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반도체법 규제, 中공장 장비 도입 등 변수는 남아
22일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전날 미 상무부가 발표한 반도체법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 세부 규정에 대해 “우리 기업이 중국 내 보유 중인 제조 설비 운영에 차질이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 미국 정부로부터 주요 내용에 대해 사전 브리핑을 받는 등 긴밀히 소통해왔다”고 말했다. 미국의 중국 견제 과정에서 한국의 피해가 일정 부분 불가피하지만, 한국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양국 정부가 적극 협의한 결과라는 것이다.
전날 미 상무부는 향후 10년간 중국 반도체 공장 전체 생산량의 5% 이내 확장(웨이퍼 기준), 기술 개발에 따른 시설 업그레이드 허용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세부 규정을 발표했다. 하지만 미 정부의 중국 제재 기조가 바뀐 것은 아니며 현재 1년간 유예 중인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의 연장 여부도 변수로 남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21일 세부 규정을 발표하면서 “가드레일은 우리가 앞으로 수십년 동안 적(adversaries)보다 한 발 앞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며 대중(對中) 제재 의지를 분명히 했다.
◇”장비 수출 통제 유예, 얼마나 연장해줄지가 관건”
일단 한국이 반도체 가드레일 세부 규정에서 얻은 것은 ‘불확실성의 해소’다. 당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계는 중국 내에서 운용하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공정을 첨단 공정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미 정부에 요청해왔다. 미 정부는 여기에 웨이퍼 투입량을 기준으로 ‘10년간 5% 확장’ 안을 제시하면서도, ‘기술 업그레이드’라는 질(質)적인 문제에 대해선 딱히 문제 삼지 않았다. 국내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어차피 중국 반도체 공장에서 웨이퍼 투입을 늘릴 계획은 없었다”며 “첨단 공정으로 전환해 똑같은 웨이퍼를 투입해 기존보다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해도 문제 삼지 않기로 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여전히 불투명한 부분도 많다. 작년 10월 미 정부가 한국 반도체 기업에 1년간 유예해 준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가 대표적이다. 미국 기업이 16나노 이하 시스템 반도체, 18나노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를 중국에 판매할 경우 허가를 받도록 해 사실상 수출을 금지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엔 1년간 한시적으로 이를 유예해줬다. 이번 보조금 수령 조건에는 ‘기술 업그레이드’ 제한을 두지 않았어도, 별도의 장비 규제가 있는 만큼 유예 기간이 종료되는 올 10월 이후에도 추가 연장이 가능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또 미 정부가 주기적으로 설정하는 제재 기준이 어떻게 바뀔지도 관전 포인트다. 미 상무부 고위 당국자는 21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2년마다 레거시(legacy·구형) 반도체가 무엇을 뜻하는지 다시 정의할 것”이라고 밝혀, 향후 대중(對中) 제한 수준이 더 높아질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은 “상황이 악화된 것은 없지만 큰 차원에서 상황이 변화된 것은 없다”며 “더 이상 중국 사업을 확장하지 말고 다음 세대 기술로 넘어가는 것도 막겠다는 의도를 미 정부가 분명히 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 분위기로는 오는 10월 미 정부가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유예를 연장해줄 것으로 보이지만, 그 기간이 얼마나 될 것인지도 관건”이라고 했다.
◇”첨단 공정 업그레이드 못 하면 경쟁력 크게 후퇴”
대만에서도 “TSMC보다 한국 반도체 기업이 받는 충격이 더 클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2일 대만 차이나타임스는 “TSMC도 1년 유예를 받아놨지만, 미래에도 이 유예 조치가 지속될지는 미지수”라며 “TSMC는 최첨단 라인이 대만에 집중돼 있어 상대적으로 받는 영향이 적지만 삼성,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생산의 절반가량을 중국에서 하기 때문에 선진 공정으로 업그레이드를 못 하면 경쟁력이 크게 후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업계에선 4월 윤석열 대통령 방미(訪美)에서 산적한 문제들이 일부 해소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미 반도체법 실무진이 23일 방한하는 가운데, 정부 관계자는 “미 반도체 지원법과 장비 수출 통제 등 주요 현안이 한국 반도체 업계에 미치는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협의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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