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의 치열한 기싸움, 현대인 속마음 꿰뚫는 대사들

고보현 기자(hyunkob@mk.co.kr) 2023. 3. 2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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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개막 연극 '파우스트' 연습현장
영혼을 판 박사役 유인촌
악마 역할 맡은 박해수
몸에 딱 맞는 옷 입은듯
인간의 욕망과 한계 다뤄
젊은 파우스트와 연인은
박은석 원진아 호흡 맞춰
21일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진행된 연극 '파우스트' 연습실 공개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는 유인촌(오른쪽)과 박해수. 【연합뉴스】

"저랑 내기 하실래요 주여. 장담하건대 주님께선 그를 잃게 되실 것입니다."

21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연극 '파우스트' 연습실에선 악마 메피스토(박해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 지상은 최악이죠. 제가 더는 할 일이 없습니다."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내려다보던 그는 노학자 파우스트를 걸고 신과 당돌한 내기를 벌이게 된다.

오는 31일 개막하는 연극 '파우스트'는 독일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평생에 걸쳐 완성한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모든 지식에 통달한 파우스트 박사가 삶에 회의를 품고 목숨을 끊으려는 순간 메피스토가 나타나 거래를 제안한다. 계략에 빠진 파우스트가 영혼을 팔아 쾌락을 선물받기로 하고, 청년으로 돌아가 숙녀 그레첸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배우 유인촌이 평생을 바쳐 다양한 학문을 공부해온 학자 파우스트를, 배우 박해수는 인간의 파멸과 타락을 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메피스토를 맡았다. 젊은 날의 파우스트와 사랑에 빠진 그레첸 역에는 각각 배우 박은석과 원진아가 캐스팅됐다.

이날 연습실에선 불길한 눈빛을 한 검은 개가 악마로 훌쩍 모습을 바꿔 늙은 파우스트를 마주하는 장면이 공개됐다. 십자가를 손에 든 유인촌이 박해수와 말싸움을 벌이자 팽팽한 기운이 방 안을 채웠다. 이윽고 사람을 홀리는 악령들과 광기 어린 마녀가 모습을 드러내자 상상 속 무대는 한순간에 스산해졌다.

이번 연극은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배우들이 4주간 원캐스트로 공연을 꾸려 개막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유인촌은 이날 "파우스트뿐만 아니라 연극 자체가 시대의 거울 역할을 한다"며 "수백 년 전 작품이지만 과거와 현재와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뒤까지 미래를 볼 수 있게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원진아는 작품에 대해 "방황하기 좋은 2030세대가 공연을 보면 느끼는 점이 많을 것 같다"며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를 겪는 시기에 보면 좋을 작품"이라고 밝혔다.

악마 메피스토 역으로 이어지는 세대 간 만남에도 주목이 쏠린다. 앞서 유인촌은 1996년 연극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 역을 맡았다. 30년 가까이 지난 이번 공연에는 박해수가 그 차례를 이어받는다.

유인촌은 "메피스토를 할 때는 파우스트가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 몰랐다"며 "인간으로서 가장 많은 걸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수도 없이 고민하고 고려해야 할 상황이 많다"고 털어놨다.

박해수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 몸에 딱 맞는 악마 옷을 입은 그는 "(준비 기간에) 배우들과 놀이터에서 많이 놀았다"며 "악의 평범성에 초점을 맞추며 메피스토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약 200년 전에 집필된 작품이지만 오늘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양정웅 연출은 "고전이란 시대와 공간과 언어를 뛰어넘어 인간의 본질을 잘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며 "메피스토의 대사는 악마임에도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생존, 치열한 삶과 속마음을 그대로 꿰뚫어본다"고 짚었다.

LG아트센터와 샘컴퍼니가 공동 제작해 선보이는 연극이다. 대형 LED 패널을 활용해 신과 정령을 표현하는 등 현대 기술과 고전 작품이 만나 새로운 조합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달 31일부터 다음달 29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 엘지시그니처홀.

[고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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