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반공(反共)과 반일(反日)

남궁창성 2023. 3. 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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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고향 국민학교 옥상에서는 반공과 방첩이라고 빨갛게 쓴 입간판이 우리들을 늘 지켜봤다.

한달에 두번씩 학교에서는 김일성이 탱크를 앞세우고 38선을 넘는 반공 영화를 틀어줬다.

2000년대 들어 반일이 반공 자리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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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고향 국민학교 옥상에서는 반공과 방첩이라고 빨갛게 쓴 입간판이 우리들을 늘 지켜봤다. 1층 교실 앞 화단에는 공산당을 싫어했던 이승복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한달에 두번씩 학교에서는 김일성이 탱크를 앞세우고 38선을 넘는 반공 영화를 틀어줬다. 매년 6월25일을 앞두고 반공 웅변대회와 포스터 그리기 대회도 열렸다.

중학교에 들어가며 365일 집에도 가지 않고 밤낮없이 학교를 지키는 승복이 형과 작별했다. 반공시대 이승복 동상은 우상(偶像)이었다. 그땐 “이놈, 빨갱이아냐?” 이 한마디면 게임 오버. 토론이고 대화고 필요가 없었다.

2000년대 들어 반일이 반공 자리를 차지했다. 역사학계에서는 친일사관, 식민사관, 그리고 민족사관이라는 말들이 유행했다. 19세기 역사적 사건은 난(亂)에서 항쟁, 그리고 혁명으로 승격되어 갔다. 학술적 논증이나 토론, 비판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일본도 우리 땅, 만주도 우리 땅”이라는 말도 들렸다. 역사보다 민족의 기억이 먼저였다. 중국인은 ‘되놈’, 일본인은 ‘왜놈’으로 그냥 평가절하됐다. 이번에는 “저 놈, 친일파 아냐?” 이 한마디면 상황 종료. 죽창가(竹槍歌)도 요란했다. “반일이면 어때!”라는 치기가 애국심으로 둔갑했다. 을사오적인 이완용을 소환해 상대방을 윽박지르고 주홍글씨처럼 낙인찍었다.

반공과 반일은 닮아 있다. 임팩트가 강한 구호가 선전선동에 동원된다. 우상들이 유령처럼 등장한다. 상대를 뿔 달린 괴물이나 늑대로 포장해 비난한다. 그리고 뒷전에서 항상 정치 경제적 이익을 챙기는 세력들이 있다.

대학에 들어간 뒤 모교를 다시 찾았다. 동네에서 가장 넓고 높았던 교정과 학교는 작아 보였다. 믿기지 않아 앉은키로 둘러봐도 변함이 없었다. 저기 20년 가까이 교정을 지키고 있는 빛바랜 동상이 보였다. 이젠 나보다 키가 작아진 이승복. 그 얼굴을 쓰다듬으며 영영 이별했다. “형! 이젠 집에 가. 수업 다 끝났어.” 남궁창성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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