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스필버그, 영화 인생의 시작은···‘파벨만스’[리뷰]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1952년 세실 B 드밀의 영화 <지상 최대의 쇼>가 흑백의 스크린 위에 펼쳐지자 어린 새미(마테오 조리안)의 파란 눈이 휘둥그레진다. ‘거인이 나온다’며 극장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던 새미의 머릿속은 이날 이후 온통 영화 속 자동차와 기차 충돌 장면으로 가득 찬다.
모두가 잠든 새벽, 새미는 하누카(유대인 성탄절) 선물로 받은 값비싼 장난감 기차와 자동차를 충돌시키며 영화 속 장면을 재연한다. 엄마 미치(미셸 윌리엄스)는 아버지 버트(폴 다노)의 카메라로 이를 찍어두고 보고 싶을 때마다 볼 수 있다고 새미를 달랜다.
“아들아, 영화는 꿈이란다. 영원히 잊히지 않는 꿈.” 미치가 극장 앞에서 겁에 질린 새미를 안심시키려 한 이 말은 영화에 평생을 헌신할 아들의 운명을 예언한 듯하다.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34번째 장편 영화인 <파벨만스>는 이렇게 시작된다. 스필버그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한 <파벨만스>는 영화와 사랑에 빠진 어린 소년 새미가 스무살 청년이 될 때까지의 성장담을 다룬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새미(가브리엘 라벨)는 영화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독이 든 전갈 수십마리를 잡아 번 돈으로 카메라를 사고, 친구들을 동원해 전쟁영화, 서부영화를 찍는다. 스필버그가 13세 때 만든 첫 영화 <이스케이프 투 노웨어>는 영화 속 영화를 통해 재현된다.
평화로운 줄로만 알았던 새미의 인생에 중대한 사건이 일어난다. 가족여행을 기록하기 위해 찍은 영화를 보던 새미는 엄마가 아버지의 조수이자 친구인 베니와 사랑하는 사이임을 알아차린다.
엄마 미치와 아빠 버트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었다. 피아니스트인 미치는 자유분방하고 어린아이 같은 영혼의 소유자다. 버트는 반대로 기계와 숫자에 능했다. 새미에게 8㎜ 카메라를 사다주고, 그 원리를 설명해줄 만큼 다정했지만 예술을 그저 ‘취미’로 치부했다. 예술가와 과학자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었다. 몇 주를 끙끙 앓던 새미는 결국 엄마와 베니가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고백하는데, 이 또한 영화로 한다. 영화는 새미에게 ‘언어’ 그 자체인 셈이다.
어린 시절 받은 상처를 스필버그는 60년 넘게 엄마와 자신만의 비밀로 끌어안았다. 가깝게 지내는 여동생들은 물론 아버지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필버그는 “모두에게 말할 용기를 낼 때까지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며 “내가 이 이야기를 언제 할 수 있을지 알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고, 74세가 되어서야 ‘지금이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스필버그는 <파벨만스>를 통해 어린 시절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동시에 비로소 어른의 삶을 이해했음을 이야기한다.
어린 스필버그, 즉 새미를 연기한 배우는 신예 가브리엘 라벨이다. 300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라벨은 영화라는 꿈과 가족 사이에서 고뇌하고 성장하는 소년을 섬세하게 연기한다. 스필버그는 지난해 타임지 인터뷰에서 “엄마는 늘 자신을 어른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어린 소녀, 피터팬이라 불렀다”고 했다. 엄마 역의 윌리엄스는 스필버그의 말대로 순수하지만 부서질 듯 연약해보이는 미치를 탁월하게 표현한다.
제8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극 영화 부문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수상작이다. 러닝타임은 151분.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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