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시급한 ‘검정고무신法’

박동미 기자 2023. 3. 2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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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는 절대 말이 안 되는데도, '맞는 말'일 때가 있다.

그러나 원작자인 고인은 생전 자신이 탄생시킨 '검정고무신' 속 사랑스럽고 다정한 캐릭터 '기영이' '기철이' '오덕이'를 마음껏 그리거나 가져다 쓸 수 없었다.

'제2의 검정고무신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검정고무신'을 볼 때마다,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쓸쓸하게 떠난 비운의 작가가 아니라, 만화 속 캐릭터들처럼 따뜻하고 용감했던 창작자가 떠올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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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미 문화부 차장

상식적으로는 절대 말이 안 되는데도, ‘맞는 말’일 때가 있다. 우리 모두 그런 일을 겪는다. 상대방은 ‘법이 그렇다’거나 ‘계약 사항이 그렇다’면서 문서화된 강력한 무기를 내민다. 화나고 분하고 당황스럽다. 그럴 때, 사람은 둘로 나뉜다. 조용히 뒷걸음질 치거나 맞서 싸우거나. 그리고 알다시피 세상은 싸워 이기거나, 지더라도 싸워 본 사람들 덕에 조금 나아진다.

저작권 분쟁 소송에 시달리다가 지난 11일 세상을 등진 고 이우영 작가는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이 작가는 1990년대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으로 잘 알려진 유명 만화가다. 해당 만화는 1992년 연재를 시작해 2006년까지 지속, 당시 최장수 연재 기록을 세웠고, 애니메이션을 통해 다양한 세대와 만나며 오랜 기간 꾸준히 사랑받은 ‘국민 만화’다. 그러나 원작자인 고인은 생전 자신이 탄생시킨 ‘검정고무신’ 속 사랑스럽고 다정한 캐릭터 ‘기영이’ ‘기철이’ ‘오덕이’를 마음껏 그리거나 가져다 쓸 수 없었다. 그랬다가 오히려 소송을 당했다. 이게 무슨 소리냐 싶은데, 맞는 소리다. 법이 그렇다. ‘일체의 작품 활동과 사업 관련 모든 계약에 대한 권리를 양도한다’는 계약이 그랬다. 잘못 계약한 사람 잘못 아니냐 싶지만, 이는 애초 창작자에게 불리한 계약이다. 만화·출판계의 고질적인 불공정 관행이다.

이 작가의 별세로 창작자에 대한 공정한 보상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구름빵’ 백희나 작가의 사례도 다시 언급되고 있다. 백 작가는 ‘구름빵’ 출간 당시 원고료(1850만 원)만 받고 저작권 등 모든 권리를 출판사에 양도하는 계약을 했다. 이후 애니메이션과 뮤지컬 등으로 가공된 ‘구름빵’은 4000억 원대의 부가가치를 올렸으나, 백 작가는 보상을 받지 못했다. 저작권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이 수년간 이어졌으나 최종 패소했다. 누군가는 또, ‘계약을 잘못했다’고 지적할 것이다. 그러나 협상 테이블에서 언제나 약자인 대부분의 창작자가 왜 자꾸 계약을 ‘잘못하는’지부터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K-컬처 원천 콘텐츠 창작자들이 권익을 보호받지 못하고, 공정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데, 언제까지 우리는 ‘세계적인 K-콘텐츠’의 위상을 떠들어댈 수 있을까.

문화체육관광부는 2차적 저작물과 관련해 기존 표준계약서를 개정하고, 이와 관련한 다른 계약서도 신설하기로 했다. ‘제2의 검정고무신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강제성 없는 표준계약서가 얼마나 역할을 할지는 의문이다. 표준계약서 사용을 유도하는 확실한 조치가 필요하다. 아울러, 저작물의 수익이 계약 당시보다 현저히 많은 경우 저작자가 추가 보상을 청구할 수 있어야 하며, 불공정 관행을 근절할 법률 제정이 시급하다.

10여 개 만화 단체가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웹툰 협회는 ‘이우영법’이란 이름으로 저작권법 개정에 나섰다. 고인의 뒤를 이어 전장에 나선 이들의 승전보를 기대해본다. ‘검정고무신’을 볼 때마다,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쓸쓸하게 떠난 비운의 작가가 아니라, 만화 속 캐릭터들처럼 따뜻하고 용감했던 창작자가 떠올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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