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야비야] 정치 팬덤과 '달콤한 독(毒)'

송연순 기자 2023. 3. 2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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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딸', 반란표 의원 색출 등 내부 공격
문재인 전 대통령마저 '수박 7 적' 낙인
맹목적 지지, 증오· 분열 부작용 초래
송연순 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무더기 이탈표가 나온 것에 반발한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 등 이 대표 강성 지지자들의 내부 공격이 점입가경이다.

이들은 반란표를 던진 의원들을 '수박'(겉은 민주당이면서 속은 국민의힘)이라며 색출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비명계(非 이재명) 의원 등 7명을 표적으로 한 '수박 7 적' 포스터까지 등장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당 내분을 우려해 색출 자제를 촉구했지만 강성 지지층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낙연 전 대표의 영구 제명 요구 청원의 동의 인원이 3일 만에 답변 충족요건인 5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재명 대표의 '자제령'에도 내부 공격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민주당 법률위원회는 지난 16일 입장문을 통해 "허위 비방 게시물의 제작 및 유포자에게 해당 인터넷 게시물을 즉시 삭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허위 비방 게시물이 발견될 경우, 제작자 및 유포자에 대해 형사고발 등 필요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 강성 지지자들이 문 전 대통령마저도 '수박'으로 지목해 적개심을 드러냈는데, 이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감자를 심는 모습 등 일상 사진을 공개하자, 일부 이 대표 지지자들은 "국민은 열받아 죽겠는데 한가롭게 감자를 심나", "조국이 칼을 맞던 이재명이 칼을 맞던 관심이 없나" 등의 격한 반응을 쏟아내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 지지층인 '문파'가 2017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도 상대 후보에 대한 문자폭탄과 비난 댓글이 이어졌지만, 문 전 대통령은 집권 후 이와 관련해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두둔했던 장면이 묘하게 오버랩되는 대목이다.

당내 갈등이 고조되면서 이 대표 측은 당내 소통을 강화해 문제를 풀겠다고 강조했지만, 비명계는 이 대표의 사퇴를 거듭 촉구하고 있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 중심 화합'으로 당 내홍을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놨다는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의 '전언'과 관련해 이상민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문 전 대통령이 과도하게 말씀한 것이고, 전달한 분도 잘못 전달한 것"이라며 "우리가 문 전 대통령의 꼬붕(부하)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당을 위해서도 이 대표를 위해서도 급한 불을 끄려면 본인의 거취 정리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이 대표의 사퇴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최근 민주당에서는 팬덤(fandom)이 주체가 되고, 정치인이 눈치를 보며 따라가는 '정치인과 팬덤의 역전'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무더기 이탈표가 발생한 이후 민주당 내 계파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는 후보 등록 전부터 '특정인 찍어내기'로 불공정 논란을 불렀다. 선거는 사실상 요식 행위로 전락한 채 '당 대표 임명'과 다를 게 없는 결과로 끝났다.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후보들 역시 범친윤계로 분류되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친윤 지도부' 완성이 임박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팬덤 정치는 '양날의 칼'이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해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경쟁 정치인을 적으로, 타도 대상으로 여기는 맹목적 지지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소수에 불과한 강성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부각되면서 다수 국민의 목소리가 묻혀버리는 민심 왜곡현상도 나타난다. 맹목적 지지는 증오와 분열을 낳게 된다. 정치인이 팬덤의 달콤함에 취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다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 팬덤 정치의 달콤함 속에는 독(毒)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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