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도시서 3일 정전이라니… 믿기 힘든 실리콘밸리 ‘원시생활’ [특파원 리포트]

김성민 실리콘밸리 특파원 2023. 3. 22.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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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도 생각 못 했다. 첨단 테크 기업이 몰려 있는 미 실리콘밸리에 대규모 정전이 발생해 3일간 손전등을 켜고 ‘원시생활’을 할 줄을 말이다.

2023년 3월 13일 월요일 캘리포니아주 월넛 크릭에서 폭풍우를 앞둔 먹구름이 서쪽에서 다가오고 있다./AP 연합뉴스

지난 14일(현지 시각) 미 캘리포니아에 돌풍을 동반한 비가 쏟아졌다. 나무가 쓰러지고, 송전 시설이 고장 나면서 실리콘밸리 중심지인 새너제이를 비롯해 팰로알토, 애플 본사가 있는 쿠퍼티노, 구글 본사가 있는 마운틴뷰 등에 전기가 끊겼다. 기자가 사는 마운틴뷰 옆 동네 로스알토스엔 전기뿐만 아니라 통신까지 끊겼다. 거리의 신호등은 꺼졌고 도서관과 대형 마트도 문을 닫았다. 일부 학교는 휴교했다. 이날 정전은 실리콘밸리 30만 가구에 영향을 미쳤다.

전기가 끊기니 생활이 쉽지 않았다. 해가 지면 집은 금세 어두워졌고, 보일러는 들어오지 않았다. 작은 빛이라도 얻기 위해 배터리로 작동하는 자그마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다시 켰다. 전기는 실리콘밸리 여러 지역에 걸쳐 순차적으로 복구됐고, 기자의 집은 정전이 발생한 지 58시간이 지난 16일 밤 10시(현지 시각)가 돼서야 겨우 불이 들어왔다. 2년 특파원 생활 중 잠깐 전기가 끊긴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이번처럼 긴 정전은 처음이었다.

이번 대규모 정전과 통신 두절은 기후변화 탓이라고 한다. 연중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지역으로 알려진 미 캘리포니아는 올해 유난히 폭풍우에 시달리고 있다. 작년 말부터 캘리포니아에 닥친 폭풍우는 11개. 20년간 실리콘밸리에서 거주한 한인은 “이런 날씨는 처음”이라고 했다. 마트에서는 그간 안 팔던 우산을 팔기 시작했고, 의류 매장에도 예전엔 보기 어려웠던 두꺼운 외투가 걸리고 있다.

한편 실리콘밸리가 대규모 정전을 겪은 며칠 동안 AI(인공지능) 분야에선 놀랄 만한 소식이 줄지어 나왔다. 오픈AI가 “인간에 못지않은 성능을 낸다”며 새로운 AI 모델 GPT-4를 공개했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메일을 대신 써주고, 핵심 단어만 제시하면 글 초안을 써주는 AI 기능을 소개했다. “최근 10년간 AI 분야에서의 가장 역사적인 일주일”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전기가 들어오는 옆 동네 도서관에서 스마트폰을 충전하며 해당 소식을 접하니 “아이러니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기후변화 앞에선 첨단 테크도 부질없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수많은 테크 기업들이 기술로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 온실가스를 포집하는 탈탄소 기술이 대표적이다. AI가 발전하면 기후변화를 줄이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충분치 않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는 갈수록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 아찔하게 느껴질 만큼 빠른 AI의 발전 속도만큼 기후변화도 하루가 다르게 우리의 삶을 덮치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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