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꽃의 미학, 미학의 정치학

송석랑 목원대 창의교양학부 교수 2023. 3. 2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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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랑 목원대 창의교양학부 교수

봄이면, 유년의 시간에 묻혀있던 꽃의 기억이 '꽃의 미학'으로 소환된다. 한 시인은 이 미학을 두고 이렇게 썼다. "봄의 고갯길에서/ 휘날리는 꽃잎 잡으려다가 깨뜨렸던/ 내 유년의 정강이 흉터 속으로/ 나는 독감처럼 오래된 허무를 앓는다/ 예나 제나/ 변함없이 화사한/ 슬픔,/ 낯익어라"(송연우, 벚꽃). 시인의 기억에 반복해 떠오르는 '허무'의 내상(內傷)은 분명 해마다 유년의 봉인을 뜯고 나온 꽃의 존재론적 비애일 것이다.

살아있는 것들의 목을 베며 죽음의 무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시간의 역설이야 지난겨울에도 있었고, 찾아올 여름과 가을에도 있을 것이지만, 그 슬픈 시간에 묶인 처연한 삶의 비애를 '화사한' 봄날의 꽃잎보다 선명히 나타내는 것은 없다. 아직 살아있듯 떨어지는 꽃잎의 난무는 차라리 섬뜩하다: 모든 것을 무화(無化)하는 정서를 몰고 와 죽음에 대한 예기치 않은 두려움으로 폭발한다. 그러나 시로써 보여준, 아니 시인의 낯선 익숙함으로 소환되는, 그리고 사실은 우리 안에도 있는, 이 정서가 기꺼운 것은 그것의 미학적 의미도 의미지만 그것이 '미학의 정치학'을 가능케 하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현실을 지탱하는 체제의 헤게모니를 두고 다투는 권력의 메커니즘이 정치라면, 그것의 작동원리는 사회적 현실의 실패를 드러내 더 나은 체제를 세울 저항의 힘일 것이다. 이 말은 정치의 질을 가늠할 척도가 권력의 정당성 여부에 있음을 가리킨다. 정치학은 오랫동안 권력의 정당함을 말하기 위해 논리적 이성에 주의력을 집중했다. 하지만 폭력과 내통하는 이성의 그늘, 정확히 말하자면 도구성으로 인해 정치는 퇴락의 시간을 반복해 왔다. 우리당대의 정치학은 논리적 이성이 아닌 시적 감성의 차원에서 정당한 권력의 의미를 재정립하면서, 그 반복의 사태와 단절할 유력한 방도를 말할 수 있게 되는데, '미학의 정치학'은 그 중 하나다. '꽃의 미학'에 함축된 죽음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이 인식과 실천에 개입하는 모든 종류의 인간주의적 욕망을 제거해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죽음의 허무를 수반하는 비애의 정서가 흘러든 아름다움이 사실은 처음부터 진리와 도덕 모두와 통하는 개념임을 승인하게 된다. 세상의 진실을 알고 타인과 공존하는 도리를 익히는 일은 미학의 자리에서 먼저 선취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미학의 정치학은 '꽃의 미학'으로써 소환된 "유년"의 감각이 죽음으로 존재를 증명하는 실존의 슬픈 내면의 정서에 멈추지 않고, 사회의 결핍으로 정치의 실패를 증명하는 저항의 실천으로 뻗어갈 때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실존적 수정은 개인의 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지만, "세상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태도"를 변경하는 수준에 그친다는 점에서, 미학의 정치학은 '세계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를 변경하는 실존적 수정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킬 저항의 힘'을 취할 때 성립한다. 따라서 이 경우 중요한 것은, 마치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이성의 논리 틈으로 새어나간 사회의 결핍을 포착, 더 정당한 정치권력을 불러들일 감각의 정서로 '꽃의 미학'을 확장하는 일이다.

그래도 권력의 정당성을 펼칠 이성의 논리는 있어야 하겠지만, 그것의 진정성은 그 논리가 미학적 정서에 닿아있을 때 가능케 된다. 정말로 미학의 정서가 대안의 정치에 필요한 것이라면 문제는 방법일 것이지만, 특별한 훈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유년의 기억에 명징하게 혹은 흔적처럼 내재해 있는 것이라면 그 정서가 정작 낯설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낯선 것들에 친숙해진, 그래서 사실은 낯익은 것들을 망각한 일상의 태도를 전복하는, '꽃의 미학'으로써 다시 쓰자면 꽃의 이면에 숨겨진 "화사한/ 슬픔"을 보고 "낯익어라" 말할 수 있는 시인의 정서에 공감할 미학적 수고면 일단은 충분할 듯하다. 시 읽는 일이 각별한 일이 되어버린 듯한 시대에 이도 쉽지 않은 일일까? 꽃잎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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