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행동경제학과 의료일원화

최혁용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한의사 2023. 3. 23.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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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혁용 변호사

우리나라의 의학 교육과 의사 면허는 양방과 한방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양한방이라는 용어가 일본식이다 보니 근래 정부는 의, 한의로 표현한다. 1951년 '부산피난국회'에서 제정된 국민의료법이 시작이니 벌써 70년 넘는 세월을 써먹은 제도다. 한방과 양방 각자가 더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독자적으로 발전하여 나름의 방식으로 국민 건강에 기여하라는 의미에서 설계되었다.

문제는 양한방을 배타적으로 구분할 명확한 기준이 없어 갈등이 양산된다는 데 있다. 최근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을 허용하는 대법원의 판결도 결국 기준 설정의 문제다. 소비자의 선택 혼란과 중복이용에 의한 비용 상승 등도 문제다. 무엇보다 큰 손실은 학문의 융복합 발전이 저해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의사가 한약과 침도 쓴다. 그러다 보니 외과 수술 후 장유착 방지 목적으로 대건중탕을 처방한다. 일본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는 한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술하는 외과 의사와 한약을 처방하는 한의사가 한 공간에서 같은 환자를 볼 일이 거의 없다.

의료일원화는 이렇게 이원화된 의료공급의 체계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다. 분리 이원화의 부작용이 너무나 명백하다 보니 수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의료일원화 논의가 이어져 왔다. 의사협회에서 의료일원화위원회를 구성한 것이 50년 전인 1974년이다. 1980년에는 당시 보건사회부 장관이 양한방 일원화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로도 1987년 의사협회의 의료일원화 제안, 1992년 보건사회부의 의료법 개정을 통한 의료일원화 시도 등이 이어졌다. 2010년에는 의사협회장과 한의사협회장이 협력하여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의료일원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2015년과 2018년에는 보건복지부, 의사협회, 대한의학회, 한의사협회, 대한한의학회가 참여하는 협의체가 구성되어 2030년까지 의료일원화를 완수한다는 합의문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특히 2018년 합의문은 당시 의사협회장과 한의사협회장이 보건복지부와 함께하는 별도의 회의를 통해 추가적인 문구의 미세 조정까지 하여 작성되었다. 의사협회 상임이사회의 반대로 결국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합의 이행의 기대가 이례적으로 높아진 시기였다. 당시 필자는 한의사협회장으로서 최대집 의사협회장과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바람직한 합의 방안 마련에 힘을 쏟았다.

이 많은 시도 중에 단 한 번만 성공했더라도 지금쯤 의료일원화는 완성되었을 것이다. 수십 년 세월 동안 보건복지부도 추진했고, 당사자인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도 시도한 정책이라면 의료일원화는 진작에 도입되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강고한 분리 이원화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통의학을 향유하는 다른 나라들, 중국·일본·북한·대만·미국·몽골·베트남 등 그 어디에서도 이처럼 심한 배타적 영역구분과 치열한 갈등 사례는 찾아볼 수가 없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왜 우리는 아직도 제도를 바꾸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양 단체의 헤게모니 경쟁과 의료일원화의 세부 내용에 대한 동상이몽, 집단 내부 이해관계의 상충, 보건복지부의 부족한 정치력 등이 모두 원인으로 작용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경로의존성은 비합리적인 선택을 낳는다. 그리고 이는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의 전망이론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우선 '손실회피(loss aversion)'부터 생각해보자. 손실회피는 얻은 것의 가치보다 잃어버린 것의 가치를 크게 평가하는 것이다. 손실이 이익보다 2배 더 크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제도 변경은 장단점이 있다. 장점과 단점을 종합하여 이해득실을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 이성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내가 잃어버릴 것은 명백한 현실로 보이고 내가 얻을 것은 불확실한 미래로 보인다. 게다가 잃을 게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도 크다. 이들이 소수만 있어도 정책 실행을 방해하는 비토 세력이 되기에 충분한 법이다.

손실회피 성향은 보유효과(endowment effect)로 이어진다. 내가 가진 것이 더 커 보이는 것이다. 의료일원화를 하면 각자의 영역이 허물어지는데 이때 내가 독점하던 영역이 새로 확보되는 도구의 가치보다 더 커 보이는 현상이다. 가진 것만 계속 챙기려는 심리로 인해 득실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된다. 손실에 대한 두려움, 즉 남 주기 아깝다는 심리가 바로 보유효과의 핵심 요인이다.

현상유지편향(status quo bias)도 한몫한다. 제도는 변화를 동반하고 모든 변화는 현상유지편향에 기인하는 저항을 받는다. 사람들은 이처럼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원치 않는다. 변화를 시도했다가 손해봤을 때의 후회가 현상태를 유지했다가 손해봤을 때의 그것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매몰비용효과(sunk cost effect), 심리적 계약효과(psychological contract effect)나 불만족 탐색편향(negative information bias) 등으로 인해 기존 학문과 문화를 지속하는 선택성향이 강화되기도 할 것이다.

행동경제학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이러한 심리적·사회적 요소로 인해 발생하는 오류와 편향을 잘 분석하고 해결하여 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함이다.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감정의 방해에서 벗어나 최적의 의사결정에 도달하자는 의미다. 대한민국은 의료일원화의 길로 가야 한다.

최혁용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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