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조성진 “1년 연주 100회...만족한 적 많지 않아”[종합]

김한나 기자 2023. 3. 22.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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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방송 캡처



‘유 퀴즈 온 더 블럭’ 이지선, 이도현, 조성진이 이야기를 전했다.

22일 오후 방송된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lucky, happy, enjoy’ 특집으로 이지선, 이도현, 조성진이 출연했다.

이날 ‘지선아 사랑해’의 주인공 이지선 교수는 평범한 23세 대학생 때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 55% 화상을 입은 후 23년 만에 모교의 교수로 돌아왔다.

이지선 교수는 TV 뉴스에서도 많이 따라와 찍어줬다며 “23세에 학교를 떠났는데 23년 만에 교수로 돌아왔다. 라임이 쩔어가지고”라고 말해 웃음 짓게 했다.

23세의 자신은 어떤 학생이었냐는 물음에 그는 “남들이 봤을 때는 아주 밝고. 친구들이 중간중간 혼자 노래도 했다고 말했다. 정신 나간 애였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름의 고민은 참 많았다”라고 회상했다.

당시 사고에 관해 이지선 교수는 친오빠가 옆 학교에 다녀 차를 함께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빨간불에 차를 세우고 일상적인 대화를 하던 중에 음주 운전자가 사고를 내고 도망가다가 오빠 차를 들이받게 된다.

차에서 불이 나기 시작하면서 뒷좌석에 있던 이지선 교수의 몸에 먼저 불이 붙었고 오빠가 그를 차에서 꺼내다 화상을 입고 티셔츠를 벗어 불을 꺼준 뒤 응급실에 가게 됐다.

가해자는 혈중알코올농도 0.33%의 만취 상태였고 이지선 교수는 “그때 저는 기억이 거의 없다. 오빠한테 들은 얘기로는 의사분들이 동생이 화상이 문제가 아니다, 맥박도 안 잡히니 곧 갈 것 같다, 작별 인사하라고 했다. 오빠가 좋은 동생이었다, 잘 가라고 했는데 아직 안 가고 이렇게. 인사는 받았지만 잘 살아있다”라고 말해 웃음 짓게 했다.

며칠간 기억이 없었던 이지선 교수는 사고 10일째 첫 수술을 하게 됐다며 “상한 피부를 걷어내는 수술이었다. 보통 수술을 받으면 나아질 거라 기대했는데 상한 피부를 걷어내니 고통이 살아나 통증이 어마어마했다. 감염을 막아야 하니 소독을 받아야 했고 지옥에서나 들릴 법한 소리가 이런 소리일까?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머리 뒤가 찢어졌던 이지선 교수는 실밥을 뽑기 위해 앉았고 그때 처음 화상 부위를 보게 됐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 본 장면이었다. 다리에 살색이라고 부르는 피부가 없는 상태를 보게 됐고 살 수 없는 상황이구나. 그때 직감했다. 옆에 환자분들이 돌아가시는 걸 계속 봐왔기 때문에 엄마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자고 했다”라며 살과 피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밥을 자신에게 먹여주는 엄마를 보고 그는 살아서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tvN 방송 캡처



가해자가 찾아오면 용서했다고 말해달라 했던 이지선 교수는 “제게 닥친 고통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누군가를 미워하고 분노하는 감정도 견디기 어렵다. 그것만큼은 피할 수 있도록 신의 배려가 아니었을까”라고 말했다.

그렇게 가해자는 이지선 교수를 찾지 않고 법의 처벌을 받았다. 그는 “직접 만났다면 잊을 수 있었을까?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잊고 살았다. 이런 질문받을 때 ‘그래 가해자가 있었지’ 이런 느낌이다. 그 부분만큼은 잊어버리고 제가 살아남는 것에 집중할 힘을 모을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사고 7개월 후 퇴원한 이지선 교수는 수술을 받으면 원래 상태로 돌아갈 줄 알았다. 피부는 갖게 되었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모습을 마주했던 그는 새로운 자신을 받아들이는 어려운 과정이 시작됐다.

이지선 교수는 자신의 모습을 부정했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빛을 보고 거울 앞에 용기를 내서 서게 됐고 ‘안녕 이지선?’이라고 인사하며 새로운 모습과 친해져 가는 시간을 보냈다.

올해부터 모교 이화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지선 교수는 일상을 묻자 “연구 열심히 해야 한다. 승진하려면 열심히 해야 한다”라며 머리를 감싸 쥐어 웃음 짓게 했다.

얼마 전에도 수술을 받았던 그는 사람들의 의혹을 받았고 “상처의 수축하는 경향 때문에 피부 면적이 부족한 상태다. 눈도 감고 손목도 쓸 수 있는, 조금 더 편하게 살기 위해 피부 이식 수술을 받은 거다”라고 해명했다.

2000년 7월 30일은 이지선 교수가 새로 태어난 날이다. 그는 “그날이 두 번째 생일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저도 잊어버린다. 오빠는 그날 아침이면 살아남아줘서 고맙고 잘 살아가줘서 너무 자랑스럽다고 메시지를 보낸다”라고 말했다.

사고를 당했다고 말할 때마다 음주운전 교통사고의 피해자라고 설명하는 기분을 느낀 이지선 교수는 “피해자로 살고 싶지 않았다. 돌아보니 마냥 피해자로만 살지 않았다. 잃은 것도 많았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 말을 바꾸자. ‘사로를 만났다’라고 했다. 불행을 만났을 때 자기 자신에게 다시 쓰기 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라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밝힌 그는 “어려운 일들이 꿈에서조차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들이 일상 속에서 일어난다. 그 일과 잘 헤어질 수 있다. 지금 당장의 상황은 암울하고 절망적일지라도 우리 인생은 결고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꽤 괜찮은 해피엔딩. 동화 같은 해피엔딩은 아닐지라도 꽤 괜찮은 해피엔딩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 희망의 힘이다. 그 힘으로 하루를 살아나가다 보면 그날이 올 것이다. 의구심이 드는 나이 오시면 저를 떠올려주시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그는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고 내 인생도 꽤 괜찮다는 마음을 가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tvN 방송 캡처



‘더 글로리’ 시즌 1에 나온 정성일에 이어 시즌 2로 이도현이 출연했다. 유재석은 “오래전부터 섭외를 했다. 올해 가장 바쁜 배우가 이도현 씨 아닐까 할 정도로 20대 남자 배우 중 캐스팅 1순위 아닙니까? 들어오는 대본만 수십 편이라던데”라고 물었다.

이에 이도현은 “많이 들어오긴 하는데”라고 멋쩍게 웃었다. 캐스팅 제안을 받았을 때 이도현은 김은숙 작가님 작품을 감히 해도 되나 생각했다며 “작가님을 만나러 갓을 때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작가님이 ‘망하더라고 나랑 같이 망하는 게 나을 거야. 내 작품으로 망하는 게 나아’라고 했다”라며 고민 많았던 그는 자신감을 얻었다.

송혜교와 호흡한 이도현은 피해를 끼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뭘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벽하게 신을 만들어줬다며 “대단하신 것 같아요”라고 엄지를 들어 올렸다.

문동은, 하도영 대국 신 패러디를 봤다고 말한 이도현에 유재석은 “조동은 때문에 그날 화가 많이 났다”라고 분노했다.

그는 “제 안경 벗은 모습을 도영 씨하고 비교했는데 이제 반대로 도영 씨한테 안경을 씌워서. 유 부장님으로 많이 돌더라”라고 말했다.

조동은을 만나는 장면을 촬영하던 이도현은 참 입 맞추지 못하고 아찔함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두 번째 촬영에서 이도현은 “이번에 키스하시죠. 들어오세요. 넌 할 수 있어”라고 마음을 다스렸고 조동은과 입술이 살짝 닿은 키스신을 완성했다.

배우 활동 7년 차 이도현은 연기가 아닌 원래 농구 선수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중학생 시절 고양시 대표 농구 선수였던 이도현은 당시 친구들과 지금까지도 랍스터라는 이름으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농구 선수를 하고 싶었던 이도현이지만 야구 선수를 잠깐 하셨던 아버지는 그가 운동선수의 길을 가지 않기를 바랐다.

무엇을 할지 방황하던 이도현은 영화 ‘해바라기’에 꽂혔다며 명대사를 따라 했지만 한석규 향기를 풍겨 웃음 짓게 했다.

아버지는 연기를 반대했지만 어머니는 하던 일을 더 늘려 이도현을 연기학원으로 보냈다. 입시에서 1차로 붙은 학교가 없어 떨어진 이도현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재수를 했고 중앙대학교 연극 영화과에 입학했다.

과대표에 농구까지 잘하기로 유명했던 이도현은 인기 많았을 거 같다는 말에 “동기들이 저를 굉장히 싫어했을 겁니다. 선배님들한테 동기들이 잘못하면 제가 혼난다. 참다 참다 터져서 강의실에 동기들끼리 모여서 얘기했다. 충격을 줘야겠다 싶어 주먹으로 칠판을 세게 쳤다. 빵 치면 소리가 크고 칠판이 떨어지면서 내가 무서워 보일 거라 생각했다. 칠판이 못이 박혀 있어 안 떨어지고 손이 너무 아팠다. 화난 뒷모습을 보여줬는데 다른 동기 애들이 무서웠나 보더라. 이런 험악한 분위기 너무 싫어 오빠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tvN 방송 캡처



‘더 글로리’에서 차 핸들을 치면서 오열하는 장면에서 친구들은 이도현에게 ‘칠판 치듯이 치네’라고 놀렸다. 유재석은 많이 설쳤다고 말했고 이도현은 “별명이 깝죽거리는 동현이라고 해서 깝동이었다”라고 밝혔다.

‘호텔 델루나’부터 ‘18어게인’ ‘스위트홈’ 등으로 주목받는 신인으로 떠오른 이도현은 지인들에게 조금이라도 거만해 보이면 뺨을 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이런 얘기를 하면 안 된다. 시도 때도 없이 때린다. 일단 맞고 ‘거만해졌어’라고 한다. 저는 아직까지도 초심을 지키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인생작으로 꼽치는 ‘오월의 청춘’에서 이도현은 당시를 살았고 지금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촬영했고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너무 이상했다. 내가 최우수적인 연기를 한 건가? 과분한 상이었다. 감사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당시 발달장애 동생을 언급하며 울컥한 모습을 보였던 이도현은 “동생이 친구가 없다 보니 부모님께서 돌봐야 하는 상황이다. 제가 친구가 되어줘야 하는데 촬영 때문에 그러지 못할 때가 많다. 이번 촬영이 끝나면 오래 놀아주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귀엽고 고집세고, 먹는 걸 좋아하고 거짓말을 못하는 순수한 아이라고 동생을 소개한 이도현은 “많이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전했다.

수면 시간이 네 시간 정도일 만큼 일을 많이 한 부모님에 이도현은 죄송함을 느꼈다. 20년을 한집에서 살았던 이도현은 그 집을 벗어나 큰 전셋집을 마련해 어머님을 눈물짓게 했다.

그는 “원래 되게 좁은 집이었는데 갑자기 넓어져서 공간도 휑했다. 창문이 커져서 너무 좋고 환기가 잘 돼서 엄마가 힘들어하시지를 않는다. 얼굴이 좀 폈다”라고 뿌듯해했다.

송금할 때 신기했다고 말한 이도현은 “촬영 중간에 전세금을 입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혼자서 비 오는데 은행에 갔다. 큰돈이라 손이 떨렸다”라고 회상했다.

혼자 일하는 게 목표인 그는 “부모님께 내 수입으로만 생활해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빚도 다 갚았는데 일을 그만두시지 않더라. 부모님은 제 인생을 살게 해 주셨고 덕분에 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런데 부모님은 저 때문에 본인들 인생을 못 사셨다. 각자 인생을 즐겼으면 좋겠다”라며 가족들에게 자주 찾아뵈지 못해 죄송하다며 건강 걱정하면서 행복하게 남은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전했다.

tvN 방송 캡처



촬영장에 그랜드가 등장하자 유재석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사실 한번 뵐 수 있을까 했는데 오늘 이렇게 뵙게 된다. 걱정이 저희가 클래식 이런 쪽에 취약하다. 왈츠를 발새로 읽어서”라고 걱정했다.

조세호는 쇼팽을 못 읽었고 유재석이 왈츠를 발새로 읽었다고 발뺌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2015년 쇼팽 국제 콩쿠르 우승자로 한국인 최초, 아시아인으로 세 번째다. 첫 예능 출연을 어떻게 결심했냐는 물음에 그는 “제가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민폐가 될까 봐 안 했다. 이 프로그램은 재미없어도 된다고 했고 어머니가 좋아하신다. 어머니가 조세호 선생님 좋아하셔서”라고 말했다.

조세호 씨, 유재석 씨라고 하면 된다는 말에 조성진은 “멋있으세요”라고 말했고 창녕 조세호는 한양 조 씨라는 그의 말에 실망했다.

과거 ‘유퀴즈’ 퀴즈에서도 이종렬 조율사 편에서도 등장했던 조성진은 “선생님 나온 편은 봤다”라며 유재석 ‘발새’에 관해 “신선했다”라고 말해 웃음 짓게 했다.

숱한 도시를 오가는 연주자의 삶에 조성진은 “저는 1년에 100번 정도 연주한다. 적게, 4~50번 하시는 분들도 있다. 저는 체력이 될 때 더 많이 경험해보고 싶어서 100번 정도하고 있다. 그래서 공항이랑 호텔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오랜만에 온 한국에 그는 며칠 전부터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를 메모장에 써놓는다며 유일한 취미가 먹는 거라고 말했다.

유재석은 조성진과 손바닥을 대보며 손바닥은 자신이 큰데 손가락 길이가 훨씬 길다고 감탄했다. 도부터 솔까지 닿는다고 말한 조성진은 손가락이 길면 유리하지 않냐는 물음에 “모르겠다. 짧아 본 적이 없어서”라고 솔직하게 말해 폭소케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예술의 전당 영재 아카데미에 입학한 조성진은 중학교 3학년 때 하마마츠 구제 피아노 콩쿠르에 아시아인 최초로 1위를 했다.

부담이 없었냐는 물음에 그는 “연주를 많이 한다고 긴장이 덜 되고 그런 게 아닌 거 같다. 하면 할수록 더 긴장되고 어렸을 때 오히려 겁 없이 잘할 수 있었던 거 같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세계적인 그도 공연 전 떨리냐는 유재석에 조성진은 “매번 떨린다. 너무 당연하게. 무대에서는 집에서 혼자 연습하는 거랑 다르다.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그 긴장감에 적응된 거?”라고 설명했다.

쇼팽에 관해 이야기하던 유재석은 쇼팽을 ‘쇼핑’이라고 말실수했고 “죄송합니다. 클래식 문외한이다 보니 쇼팽 님께, 쇼팽을 사랑하시는 많은 분께 죄송하다”라며 머쓱해했다.

tvN 방송 캡처



조세호는 쇼팽 국제 콩쿠르에 “16강, 8강, 4강 이렇게”라고 물었고 조성진은 조용히 웃음을 터트렸다. 유재석은 “클래식에 관해 잘 모른다. 성진 씨 미안해요. 양복만 입고 있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DVD를 콩쿠르 1년 전 정도에 한 500명 정도가 낸다며 160명 정도를 뽑고 4월에 바르샤바에서 예선을 치렀다고 말한 조성진은 80명을 뽑고 6개월 뒤 4차까지 치른다고 설명했다.

쇼팽 콩쿠르 영상에서 조성진은 콘체르토가 어떤 곡이냐는 조세호에 “꽁께르또. 콘체르토. 그때 꽁께르또라고 하신 것 같은데”라며 과거 조세호를 언급했다.

그는 “쇼팽 콩쿠르에서 친 곡들이 어렸을 때부터 친 곡이 많다. 제 몸에, 손에 배어있는 곡들이다”라며 미스터치가 없지 않았냐는 물음에 “있었다. 미스 터치는 매번 나온다. 음이 너무 많으니까. 그래도 그게 목적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음악이 먼저 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조성진은 “음 하나하나보다는 좀 더 큰 그림을 보려고 한다. 클라이맥스가 어디인지, 큰 그림이 보이게 연주하려 한다. 모든 음악에는 클라이맥스가 존재하기 때문에 계속 모든 부분을 아름답게만 표현하면 중요한 순간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할 것 같다. 특별하게 살리고 싶은 부분을 아낀다고 해야 하나요? 그게 클래식의 매력 같다”라고 전했다.

쇼팽 콩쿠르 채점표에 조성진은 1점을 준 심사위원에 “그런 의견도 있다고 받아들였다. 만약 그분 때문에 2등 했으면 화가 났겠지만 1등 했으니까”라고 대인배 면모를 보였다.

우승 당시 그는 “친구들한테 연락이 왔다. 사람들이 다 제 음악을 듣는다고 하는데 저는 실감을 못했다. 1월 말에 강남역을 갔다. 보쌈집에 갔는데 갑자기 전이 서비스가 나왔다”라고 말해 웃음 짓게 했다.

조성진은 “부모님께 한국 나이로 스물여덟, 아홉까지는 해보겠다. 그때까지 어떤 성과나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과감하게 음악을 접겠다고 했다. 쇼팽 콩쿠르 끝나고는 ‘이 길이 내 길이구나’ 생각하게 됐다. 콩쿠르 우승한 다음부터가 시작이다. 나는 이제 막 태어난 사람이구나. 음악계 신생아고 가야 할 길이 너무 멀다. 어떻게 하면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오래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라고 말했다.

tvN 방송 캡처



2022년 뉴욕 카네기 홀에서 빈 필하모닉과 대타로 협연을 하게 된 조성진은 “러시아 전쟁으로 러시아 솔리스트가 연주를 못하게 돼서 공연 24시간 전 대타 제안이 왔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 프로그램이었는데 마지막으로 그곡을 연주한 게 2019년 12월이었다.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하고 집에서 30분 정도 쳐봤다. 2년 반 정도만인데 엉망이었다. 하지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래서 하겠다고 하고 밤새 연습할 수 있는 장소를 구했는데 호텔 로비였다. 꽤 시끄러운 분위기였는데 새벽 4시정도까지 연습하고 계속 쳤다. 그러고 짐 싸서 뉴욕으로 갔다”라고 말했다.

연주할 땐 무아지경으로 했지만 조성진은 연주가 끝나고 야닉 지휘자와 포옹할 때 안도감과 말도 안 되는 감정에 울컥했다.

그는 호텔에 돌아왔을 때 코피가 났다고 웃음을 터트렸다. 천재-신동-영재 수식어가 붙은 조성진이지만 지독한 노력파다.

연주 중 휴대전화 소리가 들리면 집중이 흔들리긴 한다고 말한 조성진은 “코 고는 소리도 가끔 들린다. 이해하긴 하지만 코 고는 소리가 제일 거슬리긴 한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손 관리법을 묻자 그는 “안 하는 게 꽤 많다. 공 관련 스포츠는 다 안 한고 요리도 잘 안 하려고 한다. 요즘은 연주 많이 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거 좋아한다. 드라마, 유튜브 보고 기운 나면 연습하고 단순한 삶이다”라고 밝혔다.

해보고 싶은 것을 묻자 그는 “취미로 뭘 할까 생각하는 게 취미다. 고민하다 보면 투어 떠날 채비를 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없다. 그래서 먹는 게 유일한 취미가 된 것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조성진은 항상 음악 생각만 하니 직업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며 “음악이 삶의 전부가 되면 안 된다, 즐기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냥 저는 음악 할 때가 제일 좋고 연주하고 관객들 하고 나누는 게 좋아서 거의 전부인 것 같다. 음악 외에 열정을 쏟을 만한 좋아하는 걸 못찾았다”라고 밝혔다.

8년 정도 제대로 연주 생활을 해봤다고 말한 그는 “쉽지 않다. 7~800번 연주해보지 않았을까요? 정말 만족한 연주는 10번도 안 될 수 있을 거 같다. 그 횟수를 더 늘리고 싶은 게 제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매주 수요일 오후 8시 40분에 방송된다.

김한나 온라인기자 klavie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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