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손흥민의 얼굴조차 상표가 될 수 없는 모순

2023. 3. 2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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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을 비롯한 한류 드라마가 국제 영화제를 휩쓸고 BTS와 블랙핑크를 비롯한 K팝 가수들과 손흥민, 류현진 등 프리미어리그와 메이저리그를 누비는 스포츠 스타 등 대한민국 예체능이 전 세계에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맞추어 특허청은 지난해 부정경쟁방지법을 개정하여 유명인의 성명, 초상 등을 본인의 동의 없이 제3자가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퍼블리시티권'을 도입하였다.

나아가 최근 법무부는 퍼블리시티권을 일반인에게도 적용하겠다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부정경쟁방지법이 유명인에 한하여 적용되는 한계와 금지권에 불과해서 해외에서의 라이선싱 등 적극적인 상업적 활용에 취약한 점을 보완하고자 하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민법상 일반인에 대한 퍼블리시티권 도입은 그 보호 대상이 너무나 모호하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역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의 얼굴이나 목소리가 의도치 않게 콘텐츠에 삽입된 경우 그 사람의 유명성과 관계없이 권리 침해로 인정된다면 수많은 유튜버를 비롯한 콘텐츠 창작자들의 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인에 대한 광범위한 퍼블리시티권 인정보다는 부정경쟁방지법의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미국의 예를 들면 유명인에 대해서는 퍼블리시티권이 인정되고 있으며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얼굴이나 이름을 상업적으로 사용할 경우 상표로 출원등록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상표로 실제 사용되는 한 상표등록을 거부할 이유가 없고 상표권이 해외 라이선싱 등 상업적 활용에는 훨씬 편리하기 때문이다. 일본, 유럽 등 다른 국가에서도 본인의 얼굴 사진을 상표로 등록되는 데는 특별한 제약사항이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상표심사 기준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유명인이라 하더라도 얼굴 사진은 상표등록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 근거도 모호하다. 그냥 식별력이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는 유명인의 얼굴이 식별력이 없다는 것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다만 유명인의 얼굴 사진이 특정 상품의 상표로 오래 사용되어 유명해지면 상표등록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명 '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확보한 경우에만 인정한다는 것이다.

유명인이라 해도 모든 사업 분야에서 처음부터 유명하다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손흥민 선수의 얼굴이 문구류나 완구류에 상표로 출원되면 그의 유명세로 큰 고객 흡인력이 있고 상표로서 가치가 있지만 상표출원 시에는 거절된다. 그 분야에서 오래 사용되어 고객들에게 손흥민표 문구나 완구류가 인식된 후에만 상표등록이 된다. 소비자들에게 인식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일정 규모 이상의 소비자 집단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서 입증해야 한다. 이러한 설문조사에는 수천만 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과도한 부담을 출원인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유명인의 얼굴은 출원등록 절차 없이도 퍼블리시티권에 의해 보호하도록 부정경쟁방지법을 개정해 놓고서도 정작 보다 적극적인 상업적 활용을 위해 상표로 출원할 경우에는 등록을 해주지 않는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유명인의 얼굴 사진에 대한 상표등록을 허용하여 한류 스타들의 적극적인 해외 마케팅과 진출 기반을 강화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박성준 前 특허심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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