템의 불안 요인이다. 은행 숫자를 늘려 경쟁을 촉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은행들의 독점력에 의한 불공정 폐해 및 그로 인한 위험을 금융감독 차원에서 관리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대출자 부담 줄여야
국제적으로 동조화한 금리 환경에서 투자 손실이 우려되는 부문 중심으로 금융기관의 위험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SVB 사태가 예사로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SVB 사태에서 배워야 할 핵심은 재원 조달에 따라 부담해야 하는 원리금은 커지면서 수익은 감소하는 구조가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출자의 부담을 줄이는 데 초점을 두면서 금융시스템을 살리는 위험관리 방안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 용어설명
‘금융위기’는 금융에서 비롯된 위기인데, 주로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위기를 지칭. 미국 국내총생산이 4분기 연속 하락하고 대형 대부업체들이 연이어 파산하며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전이.
‘뱅크런’은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 예금으로 다양한 금융활동을 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은행으로서는 당장 돌려줄 돈이 바닥나는 패닉 현상에 빠짐. 뱅크런에서 유래한 펀드런, 본드런도 있음.
■ 세줄요약
금융위기의 전조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상징은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그런데 2007년 4월 부동산투자신탁회사 뉴센추리가 파산. 금융위기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질적으로 동일한 사건이 한 해 전 발생한 것.
SVB 사태가 말하는 것 : 국제적으로 동조화한 금리 환경에서 발생한 SVB 사태 역시 예사롭게 넘길 수 없어. 유사 구조의 금융기관에서 연쇄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거나 규모가 큰 곳으로 확대되는 전조로 해석돼야.
금융개혁에 주는 시사 : 단순히 은행 숫자를 늘려 독과점을 해소하는 게 금융개혁의 해결법이 되기는 어려움. 자산 건전성이 약한 한국에서는 높은 대출이자가 금융기관을 위험에 빠트리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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