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2′ 속 가짜 물, 진짜 물처럼 실감날 수 있었던 비밀

이승철 KIST 한·인도협력센터장 2023. 3. 2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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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라운지]
계산과학은 영화 ‘아바타2′처럼
현실에 없는 가상 물질 만들고
그 성질까지 분석할 수 있어
영화 아바타2 속 주인공이 물속을 헤엄치는 모습. 계산과학을 이용하면 아바타2 판도라 행성의 물처럼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 물질을 만들고 그 성질을 분석할 수 있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홈페이지

영화 ‘아바타2′는 관객이 실제 판도라 행성이 존재하는 것같이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다. 영화에서는 30년 전 필자가 대학원에서 연구한 액체의 움직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고 튀어 오르는 모습을 표현했다. 등장인물이 물에 젖는 장면도 물론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구나!’ ‘저건 어떤 방법을 썼을까?’와 같은 감탄과 의문에 휩싸여 있다 보니 세 시간 동안의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물의 움직임은 ‘물리 엔진’을 통해 구현된다. 물의 움직임에 대한 방정식을 만들고, 컴퓨터를 사용해 계산된 결과를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눈으로 보이거나 만져지는 액체, 고체와 같은 소위 ‘연속체’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도 시뮬레이션으로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다. 물질 구성의 최소 단위가 원자라고 생각하면 이들을 어떻게 섞고 배열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물체를 만들 수 있다.

이를 활용하면 판도라 행성의 물처럼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 물질을 만들 수 있다. 새로운 방식으로 원자를 쌓거나 다른 원자들을 섞으면 새로운 성질을 갖는 가상 물질을 만들 수 있는데, 이것을 소재 설계라고 한다. 또 실험을 통해 만든 재료의 성질이 왜 그러한지를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해 원인을 알아낼 수도 있는데, 이러한 연구 방법을 계산재료과학 또는 계산과학이라 부른다.

훌륭한 계산과학자는 원자를 어떻게 쌓으면 좋을지를 생각하는 상상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풍부한 이론적 지식을 갖춘 사람이다. 계산과학자는 실험을 통해 합성한 새로운 소재의 성질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예측해야 하는데, 이 과정을 모델링이라고 한다. 모델링이 끝나면 컴퓨터를 통해 그것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컴퓨터 조작 능력과 방정식을 만들어 내거나 수정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능력도 필요하다. 물론 재료에 대한 배경 지식, 예를 들면 물리학, 화학, 재료과학 등의 기본적 지식도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새로운 소재를 설계해 기술 발전을 이루어내는 것이 계산과학의 핵심적 역할이다.

계산과학은 다른 분야와 달리 연구 대부분에 컴퓨터를 이용하기 때문에 장소 제약이 거의 없다. 컴퓨터를 사용한다면 어디에서라도 반드시 같은 결과가 나와야만 하기 때문에 그곳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연구자들 간의 자유로운 토론을 위한 공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지리적 제약은 없지만 모델링과 프로그래밍을 통해 실험 결과를 검증하고, 연구를 반복적으로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연구자와 지속적, 효율적으로 소통하려면 머리를 맞대는 논의는 필수적이다.

인도는 계산과학 연구에서 한국보다 큰 장점을 갖고 있는 곳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수한 연구자가 많다는 점이다. 인도는 인구 약 14억3000만 명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고, 공학자를 선호하기 때문에 대학에서 계산과학 분야 대학원생과 연구 성과도 많다. 예를 들면 지난해 계산과학의 중요한 도구인 ‘제1 원리 계산(오직 기본 물리법칙과 상수 및 입자들에 대한 기본적 정보만으로 물질의 모든 물리·화학적 성질을 계산하는 방법)’ 분야에서 출판한 논문 3만3000건 중 40%에 이르는 1만2900건이에 인도계 과학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인도는 IT(정보 기술) 인력도 많아 계산과학에서 필수적인 코딩 전문가 찾기가 어렵지 않다.

이승철 KIST 한·인도협력센터장

우수한 역량을 갖춘 인력은 계산과학 연구에서 우수 성과를 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물리적 실험실 기반의 연구에 강점이 있는 우리나라가 이론과 IT 연구에 강점이 있는 인도와 협력한다면 막대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0년간 낯선 인도에서 지내다 보니 다른 점과 함께 비슷한 점을 관찰하는 안목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다른 점은 이해하고 비슷한 점은 공유한다면,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관계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막연하게 지내왔던 두 나라의 연구자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내가 이곳 인도에 계속해서 머무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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