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은행의 이자장사를 응원한다
"예금을 받거나 유가증권 또는 그밖의 채무증서를 발행해 불특정 다수인으로부터 채무를 부담함으로써 조달한 자금을 대출하는 것을 업(業)으로 하는 것이다."
은행업법에 적힌 은행업의 정의다. '예금을 받아 대출하는 것'이 은행의 본질이다. 이익을 얻으려면 낮은 금리로 예금을 받아 높은 금리로 빌려주면 된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경제에서 사기를 치지 않는 이상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높은 금리로 빌려주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짧게 빌리고(예금), 길게 빌려주면(대출) 가능하다. 단기 예금(요구불예금)이 많고 장기 대출(혹은 장기채권)이 많으면 은행 이익은 극대화된다. 반대로 단기 예금이 빠르게 빠지는 '뱅크런'이 발생하면 은행은 유동성 위기를 겪는다. 빌려준 대출을 떼여도 어려워진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스위스 크레디트스위스(CS)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SVB가 거액 기업예금 중심으로 자금을 조달해 자산 대부분을 장기 유가증권에 투자, 금리상승으로 예금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채권 평가손실이 발생했다. 예금인출이 증가하자 유동성 문제에 봉착했다는 게 금융감독원의 진단인데 전문가 시각과 큰 차이가 없다. 특히 지난 9일 하루에만 420억달러(약 55조원)의 '스마트폰 뱅크론'이 발생한 것이 파산의 직접적인 이유다.
167년 역사를 가진 세계 9위 IB(투자은행) CS가 UBS로 인수됐다. CS 위기는 지난해 하반기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CS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 3분기말까지 CS 고객 예금잔액은 3600억스위스프랑(약 510조원)에서 4000억스위스프랑(약 567조원)을 왔다갔다했다. 하지만 4분기말 잔액은 2330억스위스프랑(약 330조원)으로 거의 반토막났다. 3개월만에 200조원 가까운 돈이 빠져나갔다.
SVB와 CS에서 대규모 '뱅크론'이 발생한 건 금융회사가 가장 중요시하는 '신뢰'를 잃어서다. 신뢰가 무너진 건 대규모 손실 때문이다. CS는 그린실캐피탈의 파산으로 27억달러(약 3조5000억원)를, 빌 황이 설립한 아르케고스캐피탈에 투자했다가 55억달러(약 7조2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SVB는 장기 유가증권에 투자했다가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국내에서도 대규모 뱅크런이 발생하면 버틸 수 있는 은행은 없다. 다만 국내 대형 은행에서 이같은 규모의 뱅크런 발생 가능성은 낮다. 가장 큰 이유는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서다. 국내 은행은 장기 유가증권에 많이 투자하지 않으니까 SVB처럼 금리가 갑자기 오른다고 대규모 손실을 볼 일이 없다. 헤지펀드 등 고위험 유가증권 투자도 하지 않으니까 CS처럼 투자 실패할 리도 없다. 대신 국내 은행은 대출 자산이 많다. 대출이 부실해지면 대규모 손실을 볼 수 있지만 가능성은 낮다. 은행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산업별 고른 대출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부동산 등 특정 산업이 위기에 빠지면 은행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망할 정도는 아니다. 한국경제 전체가 무너지면 모를까 그전까지는 국내 은행은 안전하다.
역설적이지만 국내 은행이 안전한 이유는 그동안 은행이 비판받은 이유와 같다. 국내 은행은 예대마진에 기초해 이자이익을 꾸준히 낸 덕분에 뱅크런 걱정을 덜었다. 은행이 안전한 덕분에 한국 경제 위기감도 덜하다. 은행의 이자이익이 은행과 한국 경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한국이 비교적 위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것도 은행이 꾸준히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가 SVB와 CS 사태로 위태롭지만 한국 경제가 비교적 자유로운 건 국내 은행이 '이자이익' 중심이어서다. 국민을 속이면서 돈을 벌고, 사회를 등한시하면서 번 돈을 쓴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은행이 은행업법에 적힌 정의대로 돈을 버는 것 자체를 비판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응원할 때다.
이학렬 금융부장 tootsi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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