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노벨평화상 수상’ 인권단체 대거 압수수색···“나치즘 복권 혐의”

선명수 기자 2023. 3. 2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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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수사당국, 인권활동가 9명 자택 등 압수수색
러 대표적 인권단체···대법원 명령으로 해산
우크라 전쟁 이후 러 내부 ‘비판 목소리’ 옥죄기
러시아 경찰관들이 2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메모리알 사무실 앞에 서 있다. 러시아 수사당국은 이날 메모리알 사무실과 관련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수사 당국이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인권단체 ‘메모리알’의 인권운동가 9명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혐의는 “나치즘 복권”이다.

메모리알은 21일(현지시간) 러시아 경찰이 얀 라친스키 메모리알 이사회 의장을 포함해 활동가들의 자택과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는 이달 초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가 나치즘 복권, 군에 대한 평판 훼손 등의 혐의로 메모리알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데 따른 것이다.

러시아에서 ‘나치즘 복권’은 2014년 제정된 ‘나치즘 부활 금지법’에 따라 최대 5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메모리알은 옛소련 및 러시아 정부에 의해 정치적 탄압을 받은 피해자 데이터베이스(DB) 작업을 진행해 왔는데, 수사 당국은 이 명단에 포함된 이들 중 3명이 과거 나치 독일에 부역한 혐의가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메모리알은 피해자 DB가 300만명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며, 문제가 된 3명 등 일부 오류를 찾아내 바로잡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올레그 오를로프 메모리알 이사는 이날 압수수색 후 경찰에 연행되며 취재진에게 “(나치즘 부활 혐의는) 바보 같은 주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군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를 받고 있다. 러시아는 군에 대한 허위 정보를 유포하면 최고 15년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등 내부 비판을 억압하기 위한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해 왔다.

이날 압수수색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수사 당국에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자 하는 적들과 그들의 요원들이 우리 영토에서 시도하는 모든 일들을 강경하게 진압할 것”을 지시한 뒤 이뤄졌다.

메모리알은 1987년 창설된 러시아의 대표적인 인권단체로, 옛 소련과 러시아에서 벌어진 정치적 탄압을 연구·기록하고 러시아와 옛소련권 이웃 국가들의 인권 상황을 감시하는 활동을 해왔다. 2009년에는 메모리알 체첸 지부장인 나탈리아 예스테미로바가 현지 조사 중 괴한에게 납치돼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러시아 대법원은 메모리알이 외국 세력과 결탁해 국가 안보를 해친다며 2021년 본부와 산하기관에 대한 해산 명령을 내렸다.

메모리알은 지난해 10월 벨라루스의 인권 운동가 알레스 비알랴스키, 우크라이나 인권단체 시민자유센터(CLL)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메모리알은 러시아의 군사주의와 맞서 싸우고 인권과 법치에 기반한 통치를 증진하는 최전선에 있었다”고 평가했다.

공동 수상자 가운데 투옥 중이던 벨라루스 인권 운동가 비알랴스키는 지난 3일 반정부 시위에 자금을 지원한 혐의로 벨라루스 법원으로부터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 벨라루스 법원, 노벨평화상 수상 인권운동가에 징역 10년 선고
     https://www.khan.co.kr/world/europe-russia/article/202303032014011

러시아에서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후해 정권에 비판적인 야권 인사나 언론인, 인권단체에 대한 체포 및 해산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메모리알에 이어 지난 1월에는 러시아의 최장수 인권단체인 모스크바 헬싱키 그룹이 법원에 의해 해산됐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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