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음 소희’ 본 특성화고 졸업생이 말하는 ‘지금 소희’ [플랫]

플랫팀 기자 2023. 3. 2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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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는 2017년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한 특성화고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실화를 다룬다. 소희(김시은 분)는 고객이 퍼붓는 욕설을 그대로 감당하는 감정노동과 과도한 콜 수 압박에 시달리다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다. 영화는 형사 유진(배두나 분)의 시선을 따라 특성화고 현장실습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다. 학교는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학생을 열악한 일자리에 몰아넣고, 회사는 ‘값싼 노동력’인 학생을 착취해 실적을 올렸다. 영화는 지난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됐고, 국내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잔잔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플랫]‘고등학생이 왜 콜센터에 갈까’ 현장실습생의 현실 담긴 영화 ‘다음 소희’

6년이 지난 지금 특성화고는 어떤 모습일까. 특성화고에서 현장실습을 경험한 졸업생들은 소희의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과 부당대우, 해고를 당해도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교육’이 목적이지만 현장에서는 일을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잘 해내지 못하면 질책하며 자존감을 무너뜨렸다고 했다.

특성화고 졸업생 김미성(왼쪽,20)·조문수(19)씨가 15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스터디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경향신문은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특성화고를 졸업한 김미성씨(20), 조문수씨(19)를 만나 <다음 소희>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김씨는 회계를, 조씨는 제빵을 전공했다. 두 사람 모두 현재는 현장실습을 했던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영화 속 소희와 또래인 ‘지금 소희’들의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영화 <다음 소희>, 어떻게 봤어요?

김미성=특성화고 현실이 잘 고증됐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소희가 회사가 힘들다고 얘기할 때, 선생님이 ‘후배들 생각해서 버티라’고 말하는 장면이요. 저도 취업부 담당 선생님들이 그런 말을 자주 했거든요. 콜센터에서는 실적률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학교에서는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안 좋은 노동환경에도 학생들을 보내죠. 저는 따로 선생님들께 회사가 힘들다고 얘기하지는 않았는데, 수업시간에 ‘회사는 다 똑같다’ ‘버텨라’ 같은 이야기를 많이 했죠.

조문수=영화 처음에 소희가 춤을 추잖아요. 엄청 활기찬 아이인데, 갈수록 ‘추우욱’ 처지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저랑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왜 비슷하다고 느꼈나요?

조문수=실습 나간 회사에서 상사가 ‘너 이것도 몰라?’ ‘이것도 못 해? 내가 욕 안 하려고 하는데 너 때문에 힘들고 회사 오기도 싫다’ 같은 말을 했어요. 눈물이 터질 뻔했는데, ‘너 여기서 울면 진짜 꼴사나운 거 알지?’라고 하더라고요.

영화 <다음 소희>의 한 장면. 영화 <다음 소희>는 2017년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한 특성화고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실화를 다룬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일을 가르쳐주고 혼낸 건가요?

조문수=아뇨. <다음 소희>에서도 소희가 처음 와서 교육받을 때 사수가 ‘그냥 봐’ 하면서 일을 시작하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지도교사(실습 나간 회사에서 지정하는 사수)도 없었고…. 한 번은 인수인계서 내용을 물어보는데, 알았는데도 자꾸 혼나다 보니 머릿속이 하얘지고 자존감도 떨어져서 답을 못했어요. 자외선을 이용하는 장비가 있었는데 사용법을 딱 한 번 보여주고 말았어요. 저 혼자 하다 보니 자외선을 끄지 못하고 오래 노출돼서, 나중에 보니 피부가 다 까지는 화상을 입었어요. 그런데도 너 왜 안 끄고 했냐고 혼나고….

김미성=저는 교육을 받긴 했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면 새로운 일이 생기잖아요. 물어봤더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줘야 하냐’ ‘초등학생도 이것보단 잘한다’고 했어요. 연차를 사용하려고 하자 ‘일이나 잘하지 연차를 쓰냐’고 얘기하고요. 영화 속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가 나오는데요. 등장인물의 체념한 듯한 얼굴을 보며 그 경험들이 떠올랐어요.

-자존감이 많이 깎이겠어요.

김미성=네. 제가 실수했을 때 통장을 돌려주면서 책상에 던지고, 한 번은 전화로 주문을 받는 중에 거래처 사장이 화를 내는 거예요. 차장님이 제 등을 때리면서 전화를 바꿔 받고… 누군가가 저를 그런 식으로 터치하는 게 처음이었어요. ‘나라는 존재를 막 대하는구나’ 느꼈죠. 제가 바로 옆에 있는데, 차장님이 전무님에게 ‘쟤 너무 답답하다’ 이러고. 졸업했을 때는 과장한테 ‘쟤 이제 졸업했으니까 학교 보호 못 받는 거 아니냐’고 묻기도 했어요. 제가 옆에 있는데요. 결국 5개월째에 이유도 듣지 못하고 당일에 그만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특성화고 졸업생 조문수(왼쪽,19)·김미성(20)씨가 15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스터디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그렇게 그만두면 부당해고인데, 어떻게 대응했나요.

김미성=해고통보 받고 학교 선생님께 전화를 해봤더니, 학교는 도움 줄 수 있는 게 없고 사직서 쓰고 오라고 말씀하는 거예요. 졸업했으니까 진짜 보호는 못 받는구나 실감했어요. 영화에서 유진 형사가 소희의 남자친구에게 ‘일이 힘들면 경찰인 나한테라도 말하라’고 하는 게 정말 인상 깊었어요. 나도 힘들 때 도움받을 수 있는 존재가 있었다면…. 다행히 특성화고 노조의 도움을 받아서 해고예고수당을 받고 상사한테 사과를 받았는데요. 그전까지는 제가 잘못하고 부족한 탓에 잘렸다고 생각했는데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죠.

조문수=소희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직전에 문틈에서 들어온 햇살이 발에 비치잖아요. 절망스러운 인생에 구원의 손길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사람이 아니라는 게 안타깝더라고요. 저도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거든요. 회사가 집과 멀어서 부모님이 안 좋은 가정환경에도 보증금 300만원짜리 자취방을 무리해서 구해 줬어요. 해고당할 거 같아서 ‘어떡하지’ 하면서도 부모님께 폐를 끼치기 싫어서 이야기를 못 하고, 울던 중에 아빠한테 전화가 왔어요. 괜찮냐고 하더라고요. 우는 거 들키지 않으려고 괜찮다고 했는데 울먹이는 목소리로 괜찮은 척 해봤자죠. 끊고 펑펑 울었어요.

-어려운 가정환경이 특성화고 진학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 걸까요.

조문수=네. 차상위계층이었는데 아버지 병원비 빚도 많이 생기고, 제가 장녀 거든요. 밑에 동생이 두 명 있어요. 제가 대학 가면 동생들 학비는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어서 중3 때 특성화고 가겠다고 결정했어요.

김미성=저도 차상위계층인데,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집안 사정이 더 안 좋아졌어요. 취업해서 돈 일찍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진학했죠. 회계정보과를 선택한 이유도 일자리가 많으니까.

-영화 속 소희도 가정형편이 좋아 보이지는 않더라고요. 요즘 정치인들이 ‘청년’ ‘MZ세대’를 챙기겠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소희나 여러분처럼 어려운 경험을 겪는 청년들에게도 도움이 될까요?

김미성=글쎄요. 최근에 논란이 됐던 ‘주 69시간’ 같은 걸 보면, 말로는 청년 세대를 위하겠다고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사회에 진출한 소희 같은 노동자들은 과도한 노동에 시달려도 상관없다는 얘기처럼 들려요. 소희 같은 친구들의 존재를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값싼 노동력 취급 여전…“우리도 학생이에요”

영화에서 유진 형사는 소희의 죽음을 수사하면서 소희가 일한 회사, 학교, 교육청 등 소희와 관계된 곳들을 찾아다닌다. 책임을 피하고자 변명하는 관계자들의 말이 쌓이며 소희를 죽음으로 몰아간 특성화고 실습 시스템의 실체가 한 꺼풀씩 드러난다. 취업률을 위해 학생들을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내몰고선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았다.

-유진 형사가 “그런 곳에 애들을 보내면 안 된다”고 말하잖아요.

김미성=맞아요. 그 대사에서 친구들 얘기와 제 경험이 떠올랐어요. 특성화고가 지금 사회에서 제 기능을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냥 값싼 인력소개소 같은 느낌? 한 친구는 실습 간 회사에서 성희롱을 당했는데 실습생이라 회사에 문제 제기도 못 했어요. 학생으로서 보호받아야 하는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할 수 있는 건 복교밖에 없어요.

-영화 속 시점으로부터 6년이 지났죠. 지금 특성화고 실습은 영화와 비교하면 어떻다고 생각하세요?

김미성=예전에는 취업률에 따라 지원금을 배분했다면 요즘은 신입생이 미달이니까 취업률을 올리려 해요. 그런데 여전히 업무를 가르쳐주지 않고 ‘저렴한 노동력’으로 쓰는 건 똑같아요. 한 친구는 일도 제대로 못 배운 채로 1개월 정도 다니다가 해고 통보를 받았고, 다른 친구는 ‘3개월 현장실습하고 나갈 계약직’처럼 대하는 게 느껴졌다고 하더라고요.

특성화고 졸업생 조문수(왼쪽,19)·김미성(20)씨가 15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스터디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실습이 내가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느끼나요?

김미성=취업은 취업인데…학교 졸업생 단톡방에 올라오는 기업 리스트가 있는데, 대부분 최저임금에 머무는 일자리들이에요. 비교적 임금이 높으면 일이 엄청 힘들거나. 학교에서 대기업이나 은행에 취업한 사례를 홍보하는 데 아주 소수죠. 양질의 고졸 일자리가 더 많아져야 할 것 같아요.

-현장실습 제도가 더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미성=제가 말했던 사례처럼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초년생이잖아요. 처음이니까 부족한 건 당연하죠. 시간이 필요한 부분인데 회사는 신입사원이 업무 배우는 걸 안 기다려주고 빨리해내길 바라죠. 실습은 ‘교육’이 목적인데 회사는 실습생을 회사의 인재로 안 본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실습생을 회사의 인재로 봐주면 현장실습 제도도 좋은 쪽으로 작용할 것 같아요.

조문수=실습생들은 결국 학생이에요. 아무리 학교에서 배워도 현장과는 차원이 달라요. 또한 가르쳐 주는 것도 학생들마다 습득 시간이 다르고 습득하는 방법도 다르니 하나씩 차근차근 가르쳐 줬으면 합니다. 그리고 얼추 잘하면 칭찬을 아끼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학생들은 작은 것이라도 칭찬을 받으면 더 잘해 나갈 것이니까요.

김씨와 조씨가 속한 전국특성화고노조 관계자는 경향신문에 “부당한 대우나 어려움을 겪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또는 졸업생은 특성화고노조에 연락주시면 무료 상담이 가능하다”고 알려왔습니다. 아래는 특성화고노조 페이스북 주소입니다.

▶ 특성화고 노조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2018youthunion

▼ 조해람 기자 lennon@khan.kr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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