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이 꺼낸 ‘독·프’ ‘중·일’ 화해···한·일관계 정상화와는 다르다[팩트체크]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국무회의에서 주도적이고 전향적인 한·일관계 개선을 주장하며 1960년대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 1972년 중국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사례를 들었다. 하지만 전쟁 가해국이었던 독일은 과거사와 관련해 프랑스에 진정성을 갖고 일관되게 사과했고, 일본도 중국에 전쟁 책임을 반성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현재 한·일관계에 대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독일은 계속된 사과와 청산, 일본은 외면
윤 대통령은 “한·일 양국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가장 가깝게 교류해 온 숙명의 이웃 관계”라며 “독일과 프랑스도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키면서 적으로 맞서다가 전후에 전격적으로 화해하고 이제는 유럽에서 가장 가깝게 협력하는 이웃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일관계도 이제 과거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대전 이전부터 유럽 대륙의 패권을 놓고 경쟁해왔던 프랑스와 독일은 1963년 ‘엘리제 조약’을 체결하며 공식 화해했다. 당시 콘라트 아데나워 서독 총리가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을 방문해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과 우호조약을 맺은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 속에서 국경을 맞댄 양국의 경제·안보상 교류·협력 필요가 컸다는 배경은 현재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 추진 이유와 유사하다.
하지만 과거사를 대하는 독일의 태도는 일본과 달랐다. 2차 세계대전의 핵심 전범국인 독일은 전쟁 피해국인 프랑스에 일관되고 진정성 있게 사과·반성했고 프랑스는 화해·용서로 호응했다. 헬무트 콜 전 총리와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 요아힘 가우크 전 대통령 등 독일 지도자들은 프랑스를 찾아 지속적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독일 법원은 101살 나치 전범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는 등 현재도 과거사 청산을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 따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 1월 엘리제 조약 체결 60주년을 맞아 프랑스 파리에서 에너지·경제·국방 부문 공동 각료회의를 여는 등 굳건한 우호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반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16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라며 강제동원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은 1993년 고노 담화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10년 간 나오토 담화 등을 통해 과거사를 사과·반성했지만, 사죄 표현을 담지 않은 2015년 아베 담화나 일본 지도자들의 전범 신사참배 등이 이어지며 사과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일본 정부 고위급 인사들은 여전히 2차 세계대전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있으며, 현직 총리도 공물을 바치고 있다.
일본, 한국은 외면하고 중국에는 “깊이 반성”
윤 대통령은 1972년 중국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 공동성명에서 “중·일 양국 인민의 우호를 위해 일본에 대한 전쟁 배상 요구를 포기한다”는 저우언라이 전 중국 총리의 선언을 인용했다.
윤 대통령은 “중국인 30여만명이 희생된 1937년 난징대학살의 기억을 잊어서가 아닐 것”이라며 “당시 저우언라이 총리는 ‘전쟁 책임은 일부 군국주의 세력에게 있으므로 이들과 일반 국민을 구별해야 한다. 때문에 일반 일본 국민에게 부담을 지워서는 안되며 더욱이 차세대에게 배상 책임의 고통을 부과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말했다.
1972년 중·일 국교 정상화는 일본의 과거사 책임 인정이 수반됐다. 공동성명에는 “일본 측은 과거 전쟁을 통해 중국 국민에게 중대한 손해를 줬다는 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깊이 반성한다”는 문구가 적시됐다.
중국인과 한국인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일본의 대응도 판이하다. 한국과 중국은 각각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1972년 중·일 공동선언상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는지를 놓고 일본과 갈등을 빚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중국인 강제노역 피해자들은 2000년대에 니시마츠건설·가지마건설·미쓰미시광업 등 일본 가해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 등을 진행해 사과와 배·보상을 받아냈다.
반면 한국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2018년 한국 대법원에서 승소했지만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 등 전범 기업으로부터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했다. 두 기업은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배상 문제는 종결됐다며 한국 정부의 ‘제3자 변제’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지난 16일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강제동원 문제에 명시적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는 “1998년 10월에 발표한 한·일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사과·반성과 거리가 먼 2015년 아베 담화 등이 포함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며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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