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의무매입시 매년 1조원 혈세 버려…정부, 최소한 완충 역할만"
"시장격리 통한 가격변동 조절 근본적 한계 있어"
"식습관 변화에 쌀값 하락 불가피…변동폭 줄여야"
"미국식 가격변동 대응직불제 도입해야"
[세종=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23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남아도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예고한 가운데 개정안 통과시 매년 1조원 이상의 혈세를 낭비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양곡법 개정안에 대한 격앙된 반대 목소리는 여당 뿐 아니라, 야당 진영에서도 나오고 있다. 정치 유불리에 따라 정파적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쌀 과잉생산 구조 고착화 등 막대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잘못 설계된 법안이라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 대통령 자문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위원, ‘양곡정책심의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민주당 진영에서 쌀 관련 주요 정책 설계 및 자문 역할을 맡아왔다. 그런 그도 “다른 재화와 마찬가지로 쌀도 근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형성돼야 한다”며 “정부는 가격의 급등락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판 역할만 해주면 된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쌀 의무 격리에만 해마다 약 1조원의 예산이 들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금도 평균적으로 쌀이 20만톤 가량 초과생산되는데, 정부가 남는 쌀을 다 사주면 수급불균형이 더 강화돼 연간 40만톤 이상이 남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부가 이렇게 사들인 어마어마한 양의 쌀은 10분의 1 가격에 사료용으로 팔린다. 그는 “사실상 예산을 땅에 버리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시장격리에 막대한 예산이 들어감에도, 가격지지 효과도 크지 않다. 실제 2005년 이후 2018년까지 12년에 걸쳐 정부가 총 324만 5000톤을 시장격리했지만, 이 기간 수확기의 쌀 실질가격은 22.6% 하락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 이사장은 “식문화 변화로 쌀 소비가 꾸준히 감소하기 때문에 쌀 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이사장은 근본적으로 시장격리를 통한 가격 변동 조절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생산량과 소비량 추정치에는 상당한 오차가 있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쌀 생산량은 그해 작황에 따라 1헥타르(ha)당 100kg 넘게 차이가 난다”며 “이런 변동성을 다 파악하고 시장격리를 제대로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추정치로 시장격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2011년과 2018년에는 초과량을 시장격리 했음에도 수확기 가격이 전년 대비 각각 20.8%, 29.2%나 상승했다. 반면 2009년, 2016년에는 초과량을 전량 시장격리 했음에도 수확기 가격이 각각 12%, 14.7% 하락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쌀 가격도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맡겨야 된다”고 조언했다. 다만 정부는 지나치게 쌀 값이 20~30% 가량 급등락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완충장치 역할을 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쌀 수급 상황에 대한 신속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시장의 조정 능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이사장은 “쌀 가격이 기준 이하로 하락하는 경우 차액의 85%를 보존하는 미국식 가격변동 대응직불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보다 구체적으로는 시장의 수급 조정 기능이 왜곡되지 않도록 생산 비연계 방식으로 하고, 기준가격을 국회에서 정하는 것이 아닌 평년수준으로 해야 한다”면서 “농가에서 다른 작물로 전환도 가능하도록 주요 20개 작물에 대해 함께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서 농식품부 장·차관 등을 역임했던 고위 관료들의 상당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정부의 쌀 의무 매입이 단기적으로는 농가 소득을 보존할 수 있어도 과잉생산을 부추기고 결국에는 쌀값은 더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양곡관리법 개정안 처리가 민주당의 당론인 상황에서 공식적으로 반대하기 힘들다”며 공식적인 언급을 꺼려했다.
김은비 (demeter@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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