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73] ‘더 글로리’에 소환된 ‘아가에게’

장유정 단국대 정책경영대학원 원장·대중음악사학자 2023. 3. 2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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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아니었다면 ‘더 글로리’에 처음부터 그렇게 빨리 빠져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전주(前奏)부터 마음이 저절로 열리고 전율을 느끼게 하는 음악을 가끔 만나는데, ‘더 글로리’ 1화에 흘러나오는 ‘Until the End’가 그러하다. 아름다운 전주에 더해진 켈리 맥레이(Kelley McRae)의 따뜻한 목소리에 매료되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끔찍한 학교 폭력의 피해자인 문동은(송혜교분)이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이 드라마는 최근 파트 2까지 공개되었는데, 현재 전 세계 넷플릭스 TV쇼 부문 정상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현대의 드라마 속 인물들의 성격은 복잡 미묘하여 선 또는 악의 어느 하나로 규정짓기 어렵다. 그에 반해 ‘더 글로리’는 우리 고전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권선징악의 문법처럼 인물들의 선악 구별이 명확한 편이다. 때때로 현실은 드라마보다 추악하여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쉽지 않고 피해자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곤 한다. 개연성이 다소 떨어지는 부분이 있어도 ‘더 글로리’에 빠져드는 것은 대리 만족을 통한 카타르시스 때문일 것이다.

‘더 글로리’에서 주목할 것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소통과 연대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Carl Gustav Jung)이 처음 사용한 ‘운디드 힐러(wounded healer)’에 해당한다. 문동은의 여러 조력자와 ‘칼춤 춰 줄 망나니’를 자처한 주여정(이도현분)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받은 상처는 동병상련에 놓인 사람들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원천이 된다.

하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기 마련이다. 마지막 화에 다소 뜬금없이 등장한 송골매의 ‘아가에게’는 이 드라마의 종착점이 복수만은 아니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달빛처럼 고요한 그대는 누구인가/ 햇살처럼 화사한 그대는 누구인가/ 그 누구의 사랑으로 여기에 서 있는가”로 시작하는 ‘아가에게’는 순수한 사랑을 예찬한 노래다. 배우 임예진이 첫 조카를 보고 느낀 놀람과 감탄을 노랫말로 만들었고, 여기에 구창모가 곡을 붙여 1983년 송골매 3집 음반에 수록하였다. 이 노래는 ‘처음 본 순간’과 함께 3집 음반의 흥행을 이끈 대표곡이다.

송골매의 ‘아가에게’는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결국 복수가 아니라 순수한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아기를 향한 사랑은 조건과 대가 없는 사랑 그대로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구름이 햇살을 가리는 순간 문동은과 주여정이 서로에게 건넨 대사는 평범한데도 울림이 있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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