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교감한 고향바다, 서정시 같은 화폭으로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3. 2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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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꿈꾸던 화가 바이런 김
국제갤러리 부산 개인전
'B.Q.O.'연작 앞에 앉은 바이런 김. 【사진 제공=국제갤러리】

코로나19 봉쇄로 어린 시절 살던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1년을 보내게 됐다. 답답한 마음을 떨쳐내려고 깊은 바다에 뛰어들었다. 맨몸으로 부딪친 물의 느낌을 삼분할 평면으로 펼쳤다. 바다에서 바라본 하늘과 물의 표면, 수중 풍경이 3개의 캔버스 패널로 합체되면서 한 폭의 '서정시'가 됐다.

뉴욕 브루클린 기반으로 활동 중인 한국계 미국인 바이런 김(62)의 개인전 'Marine Layer'가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4월 23일까지 열린다. 5년 전 서울점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Sky' 연작보다 더 넓은 세계로 확장됐다.

작가는 "바다에서 수영하면서 내 몸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며 "묘하게도 내 작업을 현실 기반인 재현으로 이끌어줬다"고 밝혔다.

이번 연작은 2020년 초 플로리다 외딴섬 라우센버그 레지던시에서 다시 읽은 바다 배경의 소설들에서 시작됐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예술영화로 유명한 스타니스와프 렘의 소설 '솔라리스' 속 버튼, 허먼 멜빌의 '모비딕' 속 퀴케그, 호머의 '오디세이아' 속 오디세우스에서 첫 글자를 따서 'B.Q.O.'라 명명했다. 초유의 코로나19 상황은 바다에서 고군분투하는 영웅들을 소환했다. 하지만 그가 체험한 바다와 호수는 정작 그림 속에서 차분해졌다. 특히 'B.Q.O.34(Marine Layer·2023)'는 라호이아 해변의 안개가 자욱해 해안선 구분도 모호한 모습이 추상화돼 몽환적이다. 숭고미도 소환돼 마크 로스코의 밝은 버전 같다.

작가는 같은 장소 캔버스를 하늘, 수면, 수중 순서로 배치하지만, 그 순서만 고집하진 않는다.

"좋은 회화란 주제(subject matter)에 충실하면 된다. 예전에는 실제 하늘을 보며 그렸다면, 이번에는 하늘 느낌을 상상하며 작업실에서 그리거나 사진을 보며 그리기도 했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의 이름을 가진 그는 195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간 의사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나 시인이 되려고 예일대 영문학과를 다니며 시집도 냈지만 성공할 자신이 없었단다. 메인주 스코히건 회화조각학교를 다니며 본격 미술계로 전향했다.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첫선을 보인 관념적 프로젝트 '제유법(Synecdoche·1991~)'으로 주목받았다. 다양한 인물의 피부색을 재현한 단색조 화면 500개로 재현과 정체성 문제를 던졌다. 이후 이어진 'Sunday Painting' 연작(2001~)은 매주 하늘을 그리고 단상을 적는 프로젝트다.

"내 작업은 부분과 전체의 관계성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자연 등 거대한 전체와 어떻게 연계되는지가 관심사다."

[부산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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