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우주선 지구호’와 욕심꾸러기 선원

남종영 입력 2023. 3. 22. 18:50 수정 2023. 3. 2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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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 지구호는 은하계를 항해하는 평화로운 여행자였다.

언젠가부터 선원들 사이에서 욕심과 남용, 무책임이 자랐고 우주선은 넘치는 쓰레기로 고장 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욕심꾸러기 선원은 누구일까?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다.

우주선 지구호의 다른 선원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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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1968년 미 항공우주국(NASA) 아폴로 8호가 달에서 찍은 지구. ‘우주선 지구호’는 한정된 자원으로 살아가는 운명 공동체인 지구와 지구인을 빗댄 말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인간의 그늘에서] 남종영 | 기후변화팀 기자

우주선 지구호는 은하계를 항해하는 평화로운 여행자였다. 언젠가부터 선원들 사이에서 욕심과 남용, 무책임이 자랐고 우주선은 넘치는 쓰레기로 고장 나기 시작했다. 선원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이대로라면 우주선 지구호는 우주의 미아가 되어버리고 말 겁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갈지도 몰라요!”

“자,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때요? 앞으로 5년 뒤 각자의 쓰레기 배출량을 0까지 줄이는 거로 합시다.”

“과학자들도 그게 유일한 살길이라고 합니다. 찬성입니다.”

그렇게 약속한 선원들은 매년 쓰레기를 차근차근 줄여 5년 뒤 0으로 만드는 행동에 돌입했다. 50이었던 배출량을 이듬해 40으로 줄이고, 그 다음해에는 30… 20… 10… 드디어 0.

하지만 여전히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쓰고 싶은 욕심꾸러기 선원이 있었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무언가 발견했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5년 뒤에 0으로만 맞추면 되는 거잖아!’

그는 쓰레기 연간 감축 계획을 이렇게 정했다. 50, 50, 50, 50, 50 그리고 0.

다른 선원들이 150 버리는 동안 250을 버리겠다는 계획을 세운 그가 말했다. “약속만 지키면 되잖아!”

여기서 욕심꾸러기 선원은 누구일까?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다.

21일 정부가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국제사회에 약속한 ‘2050년 탄소중립’과 ‘2030년 온실가스 40% 감축’(2018년 대비) 목표를 지키기 위한 연도별∙부문별 감축 계획이 처음 제시됐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순 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다. 2050년 각국이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그나마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 상승치를 1.5도로 잡아내면서, 지구 시스템이 가까스로 균형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게 과학자들의 분석이다. 그래서 각국은 석탄∙가스 등 화력발전을 풍력∙태양열 등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내연기관 차량 판매를 금지하고 전기차를 확대하는 한편, 건물을 친환경적으로 설계하고, 동물성 식품 섭취와 쓰레기를 줄이고 있다.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항해하는 우주선 지구호를 고칠 수 있는 마지막 10년을 그렇게 통과하는 중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우주선을 고치는 데 진정으로 협력할 뜻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2024~27년 연평균 2% 거북이 속도로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시키다가, 2028년부터 급발진해 9% 넘는 속도로 줄이겠단다. 그런 식으로라도 ‘2030년 40% 감축 목표’만 달성하면 되지 않냐는 건데, 우화 속 욕심꾸러기 선원과 다를 바 없다. 나중에 확 줄이는 방식은 차근차근 감소시키는 방식보다 전체 배출량이 많을 수밖에 없고, 현실성도 떨어진다. 21일 발표를 보며 ‘2030년 약속을 지키긴 이미 글렀구나!’ 싶었던 이유다.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을 막판에 확 줄인다며 제시한 방법은 ‘국제 감축’과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이다. 국제 감축은 외국에서 벌인 온실가스 감축을 국내에서 인정받겠다는 것인데, 인도네시아나 인도 같은 나라는 자국의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감축 실적 해외이전을 금지하기로 했다.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기술도 대규모로 상용화될 정도로 무르익지 않았다. 이런 기술로 7년 뒤까지 1700만톤을 흡수하겠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이번 계획은 “탄소중립 포기 선언”이라는 환경단체의 질타가 틀린 말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환경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환경부는 녹색분류체계에 원자력발전을 포함하고,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과 제주 제2공항을 허가하는 등 불과 몇년 전 내렸던 결정을 이유 없이 뒤집고 있다. 지금 당장 돈 벌어 배불리 먹는 게 우선이라는 근시안에 사로잡혀 있다. 반면에 장기적인 시각으로 미래를 차근차근 준비하는 나라가 많다. 유럽연합은 탄소국경제도(CBAM)를 도입해, 상품 생산 과정에서 적정한 탄소가격을 반영하지 않고 기후위기를 심화시킨 욕심꾸러기 선원들을 골라내려고 한다. 이러다 약삭빠른 무임승차자 또는 거짓말쟁이가 되는 건 아닐까. 우주선 지구호의 다른 선원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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