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로 열어둔’ 미 반도체법 세부안…국내 업체, 최악은 피했다
향후 10년간 중국 웨이퍼 투입량
5% 이상 확장 못하는 게 핵심
삼성·SK, 당장 중국 철수는 면해
급한 불 껐지만 중국 리스크 여전
‘첨단 반도체 기준’ 상향 협상 필요
“당장 중국에서 공장을 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지만….”
미국 상무부가 21일(현지시간) 공개한 반도체지원법 ‘가드레일(안전장치)’ 세부 규정안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업체들은 일단은 안도하는 모습이다. 이번 세부 규정은 향후 10년 동안 중국 공장의 웨이퍼 투입량을 5%(첨단 반도체 기준) 이상 확장하지 못하도록 한 게 핵심이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보조금을 받으면서도 중국 공장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다만 장기적으로 중국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은 해소되지 않았다는 게 업계 평가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중국에서 시안 공장(128단 낸드플래시)을, SK하이닉스는 우시 공장(10나노 중후반대 D램)과 다롄 공장(96·144단 낸드플래시)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의 중국 생산 비중은 약 30~40% 수준으로, 상당수가 중국에 조립공장을 둔 다국적기업에 공급되거나 중국 내수용으로 팔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메모리는 최신이 아닌 범용 반도체이다. 하지만 미 상무부의 가드레일은 96단 낸드플래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메모리를 높은 수준의 규제가 필요한 ‘첨단 반도체’로 분류했다.
그나마 미 상무부가 웨이퍼 투입량을 10년간 5% 이내까지 확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한국 기업들의 중국 공장이 갑자기 폐쇄될 경우 메모리 가격이 뛰는 등 공급망 불확실성을 높이고, 인력 등 공정 노하우가 중국으로 빠져나갈 가능성 등을 고려한 조치로 분석된다.
또한 웨이퍼 투입량(생산능력)만 규제하고, 칩 생산량은 직접 제한하지 않으면서 기술 개발을 통해 공정 일부를 상향 조정하거나, 수율 개선 방식으로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길도 열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문헌상으로만 보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 설비 일부를 좀 더 선단(첨단) 수준으로 바꿔도 웨이퍼 투입량에만 변화가 없으면 규제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기술적 업그레이드 가능성을 열어놓았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반입 자체를 규제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장비 규제에 대해 1년 유예 조치를 받아 올해 10월까지는 중국 공장에 첨단 장비를 들일 수 있지만, 이후에는 장비 조달 등이 불투명한 실정이다.
업계에서도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퇴로를 열어줄 테니 10년 안에 중국에서 철수하라’는 의도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중국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는 곤란한 선택지다. 삼성전자 시안 공장이 속한 ‘삼성중국반도체(SCS)’의 자산은 지난해 기준 17조원으로, 미국 오스틴 공장(SAS·9조3000억원)의 2배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 중국 공장 철수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라며 “10년 후에도 미국과 중국이 지금처럼 으르렁거린다고 단언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일단 중국 공장 철수라는 급한 불은 껐으니 향후 미·중 상황을 보면서 대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미국의 ‘첨단 반도체 기준’을 상향 조정하는 방향으로 추가 협상을 이어가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첨단 반도체로 분류한 128단 낸드와 10나노 중반대 D램은 이미 범용 공정인 만큼 수년이 지나면 이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첨단 반도체 기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협상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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