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추억의 맛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사다 주시던 사탕 맛이 지금도 그립다. 방학 때마다 열흘 정도씩 조부모님 댁에서 지냈는데, 할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시면서 사탕이 담긴 비닐봉지를 나와 동생에게 안겨주시곤 했다. 생강 맛 사탕은 좀 맵고 딱딱했다. 캐러멜은 단맛이 강하고 찐득거려서 이에 달라붙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질이 아주 좋지는 않은 군것질인데, 나와 동생은 할아버지만큼이나 사탕 봉지를 기다렸다.
또 하나 그리운 건 엄마가 만들어주신 카스텔라의 맛이다. 정확히는 실패한 카스텔라였다. 엄마의 넘치던 의욕과 달리, 오븐에서 완성된 음식은 계란 향만 나는 납작하고 질긴 빵이었다. 엄마는 빵이 담긴 접시를 내밀며 “좀 이상한 카스텔라라도 맛은 괜찮다”고 겸연쩍게 웃었다. 엄마 말이 맞았다. 우리 가족은 그 빵을 맛있게 먹었다. 카스텔라라고 부르기 민망한 빵이었지만, 식감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 부드러운 데다가 고소하기까지 했다.
음식을 떠올릴 때면, 사연이 담긴 기억이 따라붙는다. 늦은 밤 사탕 봉지에서 전해지던 밤공기, 엄마의 어색한 미소에 스치던 찰나의 생기, 취업에 실패한 친구와 나눠 먹은 김치 전골의 알싸함, 김치찌개를 비빈 밥을 말없이 입에 밀어 넣던 친구의 굳은 두 뺨,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며 홀짝이던 식은 아메리카노의 씁쓸함…. 나는 음식에서 그런 기억을 떠올린다.
요즘 들어 ‘추억’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음식들이 자주 눈에 띈다. 추억의 떡볶이, 추억의 핫도그, 추억의 도시락…. 옛날 음식이 다시 유행하는 건 맛 그 자체가 그리워서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음식을 먹으면서 과거의 한때로 돌아갈 수 있는 경험, 아마도 그 경험이 소중해서일 것이다. 현실이 각박해질수록 우리는 ‘추억’이라는 수식어를 자주 만나게 될 것 같다. 때론 기억이 주는 위안에서 오늘을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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