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은 잘못된 젠더 관계 탓, 성평등 정책으로 사회 전환해야” [플랫]

플랫팀 기자 입력 2023. 3. 2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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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이 계속된 이유는 출산과 양육을 둘러싼 여성과 남성의 관계, 젠더 관계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마음이 출산에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도록 성평등 정책으로 사회를 전환해야 한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인 0.78명을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합계출산율이 1명 밑으로 떨어진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저출생 대책으로 각종 정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출산율은 매해 떨어졌다. 스웨덴, 독일, 이탈리아 등 저출생 위기를 겪은 국가들이 국가의 정책적 노력으로 출산율이 반등한 것과 대조적이다. 신경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초저출생 위기에 처한 한국사회를 “큰 병에 걸렸는데 해열제만 먹고 있는 상황”이라고 빗대며,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쫓는 미시적인 정책이 아니라 구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구조적인 전환과 출산율 반등의 핵심에는 ‘성평등 정책’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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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우철훈 선임기자

-정부의 저출생 정책은 왜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했나.

“사람들이 자신의 생애에 대해 다른 전망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가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가던 방향으로 계속 가면서 임시방편적인 조치만 취해왔기 때문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출산지원금, 돌봄시설 확대, 난임 지원 등 기존의 정책들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은 미시적인 정책이고 구조적인 전환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이 정책에 대해 반응하지 않는다. 몇몇 정책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2016년 논란이 됐던 행정안전부의 가임기 여성 지도가 대표적이다. 흔히 ‘출산장려 정책’이라는 이 같은 접근에 여성들은 반감을 갖는다. 비혼 남성도 마찬가지다. 통계에 따르면 만 39세까지 비혼으로 살아가는 남성이 50%가 넘는다. 아이를 낳고 싶지만 전망을 찾기 어려운 남성들도 아이를 낳으라는 요구에 분노한다.”

-근본적인 전환을 위해 어떠한 접근이 필요한가.

“성평등 정책이 핵심이 돼야 한다. 저출생이 계속된 이유는 출산과 양육을 둘러싼 여성과 남성의 관계, 젠더 관계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다수의 여론조사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것은 여성들이 출산에 대해 훨씬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여성들이 출산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출산 이후의 상황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여성은 양육의 1차 책임자다. 여성들은 양육과 자신의 경력을 동시에 추구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경제적 독립, 사회적 지위 확보, 자아실현 등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먹고살기 위한 경제적 이유 때문에도 여성의 직업은 필요하다. 또 과거와 달리 비혼, 이혼율도 높다. 가족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불확실해졌기 때문에 누구든 자기 소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이를 낳게 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살아가기 위해 소득이 있어야 한다’라는 기본적인 조건을 충족하기가 어려워진다. 여성들의 마음이 출산에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도록 성평등 정책으로 사회를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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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여성에게 집중된 양육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인가.

“성평등은 여성을 우대하고 남성에게 불이익을 주자는 게 아니다. 여성과 남성의 격차,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과거에는 남성이 주로 생계부양자였다. 지금도 남성이 주부양자라는 이데올로기는 남아 있으나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중산층으로 살고 싶어한다. 중산층으로 살려면 ‘두 개의 소득’이 있어야 한다. 남성의 어깨에서 생계부양자의 짐을 덜어주고, 남성이 출산·양육에 동등하게 주체로 들어와야 한다. 2인 소득, 2인 돌봄의 방향으로 정책이 가야 한다. 남성이 혼자 250만원을 벌면 출산·양육을 하기가 어렵지만, 여성도 같이 250만원을 벌면 상황은 달라진다.”

-현재도 여성의 경제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육아휴직·돌봄 정책 등의 정책은 있다.

“한국사회에서 일하는 여성의 절반은 비정규직이다. 법적으로 비정규직도 출산휴가를 쓸 수 있지만, 실효성은 불충분하다. 대기업 등 출산휴가·육아휴직이 보장된 조직이더라도 제도가 성평등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2년 전, 심층 연구를 한 적이 있다. 가족 친화적이라고 평가받는 기업들의 인사담당자를 인터뷰했다. 여성 인사담당자조차 육아휴직에서 복직한 여성 직원에게 좋은 인사고과를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뼈 빠지게 일한 사람과 육아휴직한 사람을 같은 선상에 놓고 승진의 기회를 주는 게 공정한가’라며 오히려 되물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논리와 사회의 재생산 논리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다. 우선 남성이 육아휴직을 쓰는 것을 보편화해야 한다. 정책이나 제도가 남성에게 적용되면 빠르게 규범화되는 경향이 있다. 또 육아휴직자 대체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육아휴직이 제도적으로 보장된다고 해도 육아휴직을 쓸 때 동료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대체 인력이 없다 보니 휴직으로 인한 업무 공백을 동료가 맡게 되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는 육아휴직자의 대체 인력 채용이 활성화돼 있다. 기업은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인력의 비율을 계산하고 업무를 재조직해 설계해야 한다. 여력이 안 되는 중소기업들은 국가가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해 지원해 줘야 한다.”

-2021년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서는 처음으로 ‘성평등하고 공정한 사회’의 목표가 명시됐다.

“획기적인 변화였다. 이전까지 ‘출산=여성’이었는데 이 프레임에서 벗어났다. 인구·출산과 관련한 대표적인 조사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3년마다 실시하는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 복지 실태조사’(2021년부터 ‘가족과 출산’ 조사로 명칭 변경)다. 출산을 여성의 문제로만 봤던 과거에는 기혼 여성만 조사 대상이었다. 2021년부터는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의 목표를 반영해 조사대상에 비혼자와 남성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도 비판할 지점이 있다. 프레임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구체적으로 성평등 정책의 필요성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이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2019년 여성가족부 예산이 처음 1조원을 넘었어도 대부분이 ‘돌봄’ 예산이었다. 경력 단절, 유리천장 등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이 겪는 성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은 턱없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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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걸어 당선됐다. 현 정부의 저출생대책에 성평등이 반영될 수 있을까.

“현 정부는 여성을 지우고, 성평등을 거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미약하게나마 성평등 정책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다시 되돌려 퇴행하고 있다. 동유럽 일부 국가들은 저출생 대책으로 성평등 정책을 삭제하고, 전통적인 모성을 강요하는 출산장려 정책으로 회귀했다. 아직은 아니지만, 현 정부의 기조를 보면 한국도 그렇게 될 위험이 충분히 있다. 미래가 안 보이는 상황이다. 얼마 전, 정부는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김영미 동서대 교수를 임명했다. 김영미 교수는 성평등에 대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여가부 폐지를 내세웠던 이 정부도 저출생 문제는 성평등 없이 도저히 해결이 안 된다는 점을 아는 것이다. 정부도 알긴 안다고 보지만, 이를 정책에 반영할지에 대해선 비관적이다.”

-저출생 대책으로 ‘육아기 재택근무’ 활성화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육아기 재택근무 자체는 필요하다. 하지만 성평등 기조 없이 육아기 재택근무를 실시하면 ‘일과 육아’라는, 여성들에게 강요된 이중부담이 더 강화되고 여성들의 출산 의욕은 더 떨어질 것이다. 기업은 재택근무 노동자와 출퇴근 노동자를 똑같이 대우하지 않는다. 여성 노동자는 계속 조직에서 주변인에 머물게 되고 유리천장은 더 단단해질 것이다. 결혼도, 출산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육아기 재택근무는 성평등 기조 아래 남성도 이를 보편적으로 쓸 수 있도록 성별 균형을 추구하면서 도입돼야 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우철훈 선임기자

-서울시의 합계출산율은 전국 최저인 0.51이다. 오세훈 시장은 저출생 첫 정책으로 난임부부 지원 확대를 발표했다.

“서울시도 저출생 정책에 성평등 기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시의 난임부부 지원 정책도 난임을 여성의 문제로만 보고 있다. 서울시는 난자동결 시술 비용, 35세 이상 고령산모 검사비 등 난임부부 시술비를 소득 기준, 횟수 제한 없이 지원하겠다고 했다. 난임과 관련된 시술의 대상자와 지원사업의 수혜자가 여성에 집중돼 있다. 의학 통계에 따르면 난임은 남성 요인도 40~50%에 이른다. 그런데 남성 요인으로 난임 수술비 지원을 받은 사례는 전체의 10%가 안 된다. 남성 난임이라도 생리불순 같은 여성의 흔한 질환을 엮어 어떻게든 여성에게서 문제를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여성에게만 집중된 서울시의 난임 지원은 여전히 임신과 출산의 1차적 책임은 여성에게 있고, 남성은 보조적인 역할에 그친다고 보고 있다. 언뜻 남성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남성의 권리를 빼앗는 것이기도 하다. 남성도 분명 난임 치료를 받아야 하고, 양육의 권리가 있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부성이 빠진 ‘모성 및 영유아’만을 대상으로 한다. 왜 모성 건강만 있고 부성 건강은 없나. 장시간 노동, 각종 산재 위험, 스트레스 속에서 남성들이 건강한 재생산자와 양육자가 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접근도 필요하다.”

-성평등 정책으로 출산율이 올라간 사례가 있나.

“유럽 등 출산율 저하를 먼저 겪은 나라들은 국가적인 노력으로 출산율 반등을 경험했다. 서구에서는 두 차례 젠더혁명이 있었다. 1차 젠더혁명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다. 이 시기 가족 안에서 양육을 전담하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나가 소득을 얻고 경제적 부양자가 됐다. 돌봄 책임은 여전히 여성들에게 집중됐기 때문에 여성의 이중부담으로 출산율은 떨어졌다.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계속되는 2차 젠더혁명은 남성의 양육 참여를 강조한다. 남성의 역할이 변하기 시작하면서 출산율은 회복되기 시작했다. OECD 38개국 가운데 코로나19 때 출산율이 상승한 나라가 27개국이다. 서구의 통계를 보면, 재택근무가 시행되면서 남성들의 가사노동·양육 참여 시간이 훨씬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들의 돌봄 시간이 늘어나면서 출산율도 올라가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의 정책적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 국가의 주도 없이는 불가능한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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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주도의 인구정책이 개인에 대한 통제로 갈 우려는 없나.

“아이를 낳는 건 여성의 몸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계속 밀고 가다 보면 여성에 대한 통제로 이어지기 쉽다. 인구정책이 통제정책이 되지 않기 위해서도 성평등 기조 위에서 추진돼야 한다. 성평등은 출산을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여성의 자율성을 증진하는 방향이다. 현금을 지원하든, 보육시설을 늘리든, 어떤 정책이든 성평등 기조에 비춰봤을 때 타당한가를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제도가 바뀌어야 사람도 바뀐다. 스웨덴은 남성들의 육아휴직 사용률이 높고 육아참여도도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이 처음부터 육아를 했겠는가. 제도가 바뀌면서 의식이 바뀌고, 성평등이 자신의 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점도 깨달은 것이다.”

▼ 박송이 기자 psy@khan.kr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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