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대하는 예술가의 자세…‘정형화된 틀 깨는’ 두민 작가

송상호 기자 2023. 3. 2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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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민作 'Variation-Enjoy the Moment'. 작가 제공

 

지난해 8월,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서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우승을 차지해 논란의 중심이 됐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빠른 속도로 발전해 인간의 손으로 구현해낸 그림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지금, 최근 미술계를 수놓는 화두인 ‘인공지능’을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가 있다. 바로 2019년 세계 최초로 AI와 인간의 협업 사례를 선보였던 두민 작가다.

그의 고향은 구상미술의 메카인 대구다. 구상화가였던 아버지의 영향 덕에 어릴 적부터 사실적인 재현을 자연스럽게 여겨왔기에, 그는 지난 20여 년간 하이퍼 리얼리즘 주위를 맴돌았다. 이렇게 쌓아가던 그의 작품 세계는 인공지능과 만나면서 본격적인 변혁의 시기를 맞게 된다. 작가는 2019년 AI와 인간이 협업으로 빚어낸 세계 최초의 작품 ‘Commune with…’ 을 통해 주목을 받았다. 캔버스를 절반으로 나누는 해수면에 맞춰 윗부분에는 두민 작가가 유화로 그려낸 독도, 아랫부분엔 인공지능 ‘이매진AI’가 동양화 기법으로 표현한 수면에 비친 독도의 형상이 자리한다. 이후 작가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인간의 그림과 인공지능의 프린팅을 결합해 ‘Commune with...수원화성’ 등을 그렸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미드저니’를 활용한 작업, 매체를 넘나들면서 동시대 트렌드를 이끄는 기업 및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작가들과 협업과 교류도 역시 이어오고 있다.

그는 2008년부터 2021년까지 양주에 있는 가나 장흥 아틀리에에 머물렀지만, 공간의 변화를 줘야 하는 시점이라고 느껴 레지던시에서 나와 독립 이후 새로운 작업에 매달렸다. 지난 7일 안양 온유갤러리에서 개막해 25일까지 이어지는 개인전 ‘The Variation’은 그를 둘러싼 공간이 바뀐 후 내놓은 첫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극사실주의에서 시작한 작가의 여정이 인공지능과의 협업, 다양한 매체와 상황 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으면서 어떤 방식으로 변화해왔는지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중요한 자리다.

두민 작가(오른쪽)가 지난 21일 오후 안양 온유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 'The Variation'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벽에 걸린 ‘Interaction-POINT’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송상호기자

전시장에선 구상에서 추상으로 이동하는 작가의 관심사, 내면, 생각과 철학이 그대로 엿보인다. 초창기 그가 그려왔던 수면에 떨어지는 주사위는 이제 형태, 색,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매개체가 되면서 작가의 정체성을 환기하고 있다. 그림을 유심히 살피면 대상, 경계, 대상이 반영된 모습들이 함께 보인다. 기존에 쓰던 캔버스 천을 뒤집어 그리거나 캔버스의 표면을 찢고, 기존에 다뤘던 주사위의 형태에 변화를 주고, 예전에 그렸던 작품을 다시 가공하는 과정이 모두 이번 전시의 메인 테마인 ‘변주’와 직결된다. ‘Variation’은 주사위의 그림자와 이동 궤적를 캔버스 전면에 내세운 뒤 그 캔버스 아래에 13년 전에 그렸던 주사위를 인공지능으로 복원한 뒤 피그먼트 프린팅한 결과물을 배치해 작가가 가닿고자 하는 회화의 본질을 보여준다.

두민 작가가 지난 21일 오후 안양 온유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 'The Variation'에서 벽에 걸린 ‘Variation’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송상호기자

21일 오후 같은 장소 메인 전시실에서 ‘AI시대의 현대미술’이라는 주제로 열린 강좌 및 아티스트 토크는 4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작가의 생각과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날 강의를 통해 “다가오는 세상에서 대상을 똑같이 재현하는 작품의 생산은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의 영역”이라며 “이제 현대미술은 작가 한 사람만 있어서는 성립될 수 없고 다양한 방식의 협업이 곧 본질과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끊임없이 작가로서 변하고 싶은 욕망이 반영된 결과다. “늘 같은 걸 그리고 과거를 답습하는 건 앞으로 인공지능이 태동한 현 시대에선 필요 없어요. 인공지능과의 협업이 제게 큰 영향을 미친 셈이죠.”

끝으로 두민 작가는 “창작자는 동시대의 삶, 기술 철학, 문화를 작품에 녹여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단순히 그림이 잘 팔리는 작가이기보다는 어떠한 환경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창조적인 가치를 지닌 작가로 남고 싶다”고 웃어 보였다.

송상호 기자 ss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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