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 기아 시대 이끈 쌍돛대, 김유택과 한기범

김종수 2023. 3. 2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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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 타워, 강팀 도약의 유리한 조건⑥

 

NBA만 ‘트윈타워’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수준급 빅맨이 워낙 귀했던 관계로 드물기는 했지만 국내농구에서도 더블포스트 시스템은 예전부터 종종 시도되고는 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실업 최강 기아자동차 무적시대를 열게한 김유택(59‧197cm)과 한기범(59‧205cm)의 ‘쌍돛대’다. 흔히 기아자동차하면 허재, 강동희의 가드라인을 먼저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이들에 앞서 여타 다른팀을 높이에서부터 제압했던 골밑 듀오가 있었기에 강팀의 초석이 마련된게 사실이다.


190cm전후 빅맨도 많았던 시절 평균신장 2m를 넘어가는 김유택, 한기범이 한꺼번에 코트에 서면 상대팀 입장에서는 골밑이 꽉 차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란히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했던 둘은 개개인이 국내 최고 센터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프로농구 초창기로 비교해보자면 외국인선수가 없는 상황에서 서장훈, 김주성이 한팀에서 나왔다고 보면 된다. 거기에 더해 허재, 강동희의 백코트 라인이 함께 하는지라 그야말로 대적불가의 팀이 완성될 수 있었다.


당시 더블포스트 전략을 만들어냈던 최인선(72‧182cm) 기아자동차 전 감독은 '농구人터뷰'와의 인터뷰 당시 "다른 팀에는 한명도 있을까 말까한 주전급 센터가 우리팀에는 둘이나 있었다. 이런 자원은 무조건 함께 써야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일대일로 막아내기 힘든 두 선수가 한꺼번에 포스트 인근을 오가면 상대팀 수비는 복잡해질 수 밖에 없으며 거기에서 파생되는 효과 역시 매우 다양하고 높다"는 말로 트윈타워가 가지는 위력에 대해 설명한바 있다.


한기범과 김유택은 둘다 농구는 늦게 시작한 편이지만 워낙 좋은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고 운동능력도 나쁘지않아 빠르게 자리를 잡아간 케이스다. 특히 중앙대시절부터는 서로가 서로의 훈련파트너가 되어서 동반성장해갔다. 이후 기아자동차에서도 함께 뛰었으니 허재, 강동희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서로간 호흡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였다. 국내 최초 ‘고공농구’는 사실상 이들로부터 시작됐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년의 한기범만 본 팬들은 키만 크고 굼뜬 모습을 연상할지 모른다. 거기에 워낙 마른 체질이었던지라 금세라도 쓰러질듯 휘청거리는 느낌까지 줬다. 하지만 한창 좋을 때의 한기범은 달랐다. 좀처럼 몸에 살이 안붙는 체질인지라 그로인해 자신보다 작은 선수들에게도 힘에서 밀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외의 부분에서는 딱히 모자람이 없었다. 일단 신장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높이는 그 자체로 상대팀에게 위협이 됐고 보기보다 기동력, 유연성 등도 나쁘지 않았다. 테크니션까지는 아니었지만 센스가 좋아 작전수행능력, 임기응변 등에서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상대팀에서는 한기범의 빈약한 웨이트를 노려 몸싸움 등 이른바 부딪히는 수비를 많이 걸어왔는데 한기범은 빨리빨리 공을 돌려 자신이 볼을 오래소유하는 상황을 사전에 피했다.


더불어 볼을 잡게되면 직접적으로 뚫고 들어가기보다는 중거리슛이나 받아먹기 등으로 간결하게 득점을 성공시켰다. 속공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한창 젊을 때는 그 과정에서 앨리웁플레이도 해낼 정도로 나쁘지않은 운동능력을 자랑했다. 빈틈을 가르고 들어가 꽂아넣는 원핸드 덩크슛은 트레이드마크중 하나다.

 

 


거기에 리바운드 후 곧바로 한손으로 패스하는 아웃렛 패스는 상당히 정확하고 신속했다. SK의 창단 첫 KBL 우승 당시 재키 존스라는 외국인 센터가 있었는데 그를 가리켜 '슛이 더 좋아진 흑인 한기범이다'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다. 캐릭터 자체는 확연히 다르지만 플레이 스타일만 보면 닮은 구석이 은근히 많았다.


아무리 뛰어난 빅맨이 둘이나 있어도 플레이 스타일이나 동선이 겹치게되면 제대로된 위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한기범과 김유택의 '트윈타워'은 이른바 서로간 조합에서도 잘맞았다. 한기범이 자신의 신체적 장점을 잘 활용했다면 김유택은 영리한 테크니션으로서 합을 잘 이뤄냈다는 평가다.


김유택은 테크니션 혹은 스트레치 빅맨에 가까웠다. 한기범처럼 마른 체형이기는 했으나 상대적으로 좀더 힘이 강했고 원체 근성이나 승부욕이 좋은지라 몸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본기가 탄탄했는데 늦게 농구를 시작했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놀라운 부분이다. 기술자형 빅맨으로 불리기는 했지만 테크닉적인 측면에서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다른 4~5번 선수들도 할 수 있는 기본기 위주로 플레이했는데 그 완성도가 무척 높았다. 스텝과 피벗동작으로 장신선수들을 벗겨내듯 제치고 득점을 성공시켰으며 위치를 가리지않고 쏘는 미들슛의 정확도도 높았다. 포스트업, 페이스업을 모두 능수능란하게 구사한 것을 비롯 속공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거기에 더해 '황새'라는 별명답게 리바운드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탄력이 좋았으며 스피드를 활용해 다른 빅맨들보다 한발 앞서 좋은 위치를 잡고 날렵하게 뛰어올랐다. 국내판 '미스터 기본기'라고 할 수 있는 선수였다. 김유택을 높게 평가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러한 플레이가 국제 무대에서도 통했다는 점이다.


빅맨으로서 크지않은 사이즈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물론 유럽 강팀과 만나도 전혀 주눅들지않고 정면에서 맞섰다. 전성기 끝자락이었던 1990년 세계선수권대회 당시에는 강호 스페인을 상대로 29득점을 폭발시키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아쉬운 것은 당시 김유택을 받쳐줄만한 빅맨이 없어 홀로고군분투하는 경우가 많았고 로테이션을 통한 인해전술에 애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국내 무대에서의 한기범, 김유택은 아마시절 언터처블 그 자체였다. 높이의 한기범이 골밑을 탄탄하게 지키는 가운데 김유택이 헤집고 다니던 시절에는 어느 팀에도 포스트 파워에서 밀리지 않았다. 여기에 대해 김유택은 농구人터뷰를 통해 "지금으로 따지면 4번도 가능한 스타일인지라 함께 뛸 때는 주로 내가 맞췄다. 내외곽을 계속 오가면서 겹치지않게 신경쓰면서 플레이했고 (한)기범선배도 가능한 선에서 많이 배려를 해줬는데 나중에 서로 익숙해지다보니 의식하지않아도 플레이가 매끄럽게 돌아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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