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에게 묻는 경사지 주택 설계의 모든 것

조재희 2023. 3.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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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경사지에 집을 짓는 네 가지 방법
험난한 토목 공사, 어려운 설계, 복잡한 시공이 필요하다지만 경사지는 한편, 건축가에게는 자연이 주는 모티브가 된다. 땅을 덜고, 파고, 덮으며, 때론 위에 얹은 네 사례와 건축가의 조언을 담아본다.

경사지 주택 ➃ : 건축가 인터뷰 HOUSE ON THE HILL


경사지에 지어지는 건축물은 특성상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나우랩 건축사사무소 차현호 소장에게서 본지(278호)에 소개된 ‘카사브로’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경사지 주택에 무엇이 필요한지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주택 카사브로의 모습. 주변 주택 모두 상당한 높이의 석축이나 보강토 옹벽을 설치한 것을 알 수 있다. Ⓒ최진보

<카사브로>를 돌이켜 생각하면 상당한 경사지였다

건축하기 위해서는 대지가 도로에 접해야 한다. 때에 따라서 도로가 대지보다 낮은 쪽에 있기도 하고 높은 쪽에 있기도 한데, 카사브로가 지어질 땅은 도로보다 낮은 곳에 있는 경사지였다. 주변에는 주택이 대부분 들어와 있었다. 그 집들 모두 대부분 석축이나 보강토 옹벽으로 대지를 조성한 상태였다.

카사브로의 대지는 높은 곳과 낮은 곳의 레벨 차이가 8m여서 조망은 시원하게 열린 편이었다. 건축주인 형과 아우는 각 가족이 살 수 있는 2채의 집을 요구했는데, 이 풍경을 보는 순간 경사지의 장점을 활용해 높은 곳과 낮은 곳에 각 집을 둬서 모두 이 풍경을 충분히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착공 전, 모두 모여 토목전략을 논의했다고

건축주 요청 중 하나는 형제가 사는 각각의 집이 독립적으로 있되, 주방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각 집에서의 조망을 고려하면 대지의 높은 쪽에 한 집을 두고, 낮은 쪽에 다른 집을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주방의 위치는 각 집에서 동일한 이동 높이를 갖는 중간 정도로 자연스레 잡혔다.

그러다 보니 집은 윗집에서부터 기존 경사를 따라 반 층씩 내려가는 일종의 스킵플로어 형식이 되었다. 동시에 윗집의 마당과 아랫집의 마당의 레벨 사이에는 5m 넘는 차이가 생겼다. 그래서 반 층씩 변하는 대지의 형상과 5m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콘크리트 옹벽이 필요했고, 토목공사가 이어졌다.
여기에 따라 땅을 얼마나 절토할지, 옹벽의 구조는 자연석 쌓기로 할지, 콘크리트로 할지, 남은 대지의 경사부 조경은 어떻게 할지, 5m 옹벽은 흙을 가두는 것 외에 어떻게 사용할지 등을 논의했다. 다양한 레벨의 집을 담는 토목구조가 필요한데 이게 단순히 구조체로 끝나지 말고 활용할 수 있는 생활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논의를 했던 기억이 난다.

옹벽이 들어설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흙막이 공사 중인 모습
실내 생활공간과 이어지는 높이 5m 옹벽에는 방수 및 단열 마감을 해줬다.


일반적으로 경사지 주택 착공 전에는 어떠한 이야기가 오가나

착공 전을 설계 단계라고 본다면 토목설계사무소와 건물이 들어설 레벨과 대지의 레벨 차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논의한다. 주로 자연 경사로 처리할지 아니면 옹벽을 세울지, 우수 처리는 주택 카사브로의 모습. 주변 주택 모두 상당한 높이의 석축이나 보강토 옹벽을 설치한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할지 등이 이때 정해지게 된다. 때로는 건물의 외벽이 옹벽을 대신해 대지 레벨 차를 받치는 역할을 할 때가 있다. 이때는 구조설계사무소와 논의가 필요하다. 이외에도 설비 사무소와 높이차를 극복하는 방식에 대해서 의견이 오간다. 경사지 주택이라고 특별한 관련 전문가가 따로 있지는 않다.



착공에 들어간 후로도 여러 난관이 있었던 것 같다

예상치 못한 비용 증가가 생겼다. 도로가 대지보다 높은 쪽에 있다 보니 제일 낮은 아랫집부터 공사를 해오면서 아래까지 공사 차량이 이동하는 통로를 만들기 위해서 윗집이 들어설 땅을 계획 레벨보다 더 깊게 절토해야 했다.

도로가 대지보다 높은 쪽에 있어, 제일 낮은 아랫집부터 공사를 하려면 그 아래까지 공사 차량이 이동하는 통로를 먼저 만들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이 통로를 만들기 위해 윗집이 들어설 땅을 원래 계획보다 더 깊게 절토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랫집 기초를 한 후 원래 윗집 레벨 계획에 맞춰 되메우기했는데, 윗집 부분에 기초를 만들 때가 되니 지내력이 나오지 않았다. 지반 다짐을 해도 땅이 충분히 단단하지 않은 것이다. 지내력을 확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파일(pile)을 넣어야 했다. 이는 당연히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빠듯한 시공비라는 건축주의 입장과 공사 중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한 비용이라는 현장의 입장이 부딪혔는데, 중간에 있는 건축사사무소인 우리가 양편을 오가며 중재했던 기억이 난다.


대지 아래쪽으로 공사 통로를 만드는 모습
되메우기 한 자리에 지내력을 확보하기 위해 파일을 설치했다.

이런 복잡한 작업이 경사지 건축에서는 흔한가

아주 흔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언덕 지형이 많은데, 언덕 지형은 평지와 비교해서 토지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토지를 조성해서 판매하는 개발사업자에게도 다소 토목공사 비용을 들여도 초기 투자 비용이 덜 드는 매력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도시 외곽지역을 가다 보면 낮은 산을 깎아서 만든 주택단지를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경사지를 계단형식으로 절·성토하고 보강토 옹벽을 쌓아 대지를 조성했다. 개발사업자는 아무래도 특정 건축주가 아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토지를 매매해야 하다 보니 획일적으로 평평한 대지를 만들게 된다. 이런 대지는 상대적으로 건축은 편해지겠지만, 경사지를 활용한 재밌는 건축물이 나올 수 없는 아쉬운 점이 있다.

교외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경사지 전원주택 단지 모습. Ⓒ김한빛

토목공사 외에 건축 구조나 설비 등에도 신경 써야 한다는데

건축계획에 따라 다를 것 같다. 구조 측면에서 보면 토목공사를 통해 진입도로보다 대지를 높게 조성한 경우, 지하 주차장을 두고 그 위에 집을 짓는 경우가 많다. 이때 보통은 지하 주차장의 크기보다, 지상 주거 공간의 크기가 큰데, 이런 경우 지하 주차장의 기초와 지상 주거 공간 기초의 높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즉, 기초를 꺾어야 한다는 것인데, 1개 층 차이가 나는 부분에 구조설계사무소에서 검토한 헌치부(haunch, 수직 부재와 수평 부재가 접하는 부위 보강 구조)를 반드시 시공하거나, 지상부 주거 공간의 기초 면적이 클 경우는 별도로 파일 작업을 해서 기초를 받쳐야 한다. 카사브로는 위쪽 주거 공간 하부에 파일 작업을 한 경우다.

설비의 경우 대지에 접한 도로의 위치에 따라 우오수 처리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대지가 도로보다 높다면 문제없는데, 카사브로 같이 대지가 도로보다 낮은 경우는 신경 써야 한다. 보통 도로에 각종 수도, 하수, 우수관 등의 인프라 라인들이 있다. 그런데 대지가 도로보다 낮다면 집에서 사용한 우오수를 한곳에 모아서 펌핑을 통해 위쪽 도로에 있는 오수관로로 보내야 한다.

또한 경사의 흐름에 따라 우리 마당에 내린 빗물이 아랫집으로 내려가는 일도 생긴다. 경사에 따라서는 그것이 폭포처럼 흐를 수도 있다. 카사브로에서는 대지에 내린 우수가 아랫집으로 흘러가는 걸 막기 위해 집 주변으로 30cm 깊이 콘크리트 배수로를 뒀고 저류조를 따로 만들었다. 여기에 고장 날 경우를 대비해서 2개의 펌프를 두었다.

카사브로 아래로 접하는 주택과의 경계에 콘크리트 배수로를 두었다.

경사지는 지상 건축물 설계에도 영향을 주나

경사지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높이의 바닥 레벨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건축물의 내부 공간감을 좌우할 수 있는 단면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다. 경사가 완만하다면 대지를 평평하게 하지 않고 건물을 기둥으로 들어 올려 경사 마당 위로 공중에 뜬 집을 만들 수도 있다. 건축주와 의견이 잘 맞는다면 건축가는 흥미로운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자연스럽다’는 게 중요한데, 평지에서도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때는 합리성(‘굳이 여기에?’)이 떨어질 수 있다. 이런 면에서 경사지 땅이 건축설계에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다.



토목과 관련한 설계, 인허가 절차도 중요할 것 같다

주택설계 규모에서 인허가 절차는 일반적인 평지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50cm 이상의 절·성토를 해야 하므로 일반적으로 ‘개발행위허가’가 동반된다.

개발행위허가는 토목설계사무소에서 진행하는데, 토목설계사무소의 선택은 건축설계사무소를 통해 진행할지, 건축주가 별도로 수소문할지를 계약 시 정해야 한다. 토목설계사무소는 관련 도서를 준비해서 건축허가와 동시에 개발행위허가를 진행한다. 만일 건축사사무소에게 일임했다면 건축주가 따로 신경 쓸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사전에 개발행위를 거친 토지를 매입한 경우는 건축인허가 때 ‘개발행위 변경’을 거치게 된다. 이때 당시에 개발행위 절차를 진행했던 토목설계사무소가 아닌 다른 업체에 일을 맡긴다면, 토지 매입 시 사전에 매매자로부터 당시 개발행위를 했던 토목 자료를 받아서 건축설계사무소에게 전달해 인허가를 진행해야 한다.



비용면에서 경사지는 일반 평지 건축과 얼마나 차이날까

평지에 있는 집에 비해서 먼저 대지 조성을 위한 옹벽 공사 비용을 생각할 수 있겠다. 보강토로 할지 석축으로 할지 콘크리트로 할지에 따라 비용이 달라진다. 거기에 건축계획에 따른 흙막이 공사, 건축 옹벽 공사, 지하층을 만든다면 이에 따른 공사, 파일 공사 등이 추가될 것이다. 카사브로의 경우 전체 공사비에서 약 15% 정도가 이들 공사 비용에 소요되었다.



건축을 권장하지 않는 경사지 기준이 있나

단순히 경사지라서 안 되고, 경사지만 되고의 기준은 없다고 본다. 다만, 권장 문제가 아니라 대지의 경사도에 따라 개발행위 자체가 안될 수 있다는 점은 알아야 한다. 난개발을 막기 위해 경사도가 높은 땅은 개발하지 말라는 취지다. 지자체마다 적용하는 경사도가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만일 땅에 경사가 있다면 사전에 이를 검토해서 토지를 구입해야 한다.

(위, 아래) 지하주차장과 함께 마련한 드라이 에어리어를 풀장으로 활용했다.(순디자인랩) Ⓒ변종석

경사지를 활용하는 예를 소개한다면

대지가 도로보다 높은 경사지라면 지하층이라도 한 면이 외부에 면해 채광과 환기가 가능한 공간을 합법적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면서도 용적률에 산입되지 않아 비교적 넓은 면적을 확보할 수 있다. 요즘 건축주 중에 이런 땅에 실내 주차장이나 실내 골프연습장 등의 취미 공간, 또는 개인 사업용 사무실을 문의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공간을 만들 때 작더라도 드라이에어리어나 선큰을 두어서 채광이나 환기를 해주는 게 좋다.



경사지 대지를 매입할 때, 무엇을 미리 염두에 두어야 할까

필지 조성 공사 전에 미리 지하층 계획 반영 : 전원주택 부지가 지하주차장을 넣기 좋은 경사지에 조성된 경우가 많다. 다만, 보통은 전체를 보강토 옹벽으로 둘러싸는 공사를 해놓은 경우가 많은데, 대지를 분양받은 건축주는 다시 이 옹벽을 뜯어내고 절토 공사를 해서 지하를 만들게 된다. 땅을 분양받을 거라면 미리 지하층 넣을 부분을 반영해 대지를 조성할 수 없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 건축주는 절토 공사비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한 건축주는 대지 분양 전에 우리 사무소를 찾아 협의하고 지하층 만들 부분을 고려해서 대지를 조성해주는 조건으로 토지 분양자와 계약하기도 했었다. 모든 사업자가 이런 조건을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지만 가능한지 문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도로와 대지의 레벨 차이 :
토지를 구입할 때 경사지 대지가 도로에서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지 레벨 차를 체크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하주차장을 만들 때 토지 레벨이 최소한 도로에서부터 2m 이상은 되어야 이후 공사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레벨 차가 크지 않으면 도로보다 낮게 지하주차장을 두어야 할 수 있고 이때 도로에서 흘러드는 우수처리나 지하 주차장 경사로 문제 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토지 매입 전에 건축사사무소를 선정해서 검토를 진행하는 것이다.
직영공사 허용 면적 및 세금 여부 :
세금 절약을 위해 직영공사를 원하시는 건축주도 많다. 법적으로 단독주택은 200㎡ 이하여야 직영공사가 가능하다. 다만, 여기에는 지하층 면적도 포함된다. 간혹 지하층 면적이 용적률 산정에 포함되지 않는 것을 직영공사 허용 면적에도 산정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 또한, 세금 관련해서 임야를 개발한 경사지 대지를 매입한 경우, 땅이 지목상 ‘대’로 되어 있지 않고 ‘임’이나 ‘전’ 등의 지목으로 되어 있을 수 있다. 이런 땅들은 나중에 ‘대’로 변경되면서 이에 따른 세금이 꽤 나온다는 사실도 토지를 매입할 때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경사지를 활용해 지하에 주차장과 공간을 마련, 국민주택규모(85㎡)를 달성해 세제 혜택을 확보한 판교의 한 주택 사례.(적정건축) Ⓒ이원석

건축가 최준석, 차현호 : 나우랩 건축사사무소(NAAULAB ARCHITECTS)


최준석, 차현호는 2017년 가을 최준석의 용인 보정동 자택 ‘미생헌’ 1층에 나우랩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다. 모든 건축의 출발점을 의뢰인과의 첫 대화로 보며, 다이달로스의 미궁 같은 의뢰인의 모호한 마음으로부터 다양한 대화를 통해 특별한 단서 하나 발견하는 순간을 설계의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여긴다. 모든 건축물은 그것을 의뢰한 사람과 설계한 사람을 투영하는 사회적 거울이라는 믿음을 갖고 건축 작업을 하고 있다.
room713@naver.com | www.naau.kr


구성_ 신기영 | 사진_ 건축가 제공, 주택문화사 DB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23년 3월호 / Vol.289  www.uuj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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