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조 패션 브랜드 ‘슈퍼드라이’ 亞 IP 인수한 이순섭 코웰패션 회장 “글로벌 진출 이정표 만들 것”
내년 7월부터 수출 시작, 이익 증대 효과 나올 것
당장의 손익보다 미래 투자 집중... “글로벌로 가야 무너지지 않아”
“회장도 사원도 실무자... 이 대리처럼 일해”
“당장 손익이 줄면 어떻습니까? 지금 글로벌 시프트(대전환)를 이루지 않으면 정말 힘들어질 겁니다. 미래에 우리가 뭘 하고 살 건지를 만들어야죠.”
이순섭 코웰패션 회장은 세계 시장 진출을 앞둔 심정을 이렇게 밝혔다.
코웰패션은 글로벌 패션 브랜드 슈퍼드라이(SUPERDRY)의 아시아 태평양 비즈니스 지식재산권(IP)을 가진 영국 DKH리테일리미티드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 사업권 및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23일 밝혔다.
코웰패션이 5000만 달러(약 655억원)에 아시아 지역(호주·뉴질랜드·인도 제외)의 비즈니스 IP 사업권을 취득하고, 동시에 5억 달러(약 6545억원) 규모의 슈퍼드라이 제품을 기획·생산해 본사에 10년간 수출하는 내용이다.
기존의 라이선스 사업에서 한 단계 진화한 형태로, 이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퀀텀 점프(quantum jump)한다는 방침이다.
코웰패션은 이 회장이 2002년 설립한 비케이패션코리아가 전신이다. 스포츠 브랜드 엘레쎄의 속옷 라이선스를 취득해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후 푸마, 아디다스, 리복, 캘빈클라인 등 유명 브랜드의 라이선스를 획득, 홈쇼핑을 통해 속옷을 판매해 사업을 키웠다.
2015년 대명화학이 코웰패션 지분을 인수하며 최대 주주(48.78%)에 오른 후 푸마 골프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는 등 사업을 다각화했다. 2021년에는 로젠택배를 인수해 물류 경쟁력을 확보했다. 최근에는 피파(FIFA), BBC 얼스(earth), 아워플레이스 등 신규 브랜드를 육성해 신성장 동력을 마련했다.
코웰패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꾸준한 성장을 이어갔다. 2015년 1615억원이던 연결 매출액은 지난해 1조1930억원으로 증가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70억원에서 1034억원으로 커졌다. 패션사업부만 놓고 보면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535억원, 77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번 슈퍼드라이 비즈니스 IP 취득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시도다. 1985년 영국에서 설립한 슈퍼드라이PLC는 전 세계에 720여 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고 연간 도매(홀세일) 매출이 1조원이 넘는다. 2010년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했으며, 브라질 축구 스타 네이마르 주니어와 협업할 만큼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다.
이 회장은 “앞서 피파, BBC 등 해외에서 패션 사업을 하지 않는 회사의 의류 라이선스를 획득해 사업을 시작했으나, 안착하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이에 한 단계 나아가 의류를 잘하는 글로벌 업체의 아시아 판권을 사 점프업(Jump-up) 할 방침”이라고 했다.
다음은 이 회장과의 일문일답.
슈퍼드라이와 계약한 이유는 무엇인가.
“홈쇼핑향(向) 라이선스 브랜드들을 운영하며 다진 코웰패션의 생산 노하우와 글로벌 브랜드의 인지도를 결합해 합종연횡(合從連衡) 방식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10년간 5억 달러어치의 제품을 수출하는 계약을 맺었는데, 홀세일 이익률이 40%에 달하는 만큼 회사의 이익 증가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내년 7월 사업을 시작함과 동시에 가시적인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슈퍼드라이 측은 코웰패션의 어떤 점을 높이 샀나.
“소품종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한 홈쇼핑 사업을 통해 구축한 생산 노하우를 높이 평가했다. 대부분의 국내 패션 기업들은 디자인에 치중하지만, 국제 시장에선 품질 좋은 제품을 싸게 만드는 걸 경쟁력으로 꼽는다. 슈퍼드라이 본사 역시 우리 회사의 원가 경쟁력과 빠른 생산 속도를 강점으로 보고, 수출 계약까지 체결했다.”
어떤 브랜드로 키울 계획인가.
“내년 7월부터 내수 판매를 시작하고, 동시에 영국 본사에서 운영 중인 아시아 프랜차이즈 및 라이선스 사업을 이어받을 예정이다. 미진출 국가의 경우 현지 파트너사와 협업하거나 홀세일 판매 방식으로 진출하는 걸 구상 중이다.
현재 싱가포르와 대만 등 아시아에서 100억원가량의 수출 실적을 얻고 있는데, 여기에 코웰패션의 자체 노하우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접목해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에서 3년 내 600억원 규모의 수출 실적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K컬처, K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걸 반영해 본사와 협력해 공동 마케팅도 추진한다. 생산 과정에서도 본사와 디자인을 섞거나 원부자재를 공동으로 구매하는 방식으로 협상력을 높일 방침이다. 이를 통해 단기간 내에 슈퍼드라이를 아시아 빅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다.”
이번 계약이 회사가 퀀텀 점프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맞다. 세계 시장으로 나가기 위해 회사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꿀 계획이다. K패션이 아무리 인기가 많다고 해도, 한국의 브랜드를 세계에 가져가 성공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제대로 붙으려면 인지도 있는 브랜드를 가진 회사와 협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슈퍼드라이를 시작으로 글로벌 브랜드 인수 및 수출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사업 초기 유니클로 같은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를 하고 싶었는데, 오프라인 매장 하나 만드는 데 100억원씩 들어가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홈쇼핑으로 갔다. 직접 디자인, 생산, 영업까지 하는 홈쇼핑은 SPA와 사업 방식이 비슷하다. 이런 방식이 글로벌에서 공신력을 얻으면서 캘빈클라인, DKNY 등을 가진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하게 됐고, 지금은 글로벌 어디서도 거래할 수 있게 됐다.”
코로나19 시기에도 성장세를 이어갔다. 지속 성장한 비결이 무엇인가.
“의사 결정이 빠르다. 예컨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다면 보통은 수 개월간 수십 단계를 거치지만, 우리는 오너가 나서서 한두 달 안에 해결한다. 또 쓸데없는 자료를 만들지 않고, 회의도 간소하게 진행한다. 왜(Why) 해야 하는지 회사가 방침을 주면, 임직원은 어떻게 할지(How to)만 얘기하면 된다. 대부분의 회사는 하우투가 없고 와이만 얘기하느라 시간을 낭비한다.
속옷, 양말 등 생필품에 가까운 패션 제품을 취급하고,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글로벌 브랜드만 취급한다는 것도 경기나 트렌드에 영향을 받지 않는 비결이다.”
남다른 경영철학이 있다면?
“회장부터 사원까지 모두 실무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회장이라기보다 이 대리에 가깝다(웃음). 이번 계약도 내가 직접 줄리앙 슈퍼드라이PLC 회장을 만나 한 달 반 만에 성사시킨 결과물이다.
비즈니스는 결국 협상 능력이다. 실무 능력이 뛰어나야 정확하게 지침을 내릴 수 있고, 협상할 수 있다. 가끔 외부에서 사람을 영입해 보면 원가도 모르는 사람이 있는데, 실무를 잘 하지 않으면 회사가 살 수 없다.”
리복의 국내 판권이 LF로 넘어가면서, 리복과 계약을 종료했는데 타격은 없나.
“일각에서 우리가 리복 국내 판권을 빼앗겨 어려워졌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사실이 아니다. 앞서 아디다스코리아와 홈쇼핑 판권 계약을 맺었는데, 아디다스 그룹이 리복을 어센틱 브랜드 그룹(ABG)에 매각한 후 주인이 바뀌면서 국내 판권을 LF가 가지게 됐다. 이후 LF가 우리에게 홈쇼핑 부문의 판권 계약 제안을 해왔으나, 리복의 매출이 전체의 4%도 안 됐고 이익률도 낮았기 때문에 제안을 거절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배당을 실시했다.
“이익이 났으니 배당을 한 것이다. 사실 우리는 글로벌로 가기 위해 미래에 대한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은 당장의 손익을 염두에 두기보다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 글로벌 시프트를 해놓지 않으면, 게임은 진짜 힘들어질 것이다. 경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싱가포르, 카자흐스탄 등은 흔들리지 않는다. 글로벌 회사를 만들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코웰패션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코웰패션은 국내 패션 기업 중 글로벌 경쟁력에 가장 근접한 회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는 패션은 멋 부리는 패션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통하는 패션이다. 우리는 10명 중 9명이 입는 옷을 만든다. 이번 계약을 계기로 ‘패션 회사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이정표를 국내 패션 시장에 제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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